[폭행은 합의하면 끝이라고? 합의해도 처벌받는 영내폭행]

▶ 경찰관의 심드렁한 대사에 담긴 ‘합의’의 위력

“아저씨, 술 마시고 사람 때리면 안 되죠, 합의 보고 오세요.”

경찰서가 나오는 TV 드라마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사다. 경찰서가 소재로 등장하는 대중매체에서 이 대사를 자주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비교적 자주 접할 수 있는 ‘폭행죄’에서 ‘합의’가 갖는 효력이 크기 때문이다.

폭행죄를 규정한 형법 조문은 ‘합의’ 안에 내포되는 ‘처벌을 원치 않는 피해자의 의사’에 대해 특별한 효력을 부여했는데, 이 덕분에 유독 ‘폭행죄’에 있어서 ‘합의’의 효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 형법은 제260조 제1항에서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같은 조 제2항에서 피해자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인 경우에는 처벌을 강화하면서(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 같은 조 제3항에서는 “제1항 및 제2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폭행죄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처벌을 원치 않는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것인데, 이러한 종류의 범죄를 ‘반의사불벌죄’라고 한다. 검사는 반의사불벌죄의 경우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 의사표시가 있거나 처벌을 희망하는 의사표시가 철회된 경우 ‘공소권없음’을 이유로 한 불기소결정을 하여야 한다(검찰사건사무규칙 제115조 제3항 제4호 제카호).

위와 같은 이유로 폭행 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사건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중요시되는 것이다.

▶ 그에게도 그럴싸한 계획은 있었다. 군형법을 알기 전까지⋯

필자가 전역 전 군검사 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병사(피의자) 중 한 명이 부대 내 생활관에서 다른 동기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피의자는 수사 초반부터 혐의를 인정하였고, 군검사에게 조사를 받기 전에 이미 피해자와 합의까지 이루어졌다. 그런데 합의서에 쓰여있는 합의금액이 폭행 강도에 비교해볼 때 상당히 큰 금액이었다. 자세한 사정을 확인해보니 피의자의 부친은 합의만 되면 폭행 사건은 ‘공소권없음’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피해자에게 거액을 지급하고 합의를 한 것이었다.

분명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큰 금액을 지불하더라도 사건을 조기에 종결지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피의자가 군인 신분으로 군부대 영내에서 또 다른 군인을 폭행했다는 것이다. 군형법은 “군사기지, 군사시설, 군용항공기”에서 군인을 폭행한 경우에는 형법 제260조 제3항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어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군검사는 ‘공소권없음’의 불기소결정을 할 수가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군형법 제60조의 6). 요컨대 군형법은 형법상 폭행죄의 조문이 적용되는 것 자체는 허용하면서도, 폭행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는 조문만큼은 적용을 배제한 것이다. 결국, 영내에서 발생한 폭행사건에 있어서 ‘합의’는 단순한 정상참작 사유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의기양양하던 피의자는 군형법 제60조 6에 관한 설명을 듣자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아마도 합의서만 제출하면 기소될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깨지자 불안에 휩싸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폭행의 정도가 경미한 것을 감안하면 아무리 보아도 거액의 합의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위 사건에서는 폭행의 강도가 다소 경미했고 피의자가 초범이며, 피해자 역시 처벌을 원치 않는 점 등을 감안하여 ‘기소유예’의 불기소결정을 할 수 있었는데, 불기소결정을 하기 전에 피의자를 소환하여 조사하는 과정에서 ‘공소권없음’을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피의자의 당황하는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 “참았다가 휴가 나가서 때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군법무관을 하다 보면 신병들을 상대로 군법교육을 할 기회가 많다. 필자는 항상 위에서 언급한 폭행죄와 반의사불벌죄의 특징, 영내 폭행에서의 예외에 관해 설명하고, 반드시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제가 이 교육을 하는 이유는, 정말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참았다가 휴가 나가서 때리라는 게 아닙니다.”

누구나 가기 싫은 군대다. 누구나 가기 싫어하는 군에 입대하여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청년들에게 다치지 말고 건강히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축복받아 마땅한 서로를 보듬고 아껴주라고 당부하고 싶다.

<김태진 변호사> 학력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변호사시험 합격 / 경력 ▲제12보병사단 군검사 ▲제3군단 징계장교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 송무장교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 법무실장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수상▲국가송무 수행 우수 표창(2020)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