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이라는 단어는 익숙한가보다.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의뢰인과 상담하다 보면 ‘심신상실 상태였다고 주장하면 안 되나요?’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심신장애 상태인 경우에는 감형이 되거나 나아가 무죄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인터넷에도 넘쳐난다. 아마도 위와 같은 질문을 한 의뢰인들은 조금이라도 유리한 판결을 받기 위해 인터넷을 필사적으로 검색했을 것이고, ‘심신미약 내지 심신상실’ 요건을 솔깃한 치트키(cheat key) 정도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언제나 감형 또는 무죄 선고가 이루어질까? 우선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이 무엇인지, 양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부터 알아보자. 우리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를 규정하면서 제1항에서는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 즉, 심신상실을 규정하고 있고, 동조 제2항에서는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 즉, 심신미약을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①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③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이렇듯 양자는 심신장애라는 점에서 동일하나, 그 정도에 있어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처벌의 정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심신상실의 경우에는 의식을 가지고 범행을 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벌하지 아니’하고(무죄), 심신미약의 경우에는 그 형을 감경할 뿐이다. 하지만 심신상실에 이를 정도로 변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까? 그 기준은 무엇일까?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저 구체적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판례도 이와 관련하여 1심과 2심이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정도이니, 심신상실을 주장하는 피고인 측과 심신상실까지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검사 측의 대립이 얼마나 팽팽할지 가늠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사례가 있다.

A씨는 한 모텔에서 친구가 준 마약류인 LSD를 복용하였는데, 그로부터 9일 뒤인 자택에서 이모와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당시 A씨는 "집안 전체에 여러 목소리가 들렸고 그 목소리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와 이모를 찌르는 순간이 기억은 나는데 로봇으로 생각돼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이후 저절로 내 몸이 어머니와 이모를 찔렀다”라고 진술했다. A씨에 대한 혐의는 존속살해, 살인, 공무집행방해 ,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이었다. 과연 재판부의 판단은 어땠을까? 
 
심신상실 VS 심신미약

1심 재판부는 A씨의 위 모든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A씨가 당시 LSD로 인한 심신미약상태에 있었다고 보아 감형을 하였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런데 이후 이어진 항소심 재판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A씨의 존속살해 및 살인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1심 재판부와 항소심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내린 근거는 무엇일까? 1심 법원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범행 당시 A씨의 상태를 ‘심신미약’이 아닌 ‘심신상실’로 보았다. ‘감형’의 대상이 아닌, ‘처벌하지 않는 행위’로 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LSD 복용으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상실된 상태였다는 전제 하에, “피고인은 LSD 복용으로 피해망상과 환각, 비현실감 등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났고, 적절한 치료가 없는 상태에서 악화와 완화가 반복되다 범행 당시 극도로 악화돼 선악과 시비를 구별하거나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환각제 가운데 가장 강한 마약성을 가진 LSD를 투약하면 환각이나 우울, 불안, 공포, 판단 장애 등이 나타나는데 1∼2년이 지난 후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환각제 지속성 지각장애’가 올 수 있다”라고 하면서, “피고인은 LSD 복용에 따라 피해망상, 환각, 비현실감 등 정신병적 증상이 나타났고, 이후 열흘 동안 적절한 치료 없이 방치돼 그 증상이 악화하고 완화되길 반복하다가 범행 당시 그 증상이 극도로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시했다.

이에 더하여 재판부는 평범하던 사람이 LSD 복용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나 가까운 지인을 살해한 사건이 미국에서는 다수 발생했다는 사실도 판결문에 적었다. 결국, A씨는 심신상실상태였음이 인정되어 존속살해와 살인 부분은 무죄를 받았고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만 징역 2년 +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 이외에도 심신장애가 인정되어 무죄를 선고받거나 감형된 사례는 많다.

귀신에 씌었다는 이유로 딸을 잔혹하게 살해한 어머니에 대해 심신상실 상태를 인정하여 무죄를 선고한 사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조두순 사건에서도 만취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인정되어 심신미약이 인정된 바 있다. 이쯤 되면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 의도적으로 술을 많이 마신 뒤 심신장애 상태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우리 형법은 이에 대비하여 형법 제10조 제3항에서 심신장애 상태로 인한 감형의 예외를 두고 있다.

법률 용어로는 ‘원인에서 자유로운 행위’라고 하는데, 위험 발생을 예견하고서도 스스로 심신장애 상태를 야기한 때는 형을 감경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살인을 하기 전에 용기를 북돋는 차원에서 술을 마시고 만취한 경우, 음주운전을 할 의사로 술을 마신 경우, 범행 전 마약이나 환각제 등을 복용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 곽혜진 변호사 학력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행정법 수료 ▲변호사시험 합격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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