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가 막을 내렸다. 2014년과 2018년 선거 당시 각각 13곳과 14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던 것과 상반된 결과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진보진영 교육감이 9, 보수진영 교육감이 8곳에서 당선됐다. 기존 진보 교육감 독주 체제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보수진영 교육감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보수진영 교육감 간의 단일화가 이뤄졌더라면 우파 교육감을 더 많이 배출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출범 22일 만에 치러지는 선거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정권교체에 힘을 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진보 교육감 시대가 막을 내림에 따라 교육정책에 대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17개시도 교육감 당선인 현황, 뉴시스
17개시도 교육감 당선인 현황, 뉴시스

좌파 독주 체제 실망유권자 우파 교육감 표 몰아주기
- 윤석열 정부 자사고.외고존치 입장, 진보진영 반대갈등

6·1 교육감 선거 결과 진보 교육감과 보수 교육감 후보 간 비율이 98로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진보 교육감은 서울(조희연), 인천(도성훈), 광주(이정선), 울산(노옥희), 세종(최교진), 충남(김지철), 전북(서거석), 전남(김대중), 경남(박종훈) 9곳에서 당선됐다. 보수 교육감은 대구(강은희), 경북(임종식)을 비롯해 부산(하윤수), 대전(설동호), 경기(임태희), 강원(신경호), 충북(윤건영), 제주(김광수) 8곳에서 당선됐다. 특히 강원, 경기, 부산, 제주, 충북은 진보 교육감에서 보수 교육감으로 교체됐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14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승리해 진보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왔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수 단일화 실패 지역은 진보교육감 당선

보수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대구 교육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강은희 당선인은 선거 초 진보계열에서 출마 의사를 밝힌 인사가 없어 한때 무투표 재선 가능성이 거론됐다. 그러나 엄창옥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출마의사를 밝히면서 무투표 당선은 물 건너가게 됐다.

그러나 강은희 대세론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강 당선인은 61.61%를 기록해 38.38%를 기록한 엄창옥 후보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경북도 교육감인 선거에서는 임종식 당선인이 재선에 성공했다. 임 당선인은 49.77%의 득표율을 얻어 27.73%를 기록한 마숙자 후보에게 승리했다. 그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경상북도 공약이행평가단 평가에서 공약 이행률이 99.6에 달한 것으로 나왔다.

또 지난 13년간 진보 성향 인사가 자리했던 경기도 교육감에는 임태희 후보가 당선됐다. 임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반전교조노선을 택하며 김상곤 전 교육감, 이재정 교육감 등 13년째 진보 성향 후보들이 이끌어 온 경기도 교육감들의 기존 정책을 비판했다. 임 당선인은 “13년 간 이어진 편향적이고 획일적인 교육을 끝내고 자율과 균형, 미래지향적인 교육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제주에서도 8년 만에 보수 성향인 김광수 후보가 당선됐다. 김 당선인은 57.47%의 득표율로 현직 교육감인 이석문(42.52%) 후보를 제쳤다. 이 외에 부산시 전남도 충북도도 진보 성향의 현직 교육감이 보수 성향의 후보자에 자리를 내줬다. 강원도 역시 현직 진보 교육감이 출마하지 않으면서 보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됐다.

이번 선거의 특징은 단일화 여부가 판세에 영향을 미쳤다. 서울의 경우 단일화 여부가 승패를 갈랐다. 조희연 후보가 38.09%를 얻어 단일화에 실패한 보수성향 후보들을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2위 조전혁 후보(23.49%), 3위 박선영 후보(23.1%), 4위 조영달 후보(6.63%) 등 보수 후보의 득표율이 50%를 넘었지만 단일화에 실패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진보성향인 조희연 후보가 3선에 성공하게 됐다.

또 진보 교육감이 승리한 충남(김지철세종(최교진)에서도 중도·보수 후보들의 단일화가 무산됐다. 충북에서는 윤건영 후보가 단일화로 인해 8년 만에 보수 교육감 시대를 열게 됐다.

축하받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인, 뉴시스
축하받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인, 뉴시스

이번 선거가 대선 직후 치러져 교육감 후보들에 대한 주목도가 낮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기초학력 저하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진보 진영의 교육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전문가들은 진보 교육감 시대에 누적된 피로감이 이번 선거에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한 전문가는 지역색을 살리고 다양성을 증진하자는 게 지방자치의 취지인데 교육감이 몇 년간 진보 일색으로 가면서 교육정책이 획일화됐다유권자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진보진영 혁신학교 변화 불가피할 듯

진보 교육감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림에 따라 교육정책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보수 교육감들이 당선된 곳은 학생들의 기초학력 강화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후보들은 진보 교육감이 교육정책을 이끈 지난 8년 동안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크게 떨어져 진단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전체 학생이 아닌 일부 학생만 표집해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 확대되거나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전수 평가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과거처럼 한날 한시에 모든 학생이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 방식은 학생, 학부모의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개별 진단 방식 도입 등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보 교육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혁신학교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혁신학교는 입시 위주 교육에서 벗어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높여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자는 취지였다. 2009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도입했으며, 2010년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보수 진영 교육감들은 혁신학교에 들어갈 예산을 일반학교에 투입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장 경기도에서 13년 만에 처음 '교육정권 교체'를 이룬 임태희 신임 교육감은 혁신교육의 목적과 취지부터 구체적 프로그램까지 원점부터 살펴보겠다좋은 부분은 확산시키겠지만 단순 사업비를 집행하기 위한 정책은 과감하게 손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외고 존치, 윤 정부 vs 진보 교육감

또 자사고·외고 존치 정책을 예고한 윤석열 정부와 진보 교육감 간의 갈등도 불가피해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자사고·외고를 유지하려면 국무회의를 열어 시행령만 고치면 된다. 진보 교육감들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는 상태다. 진보진영 교육감인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자사고 폐지에 대한 다수의 일반고 학부모들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진지한 검토를 해주시길 바란다며 자사고·외고는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 당선인, 뉴시스
임태희 경기도 교육감 당선인, 뉴시스

자사고 문제는 오는 7월 출범할 국가교육위원회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기존 정책을 뒤엎는다는 비판을 의식해 대입제도와 교육과정, 교육재정 등을 다루는 국가교육위에 이 문제를 맡기지 않겠느냐는 게 주된 골자다.

이 경우 시도교육감협의회 안에서 보수와 진보 교육감들의 주도권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21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이 중 한 자리가 시도교육감협의회장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교육감 선거에선 일방적 승자가 나오지 않은 만큼, 이 같은 결과가 나온 배경을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진보 교육감에 대한 압도적 지지는 거둬들이면서도 보수 교육감들의 독주 또한 허용하지 않겠다는 유권자들의 민심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정치권 한 인사는 이번 선거에서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한 채 상대 후보의 단일화 실패라는 어부지리에만 기댄 진보 교육감들에게 유권자들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건 분명하다면서도 보수 맘대로 하란 것도 아니므로, 교육감들이 진영 논리에 치우치지 말고 균형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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