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석 “호박이라 할까”·현근택 “이 정도 비난 못 견디면 자격 없어”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일요서울 l 이하은 기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공개적인 경고에도 민주당 내 멸칭 논쟁이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다.

우 위원장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당내에서 멸칭을 사용해 가며 벌어지는 계파 갈등에 대해 경고장을 보냈다. 그는 비방용 은어인 ‘수박’ 용어를 언급하며 “앞으로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는 분들은 가만히 안 놔두겠다”고 선언했다. 

‘수박’은 겉은 파랗지만 속은 빨간 수박의 특성에 빗대 ‘겉모습은 민주당이지만 속은 국민의힘’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말로, 주로 이재명 의원 측 지지자들이 이낙연 전 대표 측 인사들을 비롯한 비명계 인사들을 비하할 때 사용되는 용어다.

지난 10일엔 비명계 이원욱 의원이 “여름엔 수박이 최고”라며 수박 사진을 올렸다가 친명계 김남국 의원과 3일에 걸쳐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의원들 간 다툼으로까지 번진 ‘수박 논쟁’에 우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들고 나섰지만, 여전히 당 안팎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 위원장이 ‘수박 금지령’을 내린 후 민주당 당원게시판은 ‘수박’이라는 표현으로 도배됐다. 일부 글들에선 ‘수박’ 표현을 금지한 우 위원장을 비난하기도 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정치인이 시민의 조롱이 마음에 안 든다고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라며 “왜 나를 조롱하고 있는지 자성을 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바른 자세”라고 했다. 그러면서 “‘난 수박이 아니다’라고 할수록 수박이 될 뿐”이라고 했다.

당내에서도 즉각 반발이 일었다. 양문석 전 경남지사 후보는 “우 위원장이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신 분들은 가만히 안 두겠다’고 한 모양인데 수박을 수박이라고 말하지 못하면, 수박을 호박이라고 하나”고 날선 반응을 보였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지냈던 현근택 변호사는 “‘수박’이라고 조롱해서 힘드신가”라며 “이 정도 비난을 견디지 못하면 의원 할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우 위원장의 공개 경고에도 당내에서 반발이 나타나는 것은 우 위원장의 약한 권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 위원장이 당의 수장 역할을 맡고 있으나, 비대위의 활동 기간이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까지 2개월 정도로 짧은 만큼 영향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고를 무시하고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이에 대해 제재를 가할 방법도 사실상 마땅치 않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크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우 위원장이 경고를 했을 뿐, 윤리위 회부나 제도적으로 패널티를 주는 조치 등 구체적인 방법론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며 “의원이나 당직자야 좀더 조심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반발을 하고 있지 않나”고 했다.

지난 20대 대선, 나아가 19대 대선 당시부터 이어져 온 친문계와 친명계 간 깊은 감정의 골도 한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친문계 지지층 일부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을 정도로 양측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은 좋지 않다.

이처럼 오랜 기간 누적돼 온 계파 간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임시 수장’의 경고장만으로는 갈등의 표출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우 위원장이) 특별한 권한도 없고 기간도 두 달로 규정된 비대위원장인데 뭘 할 수 있겠나”며 “어떤 면에선 오히려 명확히 세력을 가지고 있는, ‘수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측의 권력이 더 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두 계파 간 갈등이 가볍지 않은 만큼, (비대위는) 원론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이지 (갈등을 해소할) 특별한 방안이 나오기도 어렵고, 그것을 실현시킬 현실적인 힘도 없을 것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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