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공방’ 벌이는 新舊정권…“월북조작” vs “新색깔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피해자 이대준 씨 유족과 법률대리인. [뉴시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피해자 이대준 씨 유족과 법률대리인. [뉴시스]

- 뒤바뀐 해경 수사 결과…“자진 월북” → “월북 의도 증거 발견 못해”  
- “정보 공개해야” 판결에도…관련 자료 대통령기록물 지정한 文 정권
- “월북몰이” 총공세 나서는 국힘…“신북풍” 맞서는 민주당
- ‘자진 월북’ 여부 이어…정부 대응 ‘6시간 미스터리’도 쟁점

[일요서울 l 이하은 기자] 2년 전 발생했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 다시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해경이 피해 공무원에 대해 자진 월북을 추정했던 과거의 판단을 뒤집으면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TF까지 구성해 가며 당시의 문재인 정부에 책임론을 제기하는 등 공세를 펴고 있다. 반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당의 공세를 ‘색깔론’으로 규정하고 총력 방어에 나섰다. 양측은 대통령기록물과 국회 비공개 회의록, SI정보 등 관련 자료들의 공개 여부를 놓고도 팽팽한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 공무원의 유족 측은 관련 자료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하는 한편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 당시 관계자들을 고발하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감사원과 검찰도 이와 관련해 각각 감사와 수사에 착수하면서, 숱한 의문들을 자아낸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양경찰이 지난 16일 언론 브리핑을 열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사건 당시와는 상반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건 피해자 이대준 씨에 대해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이던 지난 2020년 이 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했던 중간 수사 결과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낸 것이다.

북한군 총격에 숨진 대한민국 공무원…당시 정부는 ‘자진 월북’ 결론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지난 2020년 9월 21일 당시 해양수산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이었던 이대준 씨가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하루 뒤인 22일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해경은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씨의 구명조끼 착용 등을 근거로 이 씨가 월북을 시도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당시에도 해경은 ‘자진 월북’의 명확한 증거나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 씨의 유족들은 반발했다. 유족 측은 ‘자진 월북’이라는 결론을 내린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해경, 국방부 등을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1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문재인 정부 측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2심이 진행 중에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국가안보실이 항소를 취하하면서 1심 판결이 확정되게 됐으나, 문재인 정부 측이 퇴임 전 관련 자료들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면서 관련 내용이 유족들에 공개되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해양경찰청. [뉴시스]
해양경찰청. [뉴시스]

미흡한 근거로 월북 추정…‘짜맞추기 수사’ 의혹도

이 사건은 당시에도 명확한 근거 없이 피해자를 월북자로 단정지으며 논란이 됐다.

지난 2021년에는 국가인권위가 해경의 행동을 문제삼기도 했다. 해경 측이 중간수사 결과 발표 과정에서 피해자 이 씨의 채무 총액과 도박 사실 등을 공개하고 피해자에 대해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 문제가 됐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법익의 균형을 상실한 채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까지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라며 이로 인해 피해자와 유족의 인격권이 침해당했다고 봤다. 

국민의힘 측은 이 뿐만 아니라 당시 해경이 ‘자진 월북’의 근거로 들었던 7가지 내용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하태경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를 발족시킨 국민의힘은 지난 22일 인천시 연수구 해양경찰청을 방문해 해경 지휘부를 면담한 뒤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당시 해경이 ‘자진 월북’의 근거로 제시했던 것은 군 특수정보(SI) 감청 자료, 구명조끼, 슬리퍼, 부유물, 바다 조류, 도박 빚, 정신적 공황 등이었다.

월북 판단의 결정적 근거가 됐던 감청 자료의 경우 해경 측이 자료 전체가 아닌 일부 요약문만을 확인하고 결론을 내놨다고 하 위원장은 밝혔다.

이 씨가 실종 당시 착용했다는 구명조끼 역시 똑같은 조끼가 선내에서도 발견돼 사라진 조끼가 이 씨의 것이라고 확정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해경 측이 이 씨가 선내에 벗어놓고 바다로 뛰어내렸다고 추정한 슬리퍼 역시 여러 명의 DNA가 나와 이 씨의 것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부유물 역시 배에서부터 준비된 것인지, 바다에 떠 있던 것을 잡은 것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사건 당시 조류가 북측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이 씨의 월북 의지를 단정한 점 역시 오류가 있었다. 이 씨의 표류 방향이 물에 떨어진 시간, 수영 능력, 수영 속도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있는데 해경 측이 한 가지 시나리오만 특정해서 발표했다는 것이다.

해경 측이 2억 6800만원이라고 발표했던 도박 빚은 회생 신청 당시 적은 부채 총액을 잘못 발표한 것으로, 이 중 도박 빚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정신적 공황 상태에 대한 부분은 ‘조작’에 가깝다는 게 국민의힘 측 판단이다. 당시 전문가 7명 중 6명이 판단이 어렵다는 의견을 냈고, 정신적 공황 가능성을 제시한 1명 뿐이었던 데다 이 전문가 역시 이후 입장을 바꿨는데, 해경 측이 이전 의견만을 채택해 발표한 것이다.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뉴시스]
국민의힘 해수부 공무원 피격사건 진상조사 TF. [뉴시스]

이와 관련해 하태경 의원은 앞서 지난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수사 이전에 이미 월북 결론이 나 있었다’는 해경의 양심선언이 있었다면서 ‘짜맞추기 수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월북 단정’ 경위 문제가 불거지자, 감사원도 감사에 나섰다. 감사원은 지난 17일 해당 사건과 관련해 해경과 국방부 등을 상대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초 보고 과정과 절차 등을 정밀하게 점검해 업무처리가 적법·적정했는지에 대해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자진 월북’ 단정 문제 외에도 사건 당시 문재인 정부의 대응 문제도 논란 대상이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이 법원 판례를 토대로 밝힌 첩보 내용에 따르면, 사건 당일인 지난 2020년 9월 22일 군이 이 씨의 소재를 최초로 파악한 것은 오후 3시 30분 경이다. 당시 이 씨는 해상에서 표류하다 북한 선박에 나포됐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은 약 3시간 뒤인 오후 6시 36분 경에 이 같은 사실을 보고받았고, 북한군이 이 씨에 총격을 가한 것은 이날 오후 9시 40분 경이다. 군이 이 씨의 상황을 최초로 파악한 시간으로부터 약 6시간, 대통령이 보고를 받은 시간으로부터 약 3시간 동안 이 씨는 생존해 있었다. 

이 때문에 이 씨가 생존해 있던 이 6시간 동안 당시 정부 측이 그의 구출을 위해 어떤 대응을 했는지도 쟁점이 되고 있다. 

뒤집힌 해경 수사 결과에 불붙은 정치권 논쟁…자료 공개 여부 두고도 공방

2년 만에 수사 결과가 뒤집히고, 그 과정에서 여러 논란들이 발생하자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연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은 석연치 않은 당시 해경의 ‘자진 월북’ 수사 발표 과정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이 과정에 정부 등 윗선의 지침이나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야당은 여당의 ‘월북몰이’ 주장을 ‘신 색깔론’으로 규정하고 반격에 나서고 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020년 당시 국민의힘도 첩보 내용을 열람하고 월북 추정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시 국방위·정보위 소속이었던 하태경 의원이 이를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맞받으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첩보 내용에 대한 국정원장과 국방장관의 보고를 받았을 뿐 첩보 정보 원본을 열람한 적이 없으며, 당시부터 이에 관해 문제 제기를 해 왔다는 것이 하 의원의 입장이다.

자료 공개를 놓고도 여야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사건과 관련해 공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자료는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자료, 국회 비공개 회의 자료, 군 특수정보 SI 자료 등이다.

당초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자료 열람에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던 우 위원장은 이후 “공개를 꺼릴 이유는 없다”며 공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 역시 월북 추정에 동의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서 국회 비공개 회의 자료를 공개하자는 주장이 나타나기도 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피해자 이대준 씨 유족과 법률대리인. [뉴시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피해자 이대준 씨 유족과 법률대리인. [뉴시스]

정보공개 청구부터 고발까지…정면 돌파 나선 유족들

해경의 수사 결과가 뒤집히고 부실 수사 의혹이 제기된 이후, 이 씨의 유족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 씨의 유족과 유족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과 김종호 전 민정수석,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 등 3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사건을 공공수사1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유족 측은 또 대통령기록관장을 상대로 사건 관련 대통령기록물 공개를 청구하기도 했으나 대통령기록관은 이에 불응했다. 유족 측은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위해 국회에 협조를 요청한다는 방침인데, 자료 열람이 좌절될 경우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고발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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