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김태진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김태진 변호사]

▲사이버 모욕죄 적용법조와 요건
 
“무슨 게임을 그따위로 하냐! 너희 부모는 XXX XXX”
­모두가 즐겁게 즐기기 위해 하는 게임인데, 언제부턴가 몇몇 게임 이용자들 중에는 자신의 동료가 게임을 못하면 거침없이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내뱉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그중에는 상대방의 부모님에 대해 모욕을 하는 경우도 있어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게임 중에 난무하는 욕설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방법은 없을까?
먼저, 문제 되는 발언이 <특정한 사실>을 내용으로 할 경우에는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 명예훼손이란 본래 형법 제307조에 규정된 죄명인데, 입법자들은 명예훼손이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할 경우를 상정하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명예훼손에 관한 규정을 별도로 마련해 두었다.
반면, 문제 되는 발언이 <특정한 사실>이 아닌, <평가나 의견>을 담고 있는 경우에는 ‘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다. 다만, ‘모욕죄’의 경우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발생하는 경우를 상정하여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고 형법 제311조의 모욕에 관한 규정을 그대로 활용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욕적 언동을 의율하고 있다.
오늘 다뤄볼 게임 등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대방이나 상대방 부모님에 대한 원색적 비난의 발언들은 대부분 ‘특정한 사실’이 아닌 ‘평가나 의견’으로 형법상 ‘모욕죄’의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형법 제311조의 ‘모욕’의 요건은 ①가해자가 공연히 발언하였을 것(공연성), ②가해자의 발언이 모욕에 해당할 것(모욕)을 요건으로 한다. 다만, 사이버 모욕의 경우에 형법 제311조가 적용될 때에는 같은 규정임에도 한 가지 요건을 더 고려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③피해자가 특정될 것(특정성)이다.
 
▲특정성 : 초등학생의 볼품없는 게임 실력과 그렇지 못했던 현실 대응능력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헝법 제311조는 ‘사이버 모욕’에 적용될 때만큼은 ‘피해자가 특정될 것’이라는 요건을 추가로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형법상 모욕죄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의미하는 외부적 명예를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인데(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6도20890 판결 참조).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모욕적 발언의 경우에는 피해자가 사용하는 아이디만 노출되어 있어 가해자의 발언에 의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가 저해될 위험이 없다. 요컨대 사이버 공간이 갖는 ‘익명성’이라는 특징이 가해자의 모욕적 발언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 저해로 이어지지 않게 막고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요건이 필요한 것이다.

필자가 전역 전 군검사 직에 있을 때의 일이다.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간부(피의자) 중 한 명이 사이버 모욕을 하여 입건된 적이 있었다. 피의자는 수사 초반부터 혐의를 대부분 인정하였는데, 몹시 억울해하며 당시 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피의자는 비교적 젊은 간부였는데 퇴근하면 숙소에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게임을 즐긴다고 한다. 자신이 주로 하는 게임은 ‘League of Legends’라고 하는 게임인데 해당 게임은 온라인상에서 팀을 나누어 상대방 진영을 공격해 먼저 상대방 진영을 무너뜨리는 쪽이 승자가 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같은 편이 게임을 못하면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몇몇 사용자들은 일부러 같은 편을 골탕 먹이기 위해 게임을 망치는, 소위 ‘트롤(Troll)’ 행위를 하는 일도 있다고 하였다. 이야기를 이어가자 피의자는 점차 흥분하기 시작했다. 특히 ‘트롤’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지기 시작했다. 피의자는 사건 당일에도 즐겁게 게임을 할 목적이었으나, 피해자의 트롤 행위에 화가 나 피해자를 비난하면서 모욕적 언동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마칠 때쯤 피의자의 얼굴은 흡사 삼국지의 ‘관우’처럼 대춧빛이 되어 있었다.

피의자가 이야기를 마치자 합의할 생각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피의자는 조금 전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인터넷을 통해 모욕에 대해 찾아보니 피해자가 특정되거나, 공연성이 없으면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게임상에서 욕한 걸로 굳이 합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의자의 이야기는 일응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군사경찰에서 조사해온 결과는 달랐다.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제출한 당시 게임 속 채팅 내역에 따르면, 피의자는 한동안 신나게 피해자에게 욕설을 퍼부었는데 필자의 눈에는 피의자가 난무하는 욕설들 사이에 피해자의 한마디가 눈에 들어왔다.
“저는 경기/OO시/OO초등학교 O학년 O반 OOO입니다. 그만 욕해주세요”
묘수였다. 피해자가 위 메시지를 입력하는 순간부터 피해자는 익명성의 베일을 스스로 걷어냈고, 이때부터 피해자에게 퍼붓는 욕설에 피해자에 대한 특정은 문제 될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초등학생이 이런 대처를 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너무 빠르게 말했다면 가해자는 경계했을 것이고, 늦게 말했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특정성이 확보된 뒤부터는 욕설을 이어나가지 않았거나, 피해자와 거의 동시에 메시지를 입력한 것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위 메시지를 입력한 뒤로도 가해자는 한동안 욕설을 이어나갔고,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는 없었다. 피해자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게임 실력은 별로였을지 몰라도 현실에서의 대처 능력은 어지간한 어른보다 뛰어났던 것이다.
 
▲공연성 : 법률가 중에서도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공연성’의 의미에 관하여, 대법원은 “공연성에 관하여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라고 판시하면서, “공연성에 관하여 개별적으로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공연성이 인정된다”라고 보고 있다(대법원 2020. 11. 19. 선고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한편, 피해자 특정성이 충족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설명을 듣자, 피의자는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피의자는 무엇인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진술을 이어나갔다.

피의자는 자신이 모욕적인 채팅을 입력한 것은 게임이 거의 끝났을 때인데, 피해자로 인해 게임이 처참하게 졌을 때라 이미 다른 팀원들은 모두 게임에서 나간 뒤라고 진술했다. 요컨대, 총 10명의 유저가 5대5로 2팀으로 나뉘어 게임을 하는데, 자신이 피해자를 욕설할 당시에는 5명 중 3명이 나가고 자신과 피해자만이 남아 있었으므로 ‘공연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피의자의 눈빛이 영 불안해 보였다. 조금 전 ‘술잔이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이라도 베어오겠다’는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캡쳐 화면을 보았다. 전체 채팅을 입력했을 때의 메시지 색깔이었다. 통쾌하게 이긴 게임이니 상대편 5명은 아무도 게임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피의자는 담당 군검사가 게임에 대해 잘 모를 것으로 생각하여 마치 공연성이 없었던 상황이라고 속여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결국, 피의자는 몇 번의 추궁을 더 받고 조사를 마쳤고, 2차 조사를 받을 때에 그의 두 손에는 합의서가 들려있었다.

<김태진 변호사 학력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변호사시험 합격 / 경력 ▲제12보병사단 군검사 ▲제3군단 징계장교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 송무장교 ▲국방부 국군재정관리단 법무실장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수상▲국가송무 수행 우수 표창(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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