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권, ‘몰표 선거담합’ 사실 인정...건물 처분 개입설 묻자 총기 꺼내”

광복회 장호권 신임 회장 [뉴시스]

- ‘총기 위협’ 피해당사자 이완석 “張, 담합 시인...자진 사퇴엔 선 그어” 
- 장호권 본지 취재에 ‘묵묵부답’...보훈처 “수사 결과에 따라 처분 결정”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순국선열 후손 단체인 광복회가 리더십 병폐에 진통을 앓고 있다. 광복회는 공금 횡령과 모친(故 전월선)의 독립운동 허위 서훈 의혹이 드러난 전임 회장 김원웅 씨의 중도 사퇴로 국가공인 보훈단체로서 심각한 명예 손상을 입었다. 이어 지난 5월 31일 광복회 21대 사령탑으로 선출된 장호권 신임 회장도 ‘부정선거 담합 및 총기 위협’ 논란이 불거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일제강점기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보훈단체가 어느새 각종 비리의 온상이자 단체 상층부의 ‘권력 놀이터’로 변질된 모양새다. 다만 광복회 내부에선 전‧현직 회장 개개인의 비리 의혹과 조직 운영 폐단을 바로잡으려는 일부 움직임도 있었다. 이완석 광복회정상화추진본부 대표가 그 일선에 있다. 광복회 회원인 그는 앞서 김원웅 전 회장의 모친인 고 전월선 씨의 허위 공적서훈 의혹을 최초 제기했고, 장 회장의 광복회 복지회관 처분 개입설과 신임 회장 선거 직전 후보 간 표 몰아주기 담합 의혹을 파헤친 인물이다. 이 대표에 따르면 장 회장은 선거 담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회관 매각에 개입했냐는 의혹에 대해선 극구 부인하며 총기로 추정되는 물건을 꺼내들며 위협을 가했다. 일요서울이 광복회의 어두운 민낯을 추적해 봤다.

지난 6월 22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회장실)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장호권(74) 신임 회장이 돌연 총기를 꺼내 부정선거 등 문제를 제기한 내부 인사를 겨눈 것. 만약 이번 일이 수사기관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다면, 보훈단체장이 소속 회원에게 ‘총기 위협’을 가한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장 회장은 광복군 소속 재야 독립운동가인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이다. 그는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사무총장, 고구려문화연구회 이사장과 2005년 월간 시사지 ‘사상계’ 대표를 지냈다. 과거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정치 이력도 있다.

그런 그가 최근 ‘광복회 쇄신’ 기치로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21대 광복회장에 취임했지만, 부정선거 의혹에 연루돼 당선 무효 위기에 놓였다. 지난 5월 31일 광복회장 선거에 출마한 유력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2명의 출마자들과 총회 2차 투표에서 ‘표 몰아주기’ 담합을 획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이는 국가공인 보훈단체장의 ‘총기 협박’이라는 황당 사태의 시발점으로 지목된다.

장 회장의 임기는 김원웅 전 회장의 잔여 임기인 내년 5월까지다. 광복회 서울시지부장을 맡았던 그는 광복회 소유의 복지회관 건물 처분 과정에 개입해 부당이익을 취하려 했다는 내부 의혹이 제기돼 지난해 지부장에서 면직됐다.

광복회장 취임 후 각종 부정 이슈로 논란이 잇따르자, 장 회장의 과거 범죄 전력도 재조명되고 있다. 장 회장은 지인에게 3000만 원의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사기’ 혐의로 2008년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에는 지인에게 자녀 취업 알선을 명목으로 500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아 서울중앙지검에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적폐와 구태를 1년 안에 정리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고 대우받는 광복회를 만들겠다.” 광복회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장 회장의 출마 일성이다. 김원웅 체제로 겉과 속이 피폐해진 광복회의 소생에 앞장서겠다는 호연지기가 담긴 메시지다. 그러나 정작 ‘광복회 대수술’ 전면에 나서겠다던 장본인이 각종 부정 이슈에 휩싸이며 낯 뜨거운 상황이 연출되는 모양새다.        
          
‘총기’ 꺼내든 보훈단체장, 광복회에서 대체 무슨 일이

지난 6월 30일 이완석 광복회정상화추진본부 대표는 일요서울에 “장호권 회장과 광복회 임원들이 함께 한 자리에서 (신임 회장 선거) 담합과 과거 광복회 서울 복지회관 건물 매각에 부정 개입한 정황을 추궁했더니, 갑자기 집무실 책상 옆 옷걸이에 걸어뒀던 자신의 상의에서 길이 15cm 가량의 검정색 총기를 꺼내 총구를 제게 겨눴다”며 “당시에는 워낙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그게 실제 총인지, 가스총인지, 실탄이 장전됐는지 등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상당한 위협을 느꼈다”고 주장했다.

이날 장 회장이 자신의 선거 담합 및 광복회 복지회관 처분 개입 의혹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광복회관을 찾은 이 대표와 이문형 광복회개혁모임 공동대표를 접견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이 같은 일을 벌였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사건 당일 광복회 간부급에선 장 회장과 함께 임병국 사무총장, 조상묵 상근부회장이 배석했다. 당시 약 10분 동안 이들 5명이 장 회장과 관련된 의혹 진위를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일이 터졌다. 

이 대표는 장 회장에게 과거 측근 이모 씨를 시켜 광복회 복지회관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10억 원가량의 부당 이익을 챙기려고 시도했다는 정황을 따져 묻자, 임 사무총장이 탁상을 치며 “경찰이냐, 지금 조사하나”라며 고성을 지르며 반발했고 뒤이어 조 상근부회장이 “나가라”고 자신의 어깨를 밀쳤다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장 회장이 자신의 양복 상의에서 총기로 보이는 물건을 꺼내 이 대표를 위협했고, 옆에 있던 임 사무총장이 “이러시면 안 된다”며 급히 달려가 장 회장을 말렸다는 게 이 대표가 밝힌 당시 상황이다.  

이완석 대표가 영등포경찰서에 접수한 고소장 [이완석 대표 제공]
이완석 대표가 영등포경찰서에 접수한 고소장 [이완석 대표 제공]

이와 관련, 이 대표는 그 이튿날인 지난 6월 23일 영등포경찰서에 장 회장을 ‘특수협박’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사건접수번호: 2022-3813, 상위 이미지 참조)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영등포서 형사5팀에 배정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와 함께 이 대표는 진상 파악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광복회장실 CCTV 자료 소실을 우려해 두 차례에 걸쳐 관할 수사기관에 광복회 압수수색을 요청한 한편, 유관부처인 국가보훈처 감사과에도 광복회 내부 감사 진정서를 접수했다.

광복회는 경찰 측 CCTV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30일 현재까지 광복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가운데, 이 대표는 “광복회장실 CCTV에 이날 발생한 일들이 모두 담겨있다. CCTV가 모든 걸 말해줄 것”이라며 “증거가 유실되기 전에 조속히 해당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본지는 장 회장과 수차례 전화 취재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에 취재진이 지난 6월 30일 ‘이 대표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 반박 의견이 있나’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으나, 장 회장은 문자를 확인하고도 회신을 주지 않았다. 

다만 장 회장은 지난 6월 2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총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 전기면도기를 꺼낸 것”이라고 집무실 책상에 있던 ‘면도기’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도 방어해야 될 것 아냐. 어떻게 총을 갖고 있겠나”라며 이 대표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앞서 장 회장 측근 인사가 인터뷰 전날 “장난감 총”이라고 엇갈린 해명을 내놓은 사실이 확인돼 의혹이 더욱 증폭되는 모양새다. 

장 회장은 해당 인터뷰에서 상황이 격해지자 이 대표로부터 신체적 위협을 감지하고 방어에 나섰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이는 “사건 당일 그 자리에서 장 회장이 총기를 꺼냈을 때까지도 욕 한마디 하지 않고 줄곧 앉아있었다”는 이 대표의 주장과도 전면 배치된다.     

광복회 장호권 신임 회장이 21대 총회 선거 전 2명의 후보들과 담합한 내용이 담긴 연대 합의서

장호권 “연대 합의서 작성, 다 사실” 부정선거 의혹 시인

특히 본지는 취재 과정에서 이 대표로부터 사건 발생 당일(6월 22일) 장 회장이 선거 담합을 위해 ‘연대 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중앙일보 보도 등에 따르면 앞서 장 회장과 당시 선거에 출마했던 차창규‧남만우 후보의 3자간 담합 내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된 바 있다. 이 대표는 해당 문서의 최초 유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함구했다. 선거 전 담합을 주도한 인물들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해당 문건에는 ▲광복회장 후보 3인은 광복회 21대 총회에서 최다 득표자에게 표를 몰아주기로 합의 ▲3인 중 회장에 당선되면 ‘적당한 직책’을 논의 ▲합의사항은 절대 비밀 등 3가지 조항이 포함됐다. 총회 결선투표에서 최다 득표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고, 당선인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추후 임원급 고위직으로 발탁하자는 ‘자리 나눠먹기식’ 꼼수다.   

이 대표는 광복회관을 방문했을 당시 장 회장이 선거 담합에 대해 직접 “‘연대 합의서(이미지 참조)에 적힌 모든 게 사실’이라고 실토했다”라며 “장 회장이 ‘그 문서는 조작된 게 아니다. 다만 나는 합의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 장 회장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에서 선거 당일인 지난 5월 31일 오전 8시경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 로비에서 21대 광복회 회장 후보였던 장 회장과 차창규 씨, 그리고 입회자인 허현 전 회장 직무대행이 만나 총회에서 최다 득표자에 대한 몰표를 골자로 연대 합의서를 작성한 사실까지 모두 시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담합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남만우 씨의 경우 허현 직무대행이 합의서 서명을 대필했다는 내용도 이날 장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앞서 지난 6월 9일에도 후보 담합을 공모한 남만우‧차창규 씨를 만나 이러한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고도 첨언했다. 

아울러 장 회장은 이 대표가 부정선거 논란에 사퇴를 요구하는 내부 여론이 있다고 묻자 “그런 상황을 알고 있다”면서도 “(광복회) 개혁을 위해 출마했고, 총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되지 않는 이상 사퇴는 어렵지 않겠나”라고 자진 사임에는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광복회 감리를 맡고 있는 보훈처는 이번 논란에 대해 고강도 내부 감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감사 결과에 따라 장 회장의 거취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보훈처 광복회 협력담당부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장 회장의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 “이미 내부 감사에 착수했고, 감사 결과나 담당 수사기관 결론에 따라 (장 회장에 대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예산을 지원받는 공법단체들의 예산 현황 자료 [광복회 관계자 제공]
국가예산을 지원받는 공법단체들의 예산 현황 자료 [광복회 관계자 제공]

광복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 밖에도 광복회는 전‧현직 회장의 연이은 비위 이슈와 더불어 조직 운영상 적폐도 청산 0순위로 지목된다. 광복회 현행 정관에 따르면 지부장은 모두 ‘직선제’가 아닌 ‘임명제’로 발탁된다. 인사권이 있는 광복회장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야말로 단체 최상층의 권력 독식이 가능한 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광복회 고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김원웅(전 회장)이 들어선 이후 우리 단체는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라며 “김원웅은 자신에게 쓴 소리를 했던 중앙회 고위 간부급이나 지부장들을 모두 면직시키고 자기 사람으로 갈아 치웠다. 회장 앞으로 줄선 인사들과 여기에 반발한 인사들을 중심으로 갈라져 매일같이 반목하는 상황이다. 선거 담합한 장 회장이라고 앞으로 뭐 다를 게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대부분 국고로 충당되는 광복회 연간 총예산에서 운영비를 제외한 자체 사업비가 5%를 밑도는 점도 심각한 문제점으로 꼽힌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광복회 예산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광복회 총예산 25억9300여만 원 가운데 운영비는 24억7500여만 원(95.44%)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 데 비해 사업비는 1억1800여만 원(4.5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광복회의 재정 자립도가 매우 낮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사실상 국가지원예산에만 의존하는 ‘방만 경영’이 문제시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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