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곽혜진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곽혜진 변호사]

거짓말탐지기, 한 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기계지만 직접 탐지기 앞에 서본 사람은 거의 없다. 변호사도 마찬가지다. 통상 변호인은 의뢰인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을 때 동행하지 않기 때문에 형사 사건을 담당 하는 변호사라도 거짓말탐지기 조사가 정확히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성범죄 사건과 같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물증이 없는 경우 종종 이루어진다. 성범죄는 주로 둘만 있는 장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CCTV가 없는 경우가 많아 오로지 당사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수사 단계에서부터 공판 단계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해 사실을 진술하면, 아무래도 수사기관으로서는 ‘진짜 범죄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강한 심증을 갖게 된다.

그런데 동시에 피의자 또한 일관되게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 수사기관은 도저히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한다. 이때 비로소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등장한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심리생리검사로, 특정 질문들에 대한 피검사자의 호흡, 맥박, 혈압 등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주다. 수사관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말탐지기 검사관에게 관련 질문과 자료를 넘기면 해당 검사관이 피의자에게 대신 질문을 한다. 이때 질문은 사건과 반드시 관련이 있는 것에 한하지 않고 오히려 일부는 사건과 전혀 무관한 질문이다. 질문에 따른 피검사자의 신체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당연하지만 질문을 피의자가 정할 수는 없다. 조사 과정은 검사의 공정성과 인권침해 예방을 위해 시작부터 종료 시까지 녹화된다.

검사 결과는 거짓 또는 진실, 판독불가 세 가지 중 하나인데, 그동안은 수사관에 따라 검사 결과를 알려주기도 하고 현재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결과를 알려주지 않기도 했다. 거짓말탐지검사 운영 규칙 제27조가 ‘검사 결과 회보서 외 검사 관계 문서는 피검사자나 제삼자에게 공개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피의자로서는 황당할 수 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은 것만으로도 화가 나는데 결과조차 알 수 없다니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단순히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정보를 공개하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다.

당시 행정법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피의자 A 씨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2016구합 52699)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하면서, “비록 거짓말탐지검사 운영 규칙 제27조가 ‘검사 결과 회보서 외 검사 관계 문서’는 피검사자나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행정기관 내부 사무 처리준칙으로서 행정규칙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검사 조사표와 질문표, 검사 판정서 등 거짓말탐지기 관련 문서들이 공개되더라도 수사기관의 직무수행이 현저히 곤란하게 될 것이라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수사기관은 피의자가 요청할 경우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를 공개하게 되었다.

검사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과연 피의자에게 좋은 것일까?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필자가 수행한 사건 중 하나로, 한 집안의 가장이 친족을 성폭행하였다고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자녀들과 아내는 피의자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수사관은 강하게 혐의를 부인하는 피의자에게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권했다. 그렇게 억울하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임하기로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때 의뢰인의 흔들리던 동공을 잊지 못한다. 가족들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의뢰인의 입에서 ‘그렇게 하겠다.’라는 대답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변호사님 저 어떻게 하죠?’라고 호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조사를 거부할 수도 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어디까지나 피의자가 동의해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에게 권하는 경우가 많고 수사기관으로서는 피의자가 조사를 거부할 경우 내심 ‘뭔가 찔리는 것이 있구나.’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거부했다가 자칫 수사의 방향 자체가 불리하게 바뀔 수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만약 피의자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거부하고자 한다면, 수사기관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제시하여야 한다.  

위 사안으로 돌아가 보자. 의뢰인은 결국 거짓말탐지기 조사에 응했다.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조사 전날까지 필자와 수십 차례에 걸쳐 미팅을 진행했고 예상 질문까지 요구하였다. 결전의 날에도 피의자는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조사실에 출석했다고 한다. 검사 결과는 예상하다시피 ‘거짓’이었다. 수사기관은 의뢰인의 딸이 검사 결과를 묻자 친절히 ‘거짓’이 나왔다고 안내했다고 한다.

물론,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는 증거능력이 없다. 즉, 그 결과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쓸 수 없다.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조사를 받는다는 것 자체만으로 긴장하는 경우가 많고 결과에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 검사 결과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대법원 2005. 5. 26. 선고 2005도130 판결). 그러나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는 실제로 판사의 강한 심증을 뒷받침하는 증거임에는 틀림 없다.

<곽혜진 변호사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행정법 수료 ▲변호사시험 합격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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