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걷기를 좋아한다. 등산도 자주 간다. 사람 냄새나는 골목길 걷기도 즐긴다. 골목길은 특히 추억을 소환할 수 있어 좋다. 대로도 괜찮다. 역사가 숨 쉬는 명소를 만나는 기쁨도 크다. 이번 주부터 이처럼 느낌이 다른 곳곳을 걷는 도봉구 역사문화탐방을 소개한다. 길이 주제다. 현대사 인물길 그 네 번째 편이다.

1987년 로버트케니디 인권상을 인재근 여사가 대신 받았다.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1987년 로버트케니디 인권상을 인재근 여사가 대신 받았다.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 도봉 현대사길 이어져 도봉역사의 서사가 되다!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수상 김근태 한국 민주화운동 상징

도봉 역사문화의 길도봉 역사문화 인물길을 연재하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수많은 도봉의 역사적 사건을 봤다. 그 사건들은 역사적 상황과 인물로 엮여 있음을 깨달았다. 역사와 인물은 다른 길이 아니다. 도봉 그 자체였다. 이 길이 이어져 도봉역사의 서사가 됐다. 도봉 문화의 담론이 됐다. 서사와 담론은 얽히고설켜 도봉의 정체성이 됐다. 과거와 현재가 그리고 도봉의 인물과 지역에 정체성이 배어 있다는 얘기다.

도봉 정체성은 운동성이다김수영 문학관

필자의 생각으로 도봉의 정체성은 운동성이다. 근현대사에 점철된 에너지가 도봉에서 피어났다는 얘기다. 전형필의 문화운동, 함석헌의 평화운동, 전태일의 노동운동, 김근태의 민주화운동…….

시인 김수영도 현실을 비판하는 시로 운동에 동참했다. 그는 사회운동에 문학적 감성을 불어넣은 민중문학의 선구자였다. 8·15광복, 4·19혁명, 5·16군사정변 그리고 산업화와 도시화 등 한국 근대역사 현장 속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시의 전사였다. 참여시를 통해 민중과 소통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했다. 김수영을 만나러 간다. 김수영 문학관으로 향했다. 김수영 문학관은 연산군묘에서 멀지 않은 데 있다. 김수영 문학관 디자인은 시인 김수영과 그의 시혼을 닮은 듯하다. 건물은 각이 반듯하다. 기능과 효율이 중시된 듯하다. 다소 직설적이다. 외벽의 배색을 통해 강직함을 누그러뜨린 듯하다. 이지적임, 강인함, 그리고 부드러움이 배어 나왔다. 건물 외벽에 긴 나무를 세로로 줄지어 세운 김수영문학관이란 간판이 그런 효과를 낳는듯했다.

필자가 도착했을 때 문학관 현관문은 닫혀 있다. 마침 문화관을 개방하지 않는 점심시간에 걸린 것이다. 한참을 배회했다.

김수영 시인 시비.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김수영 시인 시비.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문학관에 들어서자 그의 대표작인 <>이 반겨준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은 김수영의 사상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 그게 곧 김수영 정신이다. 김수영이 말하는 풀의 본성은 저항이며 자유다. 자유를 향한 저항은 경험에서 얻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그는 전쟁포로(민간인 신분)로 동족상잔과 남북분단의 아픔을 겪었다. 4·19의거의 실패 또한 그의 저항 몸부림을 거칠게 만들었다. 그런 경험이 바람에 일어나는 시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김수영해방 후 한국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자신의 문학과 사회 현실을 일치시키기 위해 줄기차게 노력했다. 1층 전시실 벽면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다. 나는 우리의 현실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부끄럽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안타깝고 부끄러운 것은 이 뒤떨어진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시인의 태도이다.”

김수영 시인 불의의 교통사고 당해...나이 47세 요절

그의 경험이 만든 시 179편을 비롯하여 산문 123, 번역 43편 등 육필 원고가 1층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육필 원고를 직접 보는 감동을 컸다. 지우고 고치고 끼워 넣은 단어 하나, 글자 하나에서 그의 빈틈없는 성격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1층 전시관 맨 안쪽 편에 김수영의 흉상이 서 있다.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를 바라보는 순간 앞에서 본 글귀가 클로즈업됐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필자가 부끄러웠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8인용 식탁이 눈에 띈다. 책상이 아니라 식탁에서 주로 원고를 쓴 모양이다. 식탁 뒤 벽면에는 상주사심(常住死心)’이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늘 죽을 각오로 살아라라는 시인의 좌우명이란다. 삶을 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김수영 시인 서재.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김수영 시인 서재.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시인은 불의 사고로 세상과 하직했다. 1968616일 교통사고로 47년 짧은 삶을 마감했다. 김수영문학관이 도봉구에 세워진 것은 그가 도봉산 자락에 묻힌 때문이다.

김수영문학관을 빠져나오자 숨이 막힐 정도로 후덥지근하다. 더위를 무릅쓰고 가야 할 데가 있다. 나지막한 시루봉에 있는 방학동 천주교 혜화동 교회 추모공원이다.

이 묘원에는 많은 유명 인사가 잠들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사실주의 문학(소설)의 개척자인 횡보 염상섭, 농민문학의 선구자인 이무영 등이다. 왕릉묘역길로 향했다. 김수영 문학관에서 자동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추모공원은 당연히 있어야 할 이름표조차 달고 있지 않았다. 추모공원임을 알 수 있는 단서는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에는 묘지 사용료를 성실히 납부합시다. 사용료 체납된 묘는 무연고 처리됩니다라고 적혀 있다. 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에 왔어야 했다. 추모공원은 무성한 잡초에 덮여 있었다. 후손의 손길이 미친 묘소도 찾기 어려웠다. 하물면 이무영과 염상섭의 묘소도 찾을 수 없었다. 관리소에 전화했다. 관리인은 시멘트 길 끝에 이무영 묘지가 있고 시멘트 길 오른편에 염상섭의 묘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필자는 눈뜬 봉사가 됐다. 관리인이 알려준 길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했지만 소용없었다. 찜통 같은 날씨가 원망스러웠다. 그나마 소득이라는 한 묘소 귀퉁이에 숨어 있는 바둑돌을 발견한 것이었다.

염상섭과 이무영은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이들의 묘소가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잡초에 묻힌 묘소처럼 그의 존재가 사라질까 두렵다. 필자의 눈썰미가 없어서 그들의 묘소를 찾지 못한 것이기 바랄 뿐이다.

염상섭.이무영 지나 가슴설레게한 김근태 도서관

김근태 기념도서관.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김근태 기념도서관.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차를 몰아 도봉구립 김근태 기념도서관으로 이동했다. 이 도서관은 도봉 역사문화의 길이나 도봉 역사문화 인물길에 포함된 탐방지는 아니다. 개관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은 탓일 것이다. 김근태 기념도서관은 도봉역(도봉동) 인근에 있다. 김근태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설렜다. ‘내 나이에도 설레는 일이 있구나라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사실 필자와 김근태는 사적 인연이 있다. 물론 각별한 관계는 아니다. 그의 부음 소식을 들은 게 벌써 11년 전이다. 이 도서관은 김근태 선생이 돌아가신 지 10년째 되는 2021년에 개관했다. 주차장을 나오자 김근태가 앉아 있다. 원반형 돌 받침대 위에 양반다리를 한 채 무엇인가 얘기를 나누는 듯한 김근태 좌상이 있다. 받침대에는 그가 남긴 희망이 힘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마치 생전의 모습을 보는 듯이 반가웠다.

도서관 외관의 첫인상은 큐브다. 다차원의 입방체 같다. 마치 직각육면체를 사선을 따라 세워둔 듯하다. 시선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게 변했다. 또 직각으로 마주한 커다란 유리창은 수락산과 도봉산을 비추고 있다. 왜 이곳에 이런 문화시설이 들어선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도서관 내부 이 종전에 보던 도서관과는 사뭇 달랐다. 안으로 들어가자 더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호기심을 낳는 구조라고 할까. 완전한 개방식인 생각곳(1층 열람실)을 지나자 미로 같은 느낌의 계단에 다양한 책과 볼거리가 전시되어 있다. 방문목적인 기억곳(상설전시실)에 갔다. 김근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책상과 옥중서신, 성명서 그리고 그가 평소 입던 양복과 구두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을 둘러본 뒤에야 왜 이처럼 독특한 디자인을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김근태 기념도서관은

고 김근태 선생  방명록중 일부.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고 김근태 선생 방명록중 일부.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민주주의·인권 특화 도서관으로, 김근태의 민주적 삶을 도서관, 전시관, 기록관으로 담은 복합문화공간(라키비움형 도서관)이었던 것이다.

김근태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했다. 1988년 독일 함부르크 재단이 뽑은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됐다. 도서관은 그가 보여준 가치를 기억하기 위해 따뜻한 공동체 문화를 실현하는 민주주의·인권 특화 도서관이라는 비전 아래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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