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가 있다. ‘명마가 백락(말을 잘 다루는 주나라 사람)을 만나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인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당나라 대문장가인 한유(韓愈)가 쓴 ‘잡설(雜說)’ 중에는 천리마가 등장한다. ‘세유백락 연후유천리마, 천리마상유 이백락불상유(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 千里馬常有 而伯樂不常有)’. ‘세상에는 백락이 있은 연후에야 천리마가 있고, 천리마는 늘 있지만 백락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다.

인재(천리마)를 알아보는 지도자가 있어야 인재가 묻혀버리지 않는다는 ‘인재감별’에 대한 고사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낮은 국정 지지율로 인해 많은 국민이 국정 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사가 만사(萬事)’다. 더 늦기 전에 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바로 잡아야 한다. 첫째, 보수정권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둘째, 대통령 스스로 덕을 닦고, 셋째, 현능(賢能)한 자를 쓰고, 넷째, 방치된 법과 제도를 고치고, 다섯째, 헌정사에 해악을 끼친 ‘문재인 정권의 신적폐’를 일소해야 한다. 돌아선 민심이 다시 회복돼야 국정개혁 수행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가장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이 태평성세(太平盛世)를 구가한 것은 당대 최고의 인재를 발탁해서 쓴 결과이다. 세종 주변엔 황희, 맹사성, 허조, 최윤덕 등 기라성 같은 명재상들과 청렴한 인물들이 포진해 ‘성공시대’를 열었다.

세종 대에만 현능하고 청렴한 인물이 태어났겠는가. 인재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인재를 알아볼 줄 아는 백락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없었을 뿐이다.

세종에겐 인재를 알아보는 ‘예리한 눈’이 있었고, 인재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는 남다른 ‘용인술’이 있었으며, 신분을 따지지 않고 능력을 살 줄 아는 ‘포용력’이 있었다.

세종의 32년 재위 기간 중 즉위 초는 ‘가뭄과 화재’로 고통이 점철된 시기이다. 즉위년(1418)에, 조선은 ‘7년 대한(大旱)’에 접어든다. 22세의 젊은 왕은 광화문 네거리 6조 관아에 가마솥을 걸고 죽을 쒀 백성들에게 나눠줬으며, 고통 분담을 위해 경회루 앞 초가삼간에서 지냈다.

또한 즉위 당시 조선 국내외 정세는 불안했다. 정종과 태종 2명의 상왕이 버티고 있었고, 병권은 태종이 틀어쥐고 있었다. 북쪽에선 여진족이 국경을 위협하고 남쪽에선 왜구들의 노략질이 이어졌다.

그러나 경연(經筵)과 호학(好學)의 군주 세종은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때가 되자 세종은 육조직계제를 의정부서사제로 개편하여 국왕에게 집중된 권력을 신하들에게 과감히 이양,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이룬 ‘군신공치(君臣共治)’를 이뤄나갔다.

세종 리더십의 핵심은 ‘진정한 애민(愛民)’이다. 한글 창제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장영실(관노 출신)의 파격 등용도, 고려 말에 비해 농지는 2.4배, 1결당 수확량은 4배가 늘어난 것도 여민동락(與民同樂)한 결과다.

세종은 말한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며 먹는 것을 하늘처럼 우러러 보는 사람들이다. 만약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굶어죽는 자가 있다면 감사나 수령에게 그 죄를 물을 것이다.”(1419년)

신병주 건국대 교수는 ‘자주-민본-실용’을 세종 대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다. 포용의 리더십과 탁월한 인재 등용으로 조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족사에 빛나는 불후(不朽)의 업적을 남긴 세종대왕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民惟邦本食爲天(민유방본식위천) 백성은 나라의 근본으로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며

共治君臣善政宣(공치군신선정선) 임금과 신하가 함께 다스려 선정을 베풀었네

八道平康生業樂(팔도평강생업락) 조선 팔도(나라 안)가 평안해 생업이 즐거웠고

四方安定國防全(사방안정국방전) 사방(변방)이 안정되어 국방이 안전했네

正音白白文明導(정음백백문명도) 훈민정음이 뚜렷하여 문명 창달을 선도했고

經筵申申興起先(경연신신흥기선) 경연이 화평하여 떨쳐 일어남을 선도했네

以進大同皆和睦(이진대동개화목) 이렇게 대동사회로 나아가 백성들은 화목했고

流芳百世不虛傳(유방백세불허전) 위대한 이름이 후세에 전함이 헛된 것이 아니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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