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검경갈등에서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그래서 ‘검수완박’을 추진했다. 그러나 5년만에 정권이 교체되자 상황은 역전됐다. 급기야 윤석열 정부는 경찰대 졸업 후 경위(7급 상당)로 출발하는 경찰 인사와 관련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경찰대 폐지론이 흘러나왔다.

현재 윤 정부는 행안부내 인사와 자치경찰 업무 등을 담당할 경찰국을 신설한데 이어, 경위로 임용되는 경찰대학 졸업생들의 임관 경로까지 개혁대상으로 지목했다. 얼핏보면 다수 순경출신들을 배려한 듯 하지만 미사여구로 그칠 공산이 높다. 이미 2001년 국립세무대를 폐지한 국세청이 좋은 사례다.

과거 국립세무대학을 졸업하면 8급으로 특채된 것을 문제삼아  결국  세무대가 폐지됐다. 국립세무대학은 1980년 4월17일 세무전문대학으로 출발해 이듬해 7월14일 국립세무대학으로 개편돼 제19회 졸업생까지 5천99명을 배출했으며, 이들은 졸업 후 8급 공무원으로 특채돼 국세청과 관세청 등에서 고위공무원이 돼 근무했다. 잘나가던 세대생들은 국립세무대학이 1999년 세무공무원 채용환경의 변화와 정부 기능 간소화 등을 명분으로 폐지 법률안이 공포돼 2001년 2월말 폐교되면서 그  자리를 다수의 비세무대 출신이 아닌 극소수의 행신출신이 차지했다.

현재 국세청의 경우 고공단 인사 때면 “행시 편중이다. 주요 보직을 행시가 독차지한다”는 불만이 만연하다. 2만여 직원 가운데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행시 출신이 고공단을 사실상 싹쓸이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 전체에서 순경 입직자가 96.3%인데, 경무관 이상에서는 순경 출신이 2.3%에 불과해 경찰대 폐지론은 과거부터 있었다. 실제로 이번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와 경합을 벌인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행시 35회로 통일부에서 근무하다, 2004년 특채로 경찰관이 됐다. 이는 경찰대가 없어지면 경찰대 출신들이 차지하던 고위직은 다수의 순경출신에게 가는 것이 아닌 극소수의 행시출신들이 차지할 공산이 높다는 반증이다. 승진을 바라는 하위직 공무원들이 일할 맛이 날리 없고 그래서 발빠른 공무원들은 편한 보직을 받아 고시공부를 하는 공무원들이 늘어난 이유다.  

가뜩이나 인재풀이 좁은 윤 대통령은 인사문제가 있을때 여러 번 “이렇게 훌륭한 장관들…” “이전 정부보다 낫지 않나”며 ‘엘리트 내각’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좋은 학교 나오고, 순탄하게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관료(사시·행시·외시 출신)와 교수·전문가 출신들이 대거 기용했다. 사실상 사시.행시 출신들이 윤 대통령 국정운영의 한축을 맡고 있는마당에 경찰대가 개혁의 대상으로 몰려 폐지 내지 위상이 추락할 경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고시 공화국이 될 공산이 높다. 

정치권에 들어오기전까지 평생 공무원으로 살아온 김동연 경기지사는 ‘새로운 물결’ 창당시 ‘1호 공약’으로 “공무원 철밥통을 깨고, 유연한 정부를 만들겠다. 시험 한 번으로 보장되는 공무원 정년을 폐지하겠다”며 5급 행정고시를 폐지하겠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대신 5급 공무원은 민간 경력직과 내부승진으로 충원하고 7급 채용을 확대해 “공직으로 입문할 기회의 문을 더 넓고 고르게 열겠다”고 했다.

물론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해 물 건너간 공약이 됐지만 본인이 행시에 입법고시까지 양대 고시를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시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건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공부만 잘하면 리더가 될  수 있는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고 사회적 공감능력을 가진 리더들이 각광받는 사회가  됐다. 고시공화국으로 가는 것을 우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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