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후 대통령 지지도가 떨어지다 보니 ‘문재인 때가 더 나았다’는 소리가 나올 판이다. 그러나 문 정권 5년은 대한민국 체제가 탄핵되고, 국가정체성이 무너지고, 자유와 인권이 유린된 우리 ‘헌정사의 암흑기’였다.

문 정권의 ‘적폐청산’은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와 다를 바 없는 ‘현대판 사화’요, 보수를 궤멸시키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정치보복’이었다. 또한 무고한 자유우파 인사들을 전과자로 만들어 공직 취임을 막고, 선거 출마를 원천봉쇄해 좌파 장기집권을 기도한 ‘계획된 음모’였다.

​우리 역사에도 칠흑같이 어두웠던 시절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와 ‘원간섭기(元干涉期)’가 대표적이다. 원간섭기는 고려가 몽골과 강화를 맺고 입조한 1259년부터 공민왕의 반원정변이 있었던 1356년까지 97년간의 기간을 말한다.

원간섭기에 부자(父子)가 나란히 원 과거에 수석 합격해 세상을 놀라게 한 인물이 있다.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과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이 그들이다.

이곡은 1332년 원나라 정동성(征東省) 향시에 수석을 했고, 다시 전시(殿試)에 차석으로 급제하여 문명(文名)을 떨쳤던 기개 높은 공신이다. 그는 평생 동서남북을 떠돈 노마드였지만, 아들에게 정치 열정, 성리학, 코스모폴리탄과 같은 정신적 유산을 남겼다.

이곡은 스승인 이제현과 협의하여 ‘공녀(貢女)의 폐단’을 원 황제에게 상소하였고, 마침내 혈성(血聲)이 통했다. “한 번 채홍사가 오면 나라 안이 온통 소란하여 개, 닭까지도 불안해합니다. (중략) 한 고을에서 40~50명씩의 어린 딸들을 끌고 나가면 그 부모들은 비통을 못 가누어 더러는 샘물에 빠지고 더러는 목을 매어 죽기도 합니다. 아! 우리 고려사람 무슨 죄가 있어 이 괴로움을 언제까지 당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곡의 아들 목은은 14세에 진사(進士)가 되고, 21세에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24세에 관동지방을 주유(周遊)하다 타계한 아버지 상을 당해 귀국했다.

1352년 25세의 목은은 공민왕이 즉위하자 전제(田制), 왜구, 무과, 학교-과거, 불교, 인사 등 ‘여섯 분야 시정개혁’에 대해 복중상소(服中上疏)를 올렸다. “국가가 평안할 때는 공경(公卿)의 말이라도 기러기 털보다 가볍게 여기나, 유사시는 필부의 말이라도 태산보다 무겁게 여깁니다.”

이듬해 목은은 향시와 정동행성 향시에 1등으로 합격했으며, 1354년 원나라 제과(制科) 회시(會試)에 1등, 전시(殿試)에 2등으로 합격해 고려의 학문을 빛냈다. 귀국 후 지공거(知貢擧)로 과거시험을 4번이나 주관했다.

목은은 친명정책을 지지했으나 위화도회군으로 우왕이 쫓겨나자 조민수 등과 함께 창왕을 옹립하고 이성계 세력과 맞서다 유배되었다. 조선개국 후 태조는 목은을 한산백(韓山佰)으로 봉하고 출사(出仕)를 종용하였으나 “망국의 사대부는 오로지 해골을 고산(故山)에 파묻을 뿐”이라며 고려에 대해 지조를 지켰다.

목은은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신유학의 보급과 발전에 공헌하여 조선 성리학 부흥의 길을 열었다. 운곡(耘谷) 원천석은 자신의 시 ‘해동이현찬(海東二賢讚)’에서 ‘일대영웅반재문(一代英雄半在門, 고려 말 영웅의 반은 목은 문하에서 나왔다)’이라고 노래했다.

이처럼 고려 성리학의 시조인 ‘안향-이제현-이곡’을 이은 목은의 문하에서 고려 충신들과 조선 창업자들이 두루 배출되었다. 정몽주, 길재, 이숭인 등이 전자이고 정도전, 하륜, 권근 등이 후자이다.

정몽주-길재-권근-김종직-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사상적 스승’으로 거족(巨足)을 남긴 목은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東溟槐市節臣村(동명괴시절신촌) 동쪽 바다 괴시는 절개 있는 신하를 둔 고장이며

出仕終成鄒魯根(출사종성추로근) 벼슬에 나가 마침내 성리학의 뿌리를 형성했네

兩擧壯元驚內外(양거장원경내외) 양국(려·원) 과거에 장원을 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四任座主定乾坤(사임좌주정건곤) 네 번이나 지공거를 맡아 하늘과 땅을 정했네

歸鄕隱逸渾身道(귀양은일혼신도) 귀양 간 학자는 혼신을 다해 (제자들을) 가르쳤고

朝野人材半在門(조야인재반재문) 조정과 민간 인재 반은 목은의 문하에서 나왔네

浮碧樓存興亡史(부벽루존흥망사) 부벽루에는 고려의 흥망사가 남아 있고

千秋萬歲不忘恩(천추만세불망은) 천추만세토록 (목은의) 은혜를 잊지 못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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