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의 등산 코스는 다양하다. 문사동계곡 등산로에서 첫 갈림길을 맞았다. 계곡을 따라 우이암으로 올라가는 길과 천축사와 마당바위를 지나 신선대로 가는 길이다. 신선대 정상을 찍고 꿀맛 같은 휴식을 뒤로 하고 하산했다. 마당바위까지는 오르던 그 길이다. 산길은 늘 그렇듯이 새롭다. 마당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등산길에 들렀던 산사를 떠올린다. 금강암, 성불사, 구봉사, 천지사……. 사찰 순례객이 된 기분이다. 다음 순례지는 도봉산의 3대 명찰인 천축사, 광륜사 그리고 망월사다.

천축사내 비로자나삼신불도다, 1891년 상궁들이 명성왕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그렸다. 이탱화는 야외 법회를 열때 걸어놓는 괘불도다.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천축사내 비로자나삼신불도다, 1891년 상궁들이 명성왕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그렸다. 이탱화는 야외 법회를 열때 걸어놓는 괘불도다.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 천축사, 광륜사, 망월사...순례자의 길을 걷다!
6·25 전쟁 중에는 미군 숙소로 이용된 만장사

천축사는 마당바위 바로 밑에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대한 천축사 표지석 바위가 방문객을 맞는다. 표지석 좌우에는 금강역사가 절을 지키고 있다. 절의 수문장은 보통 사천왕상이다. 금강역사를 세운 이유가 궁금하다. 금강역사를 돌아서자 수많은 보살상이 진열하고 있다. 모두 198분의 보살이다.

이곳에 기거하는 한 스님(이름을 밝히지 않음)은 이를 노상보살상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중생의 구원자인 지장보살,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등 모든 보살이 다 여기에 있다라면서 불법이 널리 퍼지길 바라는 신자가 힘을 모아 조성했다라고 말했다. 자세히 봤다. 198분 보살의 표정, 손과 머리 모양, 차림새가 제각각이다. 스님은 끊임없는 변화를 상징한다라고 말했다. 자연도, 사람의 생각도 늘 변한다.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움직인다. 그 변화를 깨닫는 게 중요하다. 그게 바로 불심의 본질이다. 다양한 모양의 불상은 곧 무상법문을 상징하고 있는지 모른다.

천축사, 시유형문화재 목조석가삼존불미륵불

노상보살상을 끼고 도는 계단을 벗어났다. 우뚝 솟은 선인봉이 천축사를 굽어보고 있다. 그런데 천축사는 흔히 보는 사찰과는 다른 점이 꽤 많다. 우선 중심 법당의 전각 이름이 없다. 이를테면 무량사의 극락전’, 화엄사의 각황전, 직지사의 대웅전과 같은 이름 없다. 그저 천축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내부 역시 조금 이채롭다. 대웅전은 보통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 보신(報身)인 노자나불 등이 봉안되어 있다. 선종의 삼신설에 따른 것이다.

54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 석가모니불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54천축사 목조석가삼존불. 석가모니불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하지만 천축사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인 제화갈라보살과 석가모니,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바로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목조석가삼존불이다. 목조석가삼존불을 바라보고 오른편에는 천축사의 또 다른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비로자나삼신불도가 있다.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노자나불이 그려진 불화다. 한 공간에 두 개 형태의 삼존불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탱화는 1891년 명성황후를 위해 상궁들이 시주한 것이라고 한다. 천축사에는 비로자나삼신불도와 짝을 이루는 비로자나삼신쾌불도도 있다.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사찰 내부에는 걸어두지 못한다. 이 탱화 역시 서울시 문화재이다. 야외법회가 있을 때 걸어놓고 예불을 드린다.

천축사의 전신은 옥천암이다. 673년 의상이 북한산에서 수련하면서 제자를 시켜 이곳에 옥천암을 세웠다. 고려 명종 때는 지금의 도봉서원 자리에 있던 영국사의 부속 암자로 승격했다. 1398년 조선 태조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절을 고치고 천축사로 개명했다. 천축사라는 이름은 고려 때 인도 승려 지공이 나옹화상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내려오는 길에 일주문을 봤다. 천년고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천축사 일주문은 최근에 세워졌다고 한다. 천축사 스님은 본래 일주문은 헬기 사고로 인해 화를 당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산행은 내려올 때 들르기로 미뤄둔 광륜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광륜사는 도봉산 입구에 있다. 이 절은 의상대사가 673년 천축사와 함께 창건한 절이다. 창건 당시의 절 이름은 만장사(萬丈寺). 만장사는 조선시대의 억불정책으로 인해 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이 화마에 소실됐다. 그 바람에 고찰의 명맥조차 잇기 어려웠다. 조선 후기에는 신정왕후(효명세자의 부인, 헌종의 어머니)는 다시 만장사를 중건하고 부속건물을 지어 거처(별장)로 이용했다. 신정왕후가 왕으로 선택한 고종의 아버지(대원군)도 이곳에서 아들을 대신해 국정을 처리했다. 6·25 전쟁 중에는 미군 숙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1970년 이후 중창을 거듭했다. 2002년 현대 한국불교 큰 스승으로 추앙받는 청화대종사에 의해 광륜사로 개칭했다.

의상대사가 북한산 의상대에서 수련할대 제자를 시켜 이곳에 옥천암을 짓게 했다. 옥천암 이름의 유래를 짐작케 하는 옥천석굴원.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의상대사가 북한산 의상대에서 수련할대 제자를 시켜 이곳에 옥천암을 짓게 했다. 옥천암 이름의 유래를 짐작케 하는 옥천석굴원.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광륜사, 의상대사 창건한 절...만장사로 불려

731일 두 주만의 도봉산 산행이다. 도봉산의 최고 명찰인 망월사에 가기 위해서다. 이번에는 원도봉산 입구로부터 출발했다. 5호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오락가락했다. 아무리 비가 온다고 해서 망월사를 보지 않고 도봉산 산사를 다녀왔다고 할 수 없다. 비를 뚫고 망월사에 올랐다. 원도봉산 입구에서부터 망월사 계곡을 따라 1.9km 지점에 천년고찰이 있다. 망월사 계곡을 따라 오는 산길은 그 자체가 비 오는 날의 산수화. 도봉산은 지난번 문사동계곡 산행 때와 전혀 다른 풍경과 속살을 보여줬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세 개의 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중생교’, ‘천중교’, ‘극락교.

다리에서 내려다본 계곡 그리고 계곡을 따라 부딪치며 사라지는 거품은 비 오는 날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정취다. 부서지고 흩어지는 물을 보면서 다시 한번 무상불심을 느낀다. 어떤 명화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걸음도 느려진다. 온몸은 땀과 빗물 범벅이다. 더군다나 빗방울을 굵어졌다. 박자도 맞지 않는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혹시 계곡이 불어 내려갈 수 없을지 모르겠다는 걱정도 든다. 무상불심도 다 헛소리다. 즐기자. ‘외로움은 환경이 주는 것, 고독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지 않았던가. 홀로 하는 산행의 기쁨을 누리자고 다짐했다.

망월사 낙가보전 전경.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망월사 낙가보전 전경.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드디어 동화 같은 절, 망월사에 도착했다. 망월사는 일주문이 없다. 전각에 가려면 골목처럼 좁은 길과 길 끝에 난 작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계단 끝에 매달린 해탈문을 통해 금당에 들어섰다. 이끼 낀 해거국사(1호 고려 국사) 부도와 천봉선사의 태흘탑의 탑비(1797년 건립)가 망월사의 유구한 역사를 방증하는 듯하다.

웅장한 녹음 속의 대가람이다. 망월사의 법당은 낙가보전이다. 낙가는 관세음보살이 계신 산이다. 낙가보전에는 석가모니상 뒤에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이유다. 관세음보살 중에서도 팔이 42개인 42수 관음보살이다. ‘천 개의 눈천 개의 손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있다. 낙가보전은 문도 닫혀 있었다. 불도 켜져 있지 않았다. 캄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낙가보전의 불상을 응시하자 강한 빛이 나는 듯 환해졌다. 신기하다. 아마 유난히 높은 천장 탓이 아닐까 생각했다.

밖에서 본 낙가보전은 이층구조의 한옥이다. 흔치 않은 디자인이다. 보은 속리산의 법주사 대웅보전, 정읍 모악산의 금산사의 대자보전 등이 이 같은 2층 구조이다. 복층 구조임은 건물 뒤편에서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이 높은 1층임을 알게 된다. 망월사 낙가보전은 불상은 1층에서만 모신다. 이는 외양만 복층이라는 의미다.

망월사 칠성각.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망월사 칠성각.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망월사, 웅장한 녹음속 동화속 사찰

건축구조 얘기가 나온 길에 참선도량인 무위당도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무위당은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지장보살이 모셔진 전각을 흔히 지장전 혹은 명부전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기도하는 전각이다. 다른 이름이 이상한 게 아니다. 한국 사찰에서 전혀 본 일이 없는 지붕 모양을 하고 있다. 팔작지붕이 아닌 맞배지붕이다. 종무실에 들러 종무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무위당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참선도량이라면서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낙가본원 뒤로 돌아 돌계단을 오르면 고불원이 나온다. ‘고불은 옛 부처님 곧 석가모니불을 의미한다. 고불원에도 삼존불(석가모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칠성각에서 본 망월사는 한마디로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중생인 보통 사람이 천중선원(망월사)에서 수련을 한 뒤 극락을 경험한 듯하다

망월사 계곡.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망월사 계곡.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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