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라지만 찌는 듯한 무더위가 아직 아스팔트를 눅진하게 녹이며 노염을 뿜고 있었다. 네거리에 우뚝 선 은행 건물 그늘 아래로 어깨가 축 늘어진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연방 목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건널목을 지나간다. 수많은 발길이 무심히 지나치는 서울의 한복판, 광교 네거리 밑에서는 어둠에 묻힌 조선조(朝鮮朝)의 역사를 캐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금은 다리 밑으로 물이 맑다는 뜻의 청계천(淸溪川)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지만 몇년 전만해도 아스팔트로 덮여있고 위로는 고가 다리가 달리고 있었다.
1994년⋯

그 광통교 자리에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대 사건이 터져 나올 줄이야 아무도 짐작 하지 못했다.
김인세가 광교 아스팔트 지하 청계천의 문화재 발굴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인세 만큼 옛날 광통교에 대한 애착을 가진 사람도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조 건국 초기에 만들어진 이 광통교(廣通橋)가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까지 서울의 남북을 잇는 돌다리 역할을 하다가 수십 년 동안 아스팔트 밑에 묻힌채 어둠속에서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 돌다리에 얽힌 태조 이성계와 그의 다섯째 아들 방원, 그리고 그의 왕후 현빈 강(康)씨 사이에 얽힌 피눈물 나는 사연을 알게 된 김인세는 더욱 그 다리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다.

명색 한국사를 전공해서 나이 30에 박사 학위 까지 가지고 있는 김인세 였으나 아직도 변변한 전문 강사 자리 하나 얻지 못하고 보따리 강사 노릇을 하고 있는 처지라 어찌 보면 분수에 맞지 않을 정도로 엉뚱한 짓을 많이 했었다.
전국에 있는 고적,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그 연유를 조사하던 그는 광통교에 이르자 마치 그 다리를 위해 살아온 사람처럼 집착하게 되었다. 
청계천 복개가 걷히고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기전.

그 다리에 사용된 석재들을 지상으로 끌어 올려 복원 시켜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일을 위해 관계 당국을 수 없이 찾아다니고 진정서, 탄원서도 수 없이 냈으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포기 하지 않고 ‘광통교 복원 연구소’까지 만들고 이 일에 열중했다.

마침내 그의 뜻을 알아주는 독지가를 만나 우선 광교 네거리 지하의 옛 청계천에 들어가 그 다리를 관측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인세가 처음 광통교에 관해 기막힌 사연을 들은 것은 장미영으로 부터였다.  
그는 전국의 문화유적을 조사하러 다닐 때 상당한 시간을 장미영과 같이 다녔다. 장미영은 그의 대학원 선배였으나 나이는 김인세 보다 한살이 적었다. 두 사람은 닮은 데가 많았다. 

문화재에 대한 맹목적인 탐구심이라 던지, 현실감각이 결여된 이상주의자라든지, 엉뚱한 일을 저지르고 즐거워하는 성격 같은 것이 그들을 오래 동안 같이 있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종내는 연인으로 까지 만들고 말았다.
그날도 그들은 늘 지나다니며 무심히 보던 종로의 보신각을 관찰하기 위해 종루에 올라 갔다. 그들은 거대한 종의 크기에 압도당했다. 표면의 무늬와 명문을 살피던 장미영이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인세씨 일루 와 봐요! 여기가 이렇게 움푹 파였어.”
미영은 종이 매달려 있는 밑바닥을 가르켰다. 종과 바닥 사이는 40센티쯤 틈이 있었다. 그 틈에 손을 넣어 보던 장미영이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어머 이 안 바닥이 움푹 파였어요.”
미영은 종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인세씨 이리 들어와 봐요.”

종 안으로 들어간 장미영의 말이 종에 공명을 일으키며 바닥에서 울려왔다. 김인세도  종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야! 여긴 정말 딴 세상이구나!”
종을 칠 때 그 여음을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종루의 바닥에는 대체로 구멍을 뚫거나 파 놓는 경우가 많은데 보신각종은 몸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파놓은 바닥도 엄청나게 컸다.

서너 사람이 들어 누워도 될 정도로 파놓은 나무 바닥은 아늑한 딴 세상 같았다. 
종의 직경이 2미터 20여 센티나 되었으니 꽤 큰 방이 있는 셈이었다. 종과 바닥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극적인 조명 효과까지 내었다. 종로 거리와 광교 쪽에서 들리는 자동차의 소음도 여과되어 멀리서 들리는 배경음처럼 느껴졌다.

20톤이 넘는 둥그런 종으로 밀폐된 공간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은 표현하기 어려운 야릇한 심경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울 도심에서 대낮에 이렇게 완전한 낭만적인 공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물론 밖에서는 종속에 누가 들어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여기 신방 차렸으면 좋겠는데⋯”

김인세가 비스듬히 누워 도톰한 장미영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밑으로 부터 조명을 받은 미영은 평소 보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엿보게 했다. 약간 가무잡잡한 얼굴 피부가 윤기를 발하는가 하면 다소 빈약하게 보이던 젖가슴이 윤곽을 분명히 나타내 육감적으로 보였다.

“이 보신각종이 보물 2호라면 미영은 보물 1호쯤 돼야 어울리겠는걸⋯”
김인세가 갑자기 허리를 일으켜 번개 같이 장미영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 여기서⋯”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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