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picture is worth a thousand words.(천 마디 말보다 그림 한 장이 낫다.)”

미국 속담이다. 속담도 진화한다. 아니 시대 상황과 변화된 사회에 맞게 새로운 형태로 변형된다. 지금은 콘텐츠가 주목받는 시대다. 콘텐츠의 핵심은 이야깃거리(스토리). 이 때문인지 미국 속담이 천 개의 그림보다 한 개의 스토리가 낫다로 바뀌어 쓰이기도 한다. 이야기의 힘을 강조한 말이다.

느림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편집문학관.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느림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편집문학관.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천개의 그림보다 한개의 스토리가 낫다인문학적 자원 풍부
국내유일 편지문학관’, 과거로의 여행 둘리뮤지엄에 평화문화진지까지

도봉구는 스토리의 강자. 특히 추억 속에 녹아든 스토리로 공감을 창출하는 데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소스는 편지’, ‘만화’, ‘녹슨 전차. 이런 소재는 도봉의 역사, 인물, 지역 등 인문학적 자원에서 발굴한 것이다. 편지는 도봉 편지문학관이란 문화콘텐츠, 만화는 둘리뮤지엄이라는 문화상품, 녹슨 전차는 평화문화진지라는 문화공간이 됐다.

편지 단일주제 도봉 편지문화관 국내유일

도봉구민회관에 있는 도봉 편지문학관은 지난 322일에 개관한 도봉구의 새 명소다. 국내에서 편지라는 단일 주제로 구성된 문학관은 도봉 편지문학관이 유일하다. 편지문학관에 들어섰다. 도봉구와 인연이 있는 역사적 인물(전형필, 함석헌, 김근태, 전태일, 권정생, 이오덕)이 남긴 글과 해외의 유명 예술인과 위인(에이브러햄 링컨,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카프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남긴 편지와 관련된 이야기가 10가지 주제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시대별 편지의 역사와 그 변천사도 정리되어 있다. 전자편지나 음성 편지를 남길 수 있는 체험 시설도 갖추고 있다. 수화기를 들면 누군가가 남긴 육성 편지를 들을 수도 있다.

필자는 위인의 편지 내용을 꼼꼼히 읽어봤다. 편지는 공감을 낳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 편지에는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벽면에 적인 넬슨 만델라(“당신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나는 몸속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낍니다”)와 생텍쥐페리(“사랑하는 엄마, 엄마의 편지가 저한테 너무 큰 기쁨을 안겨다 줬습니다”)의 글은 관람객에게 언제 진심을 담은 손 편지를 썼느냐고 묻는 듯하다.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이에게 쓴 전자편지를 전시한 마음저장소.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이에게 쓴 전자편지를 전시한 마음저장소.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필자도 기억이 가물거린다. 뜻과 마음을 전하는데 편지만큼 확실한 게 없음을 안다. 하지만 불편하다거나 효율적이 아니라고 경시되어왔다. 편지문학관은 아날로그적 감성과 느림이 주는 가치를 느끼게 해준 공간이었다. 속도가 경쟁력이 되는 세상에서 속도와 무관한 느림의 지혜를 생각해본 여정이었다.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둘리뮤지엄으로 이어졌다. 둘리뮤지엄은 체험형 캐릭터 박물관이다. 토종 만화 캐릭터를 주제로 한 시설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둘리뮤지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캐릭터 <아기공룡 둘리>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오감을 통해 느껴보고 <아기공룡 둘리>의 가치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 캐릭터 박물관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 체험형 박물관 둘리뮤지엄’ 

<아기공룡 둘리>는 김수정 작가의 작품이다. 1983년부터 1993년까지 10년간 청소년 월간 만화책 <<보물섬>>에 연재되어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제작됐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어른들은 아기공룡 둘리라는 얘기만 나와도 동심으로 돌아간다. 필자는 애니메이션 OST ‘라면과 구공탄 송’(보글보글 보글보글 맛 좋은 라면/ 라면이 있어서 세상 살맛 나/ 하루에 열 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을 기억할 정도다. 추억은 공감을 소환하는 모티브다. 공감이 확장되면 문화가 된다. 감정 이입된 문화는 세대 넘어 전수된다. 세대를 초월하는 인기가 이상할 게 없다. 둘리 그 자체가 동심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에게는 만화 속 주인공들과 게임을 하듯 즐길 수 있는 재미 그리고 새로운 상상력을 선물한다.

국내 최대의 캐릭터 박물관인 둘리뮤지엄.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국내 최대의 캐릭터 박물관인 둘리뮤지엄.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둘리뮤지엄은 박물관 동과 도서관 동으로 구성돼 있다. 박물관동 4개의 전시실이 있다. ‘매직어드벤처전시실에는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1996)’ 이야기에 인터렉션 기술과 VR 콘텐츠를 접목한 실감형 체험 전시물이 가득하다. ‘코믹 테마타운전시실은 고길동 표류기등의 에피소드를 기반으로 반응형 체험 전시물이 연출되어 있다. ‘김파마의 작업실은 일명 둘리 역사관이다. ‘둘리 아빠로 불리는 김수정 작가의 쌍문동 작업실, 둘리 연대기, 둘리 만화, 둘리 역대 캐릭터 상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드림 스테이지는 시계추 그네, 대왕문어 미끄럼틀 등을 타며 신체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유아 놀이방이다.

둘리뮤지엄이 도봉구 쌍문동에 자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기공룡이 지구에서 발견된 곳이 바로 우이천이다. 둘리를 발견한 고길동의 딸 영희는 집으로 데리고 온다. 고길동 집이 둘리의 고향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둘리는 우이천에 떠내려온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작가의 선택사항이다. 작가 김수정은 자신이 살던 우이천을 둘리의 고향을 정했다. 이 때문에 만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품(대사, 가게 이름, 버스 등)이 쌍문동과 인연을 맺고 있다. 만화 속 고희동의 집도 김 작가가 살았던 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연고성을 활용해 도봉구가 둘리를 콘텐츠 상품으로 만든 것이다.도봉구의 특이 문화시설로 평화문화진지가 있다. 상처받은 기억을 평화의 열망으로 바꾸는 문화예술공간이다. 평화문화진지는 옛날 군사시설이 있던 곳이다. 북한의 재남침에 대비해 대전차 방호시설 기지였다. 또 탱크와 장갑차도 숨겨뒀다. 이 군사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위장했다. 1층은 군사시설로, 2~4층은 아파트로 이용했다. 실제로 군인이 이 아파트에 거주했다. 이 아파트는 도봉구에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였다.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들.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주요 캐릭터들.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대전차 방호시설을 철저하게 됐다. 그 후로 10년 넘게 흉물로 방치됐다. 10년 만인 2017년 예술가가 입주한 문화창작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태생적으로 대적이 목적인 군사시설의 유휴공간이 문화·예술과 만난 것이다. 전쟁의 아픔이 있어서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예술을 통해 평화를 갈구하는 평화예술이 역사와 함께 현실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로 재탄생됐다.

문화예술진지 상징물 베를린 장벽감상
문화예술진지의 상징물은 베를린 장벽이다. 정문 한쪽에 독일 베를린에서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 3점이다. 베를린 장벽은 국가와 국가 또는 사람과 사람 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 낮아지고 갈라진 이들이 서로를 마주하길 바라는 소망을 담고 있다.

평화문화진지 위치한 독일정부로부터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평화문화진지 위치한 독일정부로부터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 (사진=위성지 여행작가)

장벽을 지나 평화문화진지 안쪽으로 들어가면 평화울림터가 나온다. 평화울림터는 평화광장 겸 야외음악당이다. 이곳은 음향 장비가 없어도 성악, 오페라, 클래식 등공연이 가능하도록 조성된 야외 음악당이다. 소리가 원형 벽에 부딪히면 음향이 증폭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평화울림터로 내려가는 길에는 평화의 물길이라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포신(대포의 몸통 전체)을 다리처럼 연결하여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반으로 절개된 포신은 무기와 전쟁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담았으며 흐르는 물길은 전쟁으로 희생된 수많은 사람의 넋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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