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건국 74주년 되는 해이다. 많은 선각자가 있었지만,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을 빼고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논할 수 없다. 나당연합으로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은 김춘추(태종 무열왕)처럼, 한미동맹으로 자유통일의 기반을 만든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려 대한민국 번영의 기틀을 다진 ‘건국 대통령’이다.

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가난한 선비인 이경선(李敬善)과 김해김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1898년 독립협회 간부로 대한제국 전복 혐의를 받고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904년 민영환의 감형 주선으로 5년 7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이승만이 약관 30살(1904) 때 한성감옥에서 쓴 <독립정신> 중 “통상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근본이다. 신학문을 배워 경제적 이익을 외국인들에게 뺏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략) 자유를 자기 목숨처럼 여기며 남에게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데서 청년 구국운동가의 국정철학을 엿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3월 김용옥 교수는 KBS 1TV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괴뢰”라 지칭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 대통령을) 당연히 파내야 한다”고 망언을 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좌파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 ‘친일파’로 폄훼하고 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과(過)가 있지만, 공(功)이 훨씬 크다. 이제는 그 분을 음지에서 양지로 모셔야 할 때다. 집권 12년 동안의 주요업적을 살펴보자.

‘정치 분야’에서는 해방 후 사회주의의 발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나라를 세웠다. ‘군사 분야’에서는 북한 침략군을 격퇴하고 국군의 규모를 ‘63∼70만 대군’으로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농지개혁을 단행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태동시켰다. ‘교육 분야’에서는 78%에 달하던 문맹률을 퇴치하기 위해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했다.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양반제도 타파, 남녀평등 보장, 한글전용 정책을 시행했다.

무엇보다도 이승만의 업적은 ‘외교 분야’에서 그 빛을 발했다. 이승만은 1941년 6월 <일본내막기(Japan Inside Out)>라는 책을 출간, “머잖아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그 몇 달 뒤 12월 7일, 일본은 하와이 해군기지(진주만)를 공습하였고, 이승만은 미국에서 명망을 쌓을 수 있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유엔과 미국 등 30여 개 국가로부터 승인을 받아냈다. 이후 6·25전쟁의 휴전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공노명 전 외교부장관은 이렇게 증언했다. “아이젠하워가 53년 휴전협상을 이승만에게 편지로 설득하자 그는 ‘휴전을 찬성하지는 않으나 묵인하겠다’며 세 가지 조건(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한국군의 현대화, 미 해·공군의 한국 잔류)을 내걸어 관철시켰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세 번의 혁명과 이승만>의 저자 오정환은 “이승만은 ▲전제왕정에 대항한 근대화 혁명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민족주의 혁명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주의 혁명 등 ‘삼중혁명’을 일으켜 이 땅에 온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운 혁명가”라고 말한다.

이처럼 이승만은 국제정세에 밝았으며, 애국·애족심을 바탕으로 자주적인 노선을 견지한 건국의 원훈(元勳)이었다. 건국 대통령의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는 대한민국이다. 자기 조국의 역사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애국심이 생겨날 수 없다. 이제라도 건국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團生散死단생산사)”는 이승만의 건국정신이 필요한 때에, 그의 덕업(德業)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天涯漂迫放浪人(천애표박방랑인)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방랑인의 삶을 영위했고

革命三重萬苦辛(혁명삼중만고신) 삼중(왕정/민족/자유) 혁명을 위해 천신만고 했네

有主有神宗敎切(유주유신종교절) 절대자와 신이 있는 종교가 절실했고

無民無衆反省眞(무민무중반성진) 국민도 대중도 없는 민주주의 반성은 진실했네

北邦共對持安保(북방공대지안보) 북방(러/중/북) 공산침략을 물리쳐 안보를 지켰고

國聯同盟脫國貧(국연동맹탈국빈) UN지원과 동맹을 공고히 해 국가 가난을 탈피했네

九十風霜終魄散(구십풍상종백산) 구십 평생이 (해외에서) 넋이 흩어져 타개했고

元勳墓域四時春(원훈묘역사시춘) 국부(원훈)의 묘지엔 어느 때나 봄처럼 가득차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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