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리’에 휩쓸린 서울시 수방 정책…예고된 인재(人災)였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폭우로 침수 피해가 발생한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있다. [뉴시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폭우로 침수 피해가 발생한 현장을 직접 답사하고 있다. [뉴시스]

- 박원순 서울시, 吳 방재 대책 백지화...예산도 대폭 삭감       
- 吳, 11년 전 ‘대심도 빗물터널’ 사업 1.5조 들여 재추진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서울‧수도권 등 대한민국 심장부를 강타했다. 집중호우가 쏟아진 지난 8~9일 발생한 수도권 피해만 230세대, 381명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공식 집계한 인명피해도 지난 10일 기준 사망 8명, 실종 6명, 부상 9명으로 추가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번 집중호우로 서울은 ‘물바다’가 됐다. 특히 강남 지역의 침수 피해가 극심했다. 야권 등 일각에선 ‘오세이돈’(오세훈+포세이돈)을 언급하며 서울시 수해의 책임을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돌리고 있다. 반면 과거 오 시장이 지난 2011년에 발표한 ‘대심도 빗물터널’ 등 수방 대책을 백지화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이번 수해의 근원이라는 반박도 엄존한다. 결국 여야 정치 논리에 휩쓸려 정교한 서울시 수방 대책이 정착되지 못한 것이 이번 참사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이번 폭우 피해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에 가깝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지난 8~9일 기록적 폭우로 대규모 침수 피해가 발생하자 11년 전 공식화된 ‘오세훈표 수방 대책’이 재차 화두에 올랐다. 국민의힘 소속인 오 시장이 과거 제시한 수재 예방 플랜이 야권 정치인인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기에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 재조명되면서다. 

뜻하지 않게 이번 폭우가 전‧현직 서울시장을 소환하며 정치 시험대에 올려놓은 모양새가 됐다. 여야 정치권은 미흡한 침수예방 대책과 사후 대처에 대한 책임론을 놓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내 6개 상습 침수지역에 대해 ‘대심도 대형 빗물 배수터널’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서울과 수도권을 휩쓴 집중호우로 막대한 침수 피해가 재발하자 내놓은 긴급 처방이다. 

오 시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향후 10년 동안 1조5000억 원을 투입해 대규모 수방 시설을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도 ‘대심도 터널’ 토목사업을 적극 추진하라고 오 시장을 독려했다. 이에 따라 2011년 중단됐던 오 시장의 랜드마크 토목사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뉴시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뉴시스]

‘대심도 터널’ 방재 대책, 정치 논리에 방향타 상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약했던 ‘대심도 빗물저류배수터널’은 집중호우 시 빗물을 임시 저장해 저지대의 침수를 예방할 수 있는 시설이다. 주로 주택 밀집도가 높고 침수 피해가 집중될 수 있는 저지대에 설치된다.

대심도 터널은 지난 2011년 7월 정치‧사회적으로 이슈화됐다. 당시 오 시장은 “시간당 100㎜ 집중호우에도 견딜 수 있도록 도시 수해 안전망을 개선하겠다”며 2010년 광화문‧강남 물난리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지하 30~40m에 지름 5~7.5m 크기의 방재용 대심도 터널을 서울 양천구 신월동, 강남역, 광화문 등 상습 침수지역에 설치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당시 서울시 측은 대심도 터널이 설치되면 시간당 100㎜에 해당하는 폭우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내 오세훈표 방재 플랜은 좌초 위기에 놓였다. 대심도 터널 설치를 공약했던 오 시장이 불과 몇 달 만에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으로 자진 사퇴하면서 동력을 상실한 것. 당해 11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하면서 전임 시장의 침수 방지 대책은 변곡점을 맞았다. 

박 전 시장도 처음에는 오 시장의 공약에 관심을 보였다. 박 전 시장은 2012년 일본을 방문해 유수지·대심도 배수터널 등을 둘러보며 국내 도입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당시 지역별 맞춤형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학계‧시민단체 토론도 연이어 개최한 바 있다.

이후 박 전 시장은 당시 야권 등에서 ‘전임 서울시장이 벌인 대형 토목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원안 전면 재검토’를 결정했다. 결국 서울시는 당초 계획된 7개 지역이 아닌 양천구 신월동에만 대심도 터널을 설치하는 쪽으로 기존 시책을 사실상 백지화시켰다. 관련 예산도 1892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다.

이에 박 전 시장은 2012년 5월 터널 신축에 소요되는 천문학적 예산과 환경단체들의 반대를 이유로 들며 “광화문은 인명피해 없는 반복적 도로침수가 문제인데, 대심도 설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친환경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다”며 “신월동은 평탄한 분지형 구조상 대심도 이외에는 대안 활용이 불가하다는 결론이 수차례 논의를 통해 대부분 합의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박원순 서울시는 2015년 빗물 배출 방식을 개선하겠다며 1조4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를 추진했으나 결국 해당 사업은 2024년으로 연장되며 현재까지 공전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이 추진한 ‘반포천 유역분리터널’의 경우 지난 6월 완공됐으나, 시간당 강우량 최대 95mm까지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돼 이번 집중호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결국 지난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이후 박원순 시정기를 거친 지난 10년 동안 3조6892억 원가량의 거액이 투입됐음에도 이번 폭우에서 방재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또 전문가들은 대심도 터널이 설치된 양천구의 경우 32만 톤(t)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배수 터널로 이번 폭우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폭우 피해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열린 폭우 피해 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尹정부 컨트롤타워 부실 논란도

한편 전‧현직 서울시장의 수해 책임론과 별개로, 지난 8~9일 폭우에 윤석열 정부가 보인 초기 대응도 재해 책임론 도마 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앞서 기록적인 폭우가 예상됐던 상황임에도 대통령실과 현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특히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상황실이 아닌 자택에서 핸드폰으로 대응 지시를 전달한 데 대해 ‘폰트롤타워’라며 비꼬기도 했다.  

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윤석열 정부, 컨트롤타워는 없고 ‘폰트롤타워’만 있다”며 “국가적 재난재해 상황에서 총책임자 대통령은 폭우 대책 지시를 자택 통화로 대신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통령실 측은 “실시간으로 대통령께서 어떤 상황에서든 충분한 정보를 갖고, 보고를 받고, 그 상황 인식 속에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즉각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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