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권위주의’로 기존 문법 탈피...인사(人事) 개혁 등 극복 과제는 진행형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靑이전, 도어스테핑 등 ‘권위적 대통령’ 탈피 시도 혁신적     
- 정치력 부재, 이준석·김건희 리스크, 與 내홍은 극복 과제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신(新)정부의 닻을 올린 대통령에게 취임 100일은 그야말로 ‘허니문’이다. 정권교체로 국정 최고직에 오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흔히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에겐 ‘뉴 리더십(new leadership)’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기대와 축하가 모아지게 마련이다. 신임 대통령의 실수에도 “취임 초니까 그럴 수 있지”라며 대중들이 관대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일종의 관습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예외다. 취임 100일을 맞은 윤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20~30%대 저점에서 요동치는 모양새다. 사상 초유의 ‘허니문 패싱’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 100일 국정수행 지지율은 김영삼 전 대통령 83%, 문재인 전 대통령 78%, 김대중 전 대통령 62%, 박근혜 전 대통령 53%, 노무현 전 대통령 40%, 이명박(MB) 전 대통령 21% 순이다. MB의 경우 취임 초 ‘수입 소고기 광우병 파동’이라는 악재가 있었다지만, 윤 대통령은 이른바 ‘취임덕(취임하자마자 레임덕)’의 이유를 외부에서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본지는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 궤적을 집중 분석해 봤다.

윤 대통령이 지난 17일부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 슬로건을 내걸고 야심차게 출범했지만,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는 등 국정 초기부터 암초와 맞닥뜨렸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취임 초 지지율이 대부분 40%를 상회했다는 점에서 현직 대통령의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윤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과 맞선 강골 검사 출신으로, 검찰총장이었을 당시(2020년) ‘추미애 법무부’와의 갈등 끝에 자진 사퇴하며 보수야당 대권주자로 노선을 틀었다. 그는 결국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던 강골 검사 이미지와 적폐 청산 기치를 앞세워 정권교체 숙원을 이뤄냈다. 

하지만 불과 취임 3달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급속 추락하며 좀처럼 국정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초심을 잃었다며 ‘취임덕’을 맞았다는 혹평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친정인 국민의힘에서도 용산 대통령실의 국정 방향타에 의문을 표하는 일부 시각도 포착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혹독한 시험대를 거치는 모양새다. 

문제는 앞으로다. ‘아마추어 정부’라는 비판을 자양분 삼아 국정 노선을 재정비하고 민생을 다독인다면 지지율 회복은 시간문제다. 다만 윤 대통령이 지난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의도에 따른 인적 쇄신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듯이, 뚜렷한 국정개선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현 정권은 침몰선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취임 100일 尹, ‘탈권위주의’와 ‘뚝심정치’ 강점

윤 대통령이 비록 취임 초부터 지지율 부침에 고전하고 있지만, 국정 추진력과 결단력은 강점으로 꼽힌다. 지난 8~10일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여론조사 기관이 실시한 전국지표조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윤 대통령을 긍정 평가한 조사 참여자들 중 24%가 ‘결단력’을 꼽았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도어스테핑(약식 회견) 등 주요 대선 공약을 이행했다는 점을 높게 산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실 이전은 윤 대통령의 추진력이 돋보인 대표적 사례다. 개헌(1987년)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 ‘탈(脫)권위주의’ 기치로 청와대를 이전하겠다고 천명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후보였을 당시 ‘퇴근길 시민들과의 스킨십’을 공약했지만 청와대라는 심처를 벗어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의 ‘용산 이전 프로젝트’는 당초 안보 공백과 시민 불편 등을 이유로 강력한 저항을 맞았지만 결국 취임일을 앞두고 용산 국방부로 이전을 완료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윤 대통령의 구중궁궐 탈피는 국민과 일상을 공유하고 소통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추진된 만큼, 혁신적이라는 평가다.      

윤 대통령은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또 다른 파격을 선보였다. 박근혜 정부의 ‘소통 부족’을 지적했던 문 전 대통령도 임기 내 기자회견 빈도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기존 청와대의 권위주의와 폐쇄성을 과감히 버리고 소탈한 대통령으로 접근을 시도한 점을 호평하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다만 반대급부도 엄존한다. 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으로 대통령실과 메시지 혼선이 빚어지거나 구설수가 양산되면서 국정지지율을 깎아먹은 측면도 적잖다. 이에 도어스테핑 철회를 요구하는 부정 여론과 맞닥뜨리기도 했으나 윤 대통령은 ‘대국민 문안 인사’를 포기하지 않는 뚝심 정치를 보여줬다. 윤 대통령이 보다 세련된 대외 메시지를 내는 등 문제점이 보완된다면 현 정권의 상징적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원로 정치인은 “용산 시대 개막은 청와대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맥락에서 긍정적으로 볼 만한 하다”라고 호평하면서도 “다만 도어스테핑은 윤 대통령이 기술적으로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다. 지나친 소탈함이 국정 역작용을 불러올 수 있으니 철저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人事 실패와 말실수로 점철된 ‘아마추어 정치’

검찰 출신 초보 정치인의 대통령 당선은 정치적 새로움을 갈망하는 민심에서 비롯됐다. 타성 젖은 중앙정치의 무능함과 식상함에 대한 반발 심리가 윤석열 정부를 출범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윤 대통령은 검사 외길을 걸어온 비(非)정치인으로, 대선 전부터 꾸준히 약점으로 지목됐던 ‘정치력 부재’가 결국 국정 초기 난맥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검찰총장을 지내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조직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지만, 현실 정치는 경직된 원칙주의보다 유연성과 기민한 정무 감각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 여의도 정가에서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도는 이유다.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과반수가 취임 100일을 맞은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 50점 미만인 ‘낙제점’을 줬다. 외부 요인이 아닌 정치력을 질책했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에게 더욱 뼈아픈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미숙한 정무 감각은 국정 허니문 동안 인사 문제와 말실수 등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대표적으로 ‘검찰 편중 인사’가 문제시되는 지점이다. 윤 대통령은 인사기획관·인사비서관 등 대통령실 요직들을 대부분 검찰 출신으로 채워 넣었다. 금융감독원과 국정원 고위직도 검찰 출신들을 채용했다. 이 밖에 윤석열 정부 고위 공직자들도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거나 TK(대구·경북) 출신 일변도라는 점에서 탕평 인사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치권에서 ‘인사 편중’ 논란이 불거지자, 윤 대통령은 “과거에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들이 아주 뭐 도배를 하지 않았느냐”고 전임 정권을 겨냥하는 등 공격적 대응으로 정쟁의 불씨를 키웠다. 여기에 대통령실 ‘비선 채용’ 의혹까지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면서 윤석열 정부의 ‘공정과 상식’ 가치가 훼손됐다는 게 중평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에서 자격 논란으로 파장이 일었던 1기 내각 인선에 대해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들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고 전 정권과 거듭 대립각을 세웠다. 국민·정치 통합을 도모해야 할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에 용산 대통령실 일각에선 “VIP의 메시지 사전 조율이 시급하다”는 말이 나왔다. 심지어 대통령의 메시지 관리를 위한 ‘용산 레드팀’이 가동될 것이란 루머가 돌기도 했다.  

이준석·김건희 리스크, 윤핵관도 ‘국정 뇌관’

‘용산발(發) 지지율 반등 시나리오’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지난 13일 기자회견으로 사실상 좌초됐다. 대통령실은 당초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과 여당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국정 동력 마련에 드라이브를 건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당원권 정지’ 중징계로 사실상 야인이 된 이 전 대표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윤 대통령과 집권당을 동시 저격하면서 용산 대통령실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 전 대표는 기자회견 당시 “돌이켜보면 양의 머리를 흔들면서 개고기를 가장 열심히 팔았고 가장 잘 팔았던 사람은 바로 저”라며 “대통령 선거 과정 내내 나에 대해 ‘이 XX, 저 XX’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어야 했다”라고 하는 등 수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대통령실과 여당을 직격했다.

이 전 대표가 국민의힘 비대위 전환에 제동을 걸기 위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집권 당정과의 투쟁 총력전에 나선 만큼, 향후 윤 대통령에게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수구 정당의 청년정치 토사구팽’이라고 반발하며 당정에 등 돌린 20·30 지지층 표심을 수복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선 ‘제2 울산 회동’ 가능성이 거론되나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표의 관계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게 중평이다.  

영부인인 김건희 여사도 윤 대통령의 국정 리스크로 손꼽힌다.

김 여사는 지난 대선 때부터 줄곧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국민대 허위 이력, 논문 표절 등 각종 의혹에 노출되며 여권의 공세 표적이 돼 왔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김 여사는 과거 자신이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노출된 상황이다. 코바나컨텐츠 직원의 대통령실 채용, 봉하마을 지인 동행, 코바나컨텐츠 후원사의 대통령 관저공사 참여 논란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대통령 부부가 나토(NATO) 순방을 떠났을 당시 일반인을 동행시키며 비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저조한 지지율에 고심이 큰 윤 대통령으로선 이른바 ‘영부인 리스크’까지 현실화할 경우 골리앗 야당의 거센 압박에 여소야대 돌파가 묘연해진다. 이에 여권에선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제2부속실 부활을 고려하는 등 김 여사에 대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윤석열의 사람들도 국정 뇌관이 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최측근인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을 통해 집권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윤 대통령의 친위대가 오히려 친윤·비윤 갈등을 부추긴 매개가 됐다는 점에서 국정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전 대표와 윤핵관의 국부 갈등은 결국 여당 내부 분열로 비화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전 대표를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로 규정한 윤 대통령의 텔레그램 문자가 노출되면서 기름을 끼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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