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대형참사나 자연재해가 되풀이될 때마다 유력 정치인들은 늘 뭇매를 맞는다. 민심과 동떨어진 언행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등 SNS의 발달로 유력 정치인들의 실수는 급속도로 확산된다. 현직 대통령은 물론 역대 대통령들조차 예외가 없었다. 대통령뿐만이 아니다. 이어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는 물론 주요 광역단체장이나 여야 국회의원 모두 예외가 없다. 더구나 재난 대응은 잘해도 본전’, 못하면 최악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지율 하락은 물론 비난 여론이 물밀 듯이 밀려든다. 분노한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서는 직을 걸어야 하는 위기상황까지 내몰린다. 이른바 재난의 정치학이다. 지난 8월 수도권 집중호우 당시 자택 전화지시로 곤경에 빠졌던 윤석열 대통령이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북상에는 용산 대통령실에서 밤샘 철야대기를 하면서 비상상황을 진두지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재난상황에서 울고웃은 여의도 정치인들의 백태를 짚어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현장을 찾아 상황 점검을 하고 있다. 2022.09.07.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현장을 찾아 상황 점검을 하고 있다. 2022.09.07. 뉴시스

자연재해·대형참사 발생시 부절적한 처신·언행 국민적 공분
대통령, 자택지시 논란에 태풍에는 대통령실 철야대기
- 박근혜, 세월호참사 후폭풍김영삼, 대형참사 징크스 악연

최근에는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상황 탓에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봄철마다 되풀이되는 동해안 산불에 이어 여름철 게릴라성 집중호우, 역대급 피해를 안기는 태풍이 대표적이다. 유력 정치인들은 때때로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난처한 상황에 빠진다. 특히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자연재해 상황에서 골프나 과도한 음주는 거센 비판의 표적이 된다.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나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재난 상황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반복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세월호 7시간논란이 대표적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다소 안이한 대응으로 취임 이후 최대 정치적 곤경에 처하기도 했다. 세월호참사 이후 대한민국 사회의 재난대응 인식은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됐지만 주요 정치인들의 인식 수준은 여전히 기대 이하다.

지지율 초비상, 힌남노북상 철야 대기

윤 대통령은 이준석 전 대표의 반발에 따른 여권 내홍과 지지율 폭락 사태로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또하나의 악재를 만난다. 바로 재난대응이다. 특히 8월 수도권 폭우피해 당시 서울 강남 침수사태와 반지하주택 일가족 사망 사고 이후 거센 후폭풍에 시달렸다. 야권은 윤 대통령의 재난대응이 빵점이라고 혹평했다. 핵심은 기록적 폭우에 대통령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815일 광복절 경축사와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국반전을 노렸던 윤 대통령의 구상이 물거품이 돼버렸다. 세월호참사 이후 대형재난 사태의 컨트롤타워가 대통령실(옛 청와대)라는 국민적 인식이 자리잡은 가운데 대통령실의 다소 안이한 대응이 화를 키운 셈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대선후보 시절 울진 산불피해 현장을 찾아 청와대에 있더라도 산불 나면 헬기 타고 와야 한다며 대형재난에 대한 신속하고 즉각적인 현장대응을 강조한 바 있다.

가장 논란은 지난 8월 수도권 폭우 당시 윤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현장 방문 없이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재난대응에 나선 것이었다. 민주당은 폰트롤타워라고 비꼬며 윤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을 맹비난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멀쩡한 위기관리센터를 두고 왜 아파트에서 상황관리를 하느냐며 공세에 나섰다.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비가 온다고 그래서 대통령이 퇴근을 안 하시냐고 밝혀 논란이 증폭됐다. 한덕수 국무총리 또한 윤 대통령의 자택 지휘와 관련, “지하벙커 수준이다. 지휘에 문제가 없다고 거들었지만 여론을 싸늘했다. 악재는 지속됐다. 윤 대통령은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의 침수 사망사고 현장을 찾은 뒤 이를 카드뉴스로 제작해 홍보한 게 논란을 빚었다.

엄청한 수업료를 치른 윤 대통령은 확 달라졌다. 지난 6일 역대급으로 불린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북상에 따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철야 비상대기했다. 대통령실도 모든 비서관실 인원도 24시간 비상근무에 나서며 총력지원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윤 대통령은 아울러 신속한 사고수습에도 나섰다. 7일 힌남노의 피해가 가장 컸던 경북 포항을 방문해 수재민을 위로하고 신속한 복구 지원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 이후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대통령이 달라졌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역대 대통령들도 재난상황에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특히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대형참사에 미흡한 대처라는 평가가 나올 경우 대통령의 리더십 공백은 물론 국정장악력에도 생채기를 남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국사회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겼던 세월호 참사로 극심한 후폭풍을 경험했다. 세월호 7시간으로 상징되는 미숙한 대응이 여론이 돌아섰고 박 전 대통령은 정권이 뿌리째 뒤흔들리는 메가톤급 악재에 시달렸다.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참사 수습을 위해 전면적인 개각에 나섰지만 안대희·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연이어 낙마하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던 정홍원 총리가 유인되는 어설픈 코미디까지 연출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유독 대형참사와 연관된 징크스가 많았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대형재난이 이어졌다. 아시아나항공기 추락사고,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대형참사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때문에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에 휩쓸리기도 했다. 특히 문민정부 시절 잦은 대형참사에 세간에는 개신교 장로였던 김 전 대통령이 청와내 경내의 불상을 치워버려서였다는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사진 잘나오게김성원 여론뭇매박형준, 태풍대비 해외출장 포기

오세훈(가운데) 서울시장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수해현장을 찾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2022.08.09. 뉴시스
오세훈(가운데) 서울시장이 서울 관악구 신림동 수해현장을 찾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2022.08.09. 뉴시스

대형참사와 재난에 대한 대응 논란은 대통령만이 아니다. 주요 정치인들도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사가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다. 김 의원은 지난 810일 서울 동작구 수해복구 자원봉사 현장에서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말한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엄청난 역풍에 시달렸다.

김 의원은 이후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린다고 밝혔지만 비난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김 의원은 국회 소통관을 찾아 수해 현장 발언 관련 대국민 사과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 정말 죄송하다.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다. 다시 한 번 무릎 꿇고 사죄드린다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아울러 알짜보직으로 일컬어지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직도 내놓았다.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국민의힘은 김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징계절차를 개시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난 5일 태풍 힌남노의 북상에 따른 큰 피해가 우려되자 프랑스 파리 출장계획을 취소해 이목을 끌었다.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박 시장은 파리에 있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사무국을 방문, 유치 계획서를 제출할 예정이었다. 다만 힌남노의 북상에 따라 역대급 피해가 예상되면서 부산시청으로 긴급 복귀했다. 박 시장은 이와 관련,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역대급 위력을 가진 태풍 힘남노가 북상하고 있어 부산시장으로서 부산을 비울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업무복귀 배경을 알렸다. 파리 출장을 강행했을 경우 쏟아질 비판여론을 고려하면 선제적 대비에 성공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태풍 힌남노의 북상에 마음을 졸였지만 상대적으로 서울지역 피해가 적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 8월 수도권 폭우피해 책임론에 따른 트라우마의 여파였다.

오 시장은 재임시절 수해와 악연이 많았다. 특히 저지대인 강남역 일대는 2006, 2010, 2011년 침수피해를 입었다. 앞서 오 시장은 지난해 5월 서초동 반포천 유역 분리터널 공사현장을 방문, “강남·서초 일대에 침수 피해를 본 분들이 안심할 수 있게 된다이 공사가 완성되면 시간당 85의 폭우를 감당할 수 있어 20년에 한 번 오는 빈도의 폭우에도 대비된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인터넷공간에서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을 오 시장과 합쳐서 오세이돈(오세훈+포세이돈)’이라는 비아냥이 유행할 정도였다. 결국 오 시장은 어떤 경우에도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시장으로서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불편을 겪으신 피해 시민들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수해골프·참사현장 셀카·외유성 출장되풀이 여론 싸늘

여야 국회의원들도 부적절한 재난대응으로 정치적 위기에 내몰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골프와 관련된 구설수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이해찬 전 국무총리와 홍문종 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재난현장에서 홍보용 셀카촬영이나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를 빚는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고 있다.

골프광으로 유명했던 이해찬 전 총리는 재임 중 강원도 대형산불 및 남부지역 호우피해 발생중 골프를 치면서 구설수에 올랐다. 이어 철도파업 발생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도 골프라운딩에 나섰다. 당시 야당은 이해찬 총리는 대형산불로 천년고찰 낙산사가 불타고, 장마에 전국적으로 홍수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측근들과 물()()을 가리지 않고 골프를 쳐 왔다고 맹비난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 홍문종 경기도당위원장은 지도부의 골프 자제령에도 수해지역 골프 라운딩으로 물의를 빚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회는 홍문종 위원장을 최고수위 징계인 제명을 결정했고 당시 강재섭 대표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곤욕을 치룬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세월호 사건으로 곤욕을 치룬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재난현장에서 홍보성 기념촬영도 반복되는 논란이다. 20216월 광주시 동구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현장을 찾았던 기초단체의원들이 기념사진 촬영으로 뭇매를 맞았다. 지난 20147월 김태호 당시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소방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대원 영결식장에서 기념촬영으로 물의를 빚었다. 아울러 세월호참사 당시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컵라면을 먹는 장면이 방송 화면에 포착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온종일 식사를 못했다가 주변의 권유로 라면을 먹었지만 황제라면·라면장관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서 장관은 이후 국회에 출석해 보여드리지 말았어야 할 모습을 보여드린 데 대해 대단히 민망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재해 현장에서 부적절한 처신은 한국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독일 서부지역에 1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슈타인마이어 연방 대통령은 피해 주민들을 위로했지만 메르켈의 후임자로 불리던 아르민 라셰트 집권 기독민주당 대표는 웃고 떠드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독일 국민들의 공분은 엄청났다.

이밖에 자연재해 중 정치인들의 외유성 출장도 반복되는 논란이다. 지난 2017년 자유한국당은 수해 속 외유성 출장으로 물의를 빚은 충북도의원 3명에 대해 제명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에 반발은 김학철 충북도의원은 사상 최악의 수해에도 휴가 복귀해서 현장에도 안 나가본 지금 대통령이라 불리는 분도 탄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대규모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하는 대형참사나 재난발생때 곁에서 국민을 지켜야 하는 것은 대통령이나 여야 의원 등 정치인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면서 아픈 상처를 헤집는 부절적한 언행은 지지율은 물론 국정운영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8월 취임 100일을 앞두고 정국대반전을 노렸지만 수도권 폭우피해 당시 부적절한 대응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반대로 태풍 힌남노의 북상 때에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선보인 것은 수도권 폭우피해 당시의 반면교사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