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과에 미숙하다. 사과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사과하더라도 변명이 앞선다. 그렇다 보니, 사과한다고 했는데 화를 돋우는 경우를 자주 본다. 누구든 잘못을 할 수 있다. 사고는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위기상황은 늘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중요하다. 위기관리의 성패는 제대로 사과하는 것에 달려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뉴욕에서 미국 의회를 모욕하고, 바이든 대통령을 조롱하는듯한 발언을 했다.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외교무대에 나설 마음가짐과 준비가 안 된 대통령의 민낯을 드러냈다. 어떻게든 외교적 파문을 줄이며 수습하는 일이 급하다. 역대급 외교사고를 접한 대통령실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

잘못을 알게 된 순간, 바로 사과 메시지를 냈어야 한다. 대통령실은 여기서부터 잘못된 선택을 했다. 사과를 안 하고, 언론에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언론환경을 과신했다. MBC에서 동영상을 올리면서 대통령실의 대응은 꼬이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라도 바로 사과 메시지를 냈으면 됐다. 일파만파로 커지는 동안 손 놓고 있다시피 했다.

대통령실은 사건 이후 15시간이 지난 다음 날에야 입장을 냈다. 대통령실이 내놓은 입장이 기괴했다. 대통령의 말이 왜곡되게 퍼지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봐 달라면서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었고 미국(의회)”을 욕한 게 아니라 우리 국회를 지칭해 XX”라고 욕했다고 정정을 요청했다.

세상에나. 사건 이후 15시간 동안 분주하게 고민했을 대통령실은 또 다른 사고를 쳤다.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데 눈덩이처럼 굴려버리는 실수를 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간결하게 사과문을 냈으면 될 일이다. 이 일로 대통령실 내부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실에는 대통령을 설득해 사과하게 만들 정무판단능력과 용기,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 없다.

그야말로 짧은 사과문이면 됐다. “오늘 뉴욕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고 나오면서 말실수를 했다. 부적절한 장소에서 부주의한 말로 미국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을 거론했다. 미 의회와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중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 이 일로 미국과 한국 간의 우의가 손상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죄송하다.”

바다 건너에서 실수를 연발하고 있는 대통령을 걱정해야 하는 국민에게도 사과했어야 한다. “대통령으로서 부주의한 언행이 보도되어 국민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쳤다. 죄송하다.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긴장이 풀리면서 실수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다.” 이 정도면 됐지 않을까?

미국에 해명이 급한 상황에 몰렸던 것으로 보이고, 대통령실은 최악의 선택을 했다. 거짓과 변명으로 일관된 대통령실의 입장은 사태만 악화시켰다. 미국 정부와 의회가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넘어가거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리가 없다. 진심이 담긴 사과를 했다면 멈춰졌을 눈사태는 이제 수습할 길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디까지 쓸려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무진 보좌관>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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