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영국, 노동쟁의 피해 손배소송 ‘가능’...경총 주장은 ‘명백한 사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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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대상]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손경식, 이하 경총)는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발의한 일명 ‘노란봉투법’에 대해 보도자료를 내고 ‘불법쟁의 행위에 대한 면책을 부여하는 법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도 어려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내비쳤다.

아울러 ①‘프랑스는 1982년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입법이 있었으나, 위헌 결정이 나서 시행되지 못함’ ②‘영국의 경우에도 불법행위 시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상한만 있을 뿐 손해배상청구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음’이라며 유럽 선진국 사례를 들어 노란봉투법의 위헌 소지를 지적했다. 프랑스 헌재 판례와 영국 노동관계법을 통해 경총의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해 봤다.

[검증방법]
■<국제노동 브리프 2014년 4월호> ‘프랑스에서의 파업권의 보장과 그 한계’(조임영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영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Trade Union and Labour Relations Act 1992)
■국회 의안정보시스템(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 국회 계류 현황)
■프랑스 헌법재판소 판례(1982년 10월 22일, 프랑스 하원 ‘근로자대표제도의 발전에 관한 법률안 제8조’ 위헌 결정)

[검증내용]

야권에서 발의한 ‘노란봉투법’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모양새다. 노동계는 국회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조‧3조 개정을 촉구하며 노동쟁의에 대한 기업의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재계와 경영계에선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닌 불법쟁의까지 법적으로 면책해주는 것은 사업장 점거, 초장기 파업 등 불법파업을 부추기는 행위로 사용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반박하고 있다. 

일명 노란봉투법은 지난 2014년 쌍용차 불법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이 법원으로부터 47억 원가량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자, 이들을 돕기 위한 자발적 성금을 노란색 봉투에 담은 데서 유래했다. 앞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를 개정하자는 취지의 ‘노란봉투법’은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그러나 지난달 대우조선해양이 파업 노동조합 측에 47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 도화선이 돼 현재 야당의 핵심 입법 과제로 급부상했다. 이와 관련, 현재 민주당과 정의당은 지난 7월 18일부터 9월 16일까지 약 2달 간 총 7건의 노조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런 가운데 경영계는 정치권에서 입법 급물살을 타고 있는 노란봉투법은 헌법적으로도 사리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며 입법 제동에 나섰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민주당 전해철 의원실을 방문해 이와 같은 우려를 전달했다. 이날 손 회장은 전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 불법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으로 헌법상 기본권인 사용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해 우리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다”라며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오히려 불법행위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인 사용자에게만 피해를 감내하도록 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해 경제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한편으론 이날 협회 보도자료를 내고 세계적으로 노동권이 우위에 있다고 평가되는 프랑스와 영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노란봉투법’의 부당성을 재차 강조했다. 경총은 해당 보도자료를 통해 프랑스의 경우 지난 1982년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취지의 법안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백지화됐다고 했다. 아울러 영국도 불법파업 시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상한만 있을 뿐, 사용자의 손해배상 자체를 금지하지는 않는다는 내용의 글귀도 첨부했다. 

경총의 이러한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본지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임영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작성한 ‘프랑스에서의 파업권의 보장과 그 한계’ 논문을 확인해 봤다. 논문에 따르면 실제로 프랑스 하원은 1982년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근로자대표제도의 발전에 관한 법률안 제8조’를 채택, 발의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집단적 노동분쟁 시 발생한 손해배상에 관해선 사용자가 어떠한 소송도 제기할 수 없고, 다만 형법상 범죄로 인한 손해나 파업권‧단결권 행사와 무관한 행위에 대해선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프랑스에서의 파업권의 보장과 그 한계’(조임영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논문 발췌
‘프랑스에서의 파업권의 보장과 그 한계’(조임영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논문 발췌

이에 당시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프랑스법은 사법상의 자연인·법인의 민사적 귀책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를 그 귀책행위의 중대성에 관계없이 모두 면책하는 제도를 어떤 분야에서도 허용하고 있지 않다”라며 “따라서 이 조항은 형사범죄를 제외하고 모든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금지되는 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명백한 차별을 설정하는 것이다. 파업권과 단결권의 실질적인 행사를 보장하고자 하는 입법자의 의도가 평등원칙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위헌 판결을 내렸다. 노동쟁의 등 민사적 귀책행위에 대한 ‘완전 면책’은 평등원칙에 어긋나는 역차별이라는 것이 핵심 사유다. 

실제로 본지가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1982년 10월 22일 판례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 상기 논문에 기재된 내용과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하위 이미지 참조). 아울러 1982년 이후 사용자(고용주)의 손배소송청구 제한과 관련한 프랑스 헌재 판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만큼, 프랑스에선 노란봉투법과 유사한 취지의 법안이 추가 발의되지 않은 것으로 유추된다.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1982년 10월 ‘근로자대표제도의 발전에 관한 법률안 제8조’에 대한 위헌 결정 [프랑스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1982년 10월 ‘근로자대표제도의 발전에 관한 법률안 제8조’에 대한 위헌 결정 [프랑스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영국의 경우도 관련법을 살펴본 결과, 노조 불법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소송을 금지한다는 법 조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노조 소속 인원 등 파업 규모에 따라 손해배상 상한액을 차등 규정하고 있다. 노동쟁의 행위에서 과실 또는 법률 위반으로 상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손해배상 상한 적용이 되지 않는다. 

영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영국 정부 홈페이지]
영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영국 정부 홈페이지]

관련 법안을 살펴보면 각 노조 규모별로 손해배상소송 상한액은 ▲10만 명 이상- 100만 파운드(한화 약 16억 원, 2022년 7월 인상) ▲2만5천명 이상 10만 명 미만- 50만 파운드(한화 약 8억 원) ▲5천명 이상 2만5천명 미만- 20만 파운드(한화 약 3억 원) ▲5천명 미만- 4만 파운드(한화 약 6300만 원) 등으로 책정돼 있다. 

[검증결과]

본지가 논문 ‘프랑스에서의 파업권의 보장과 그 한계’와 실제 프랑스 헌법재판소 판례를 확인한 바에 따르면, 1982년 프랑스 하원에서 통과된 ‘근로자대표제도의 발전에 관한 법률안 제8조’는 헌법재판소로부터 “평등원칙에 어긋난 차별”이라는 위헌 판결에 입법이 좌초된 바 있다. 해당 입법안은 노동쟁의에 따른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정의당이 공동 발의한 ‘노란봉투법’과 입법 취지가 유사하다.  

아울러 영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을 분석한 결과 노조 불법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파업에 참여한 노동조합원 인원수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 금액 상한이 정해져 있다.  

결국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장한 ‘1982년 프랑스 헌재 위헌 결정’과 ‘영국의 손배청구소송 상한제’는 모두 ‘명백한 사실’인 것으로 판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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