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대통령실과 문화방송(MBC)이 극한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뉴욕순방 당시 빚어진 비속어 사태를 둘러싼 진실게임의 여파다. 양측 모두 도저히 물러설 수 없는 전면전 양상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여야 갈등보다 파열음이 오히려 더 커진 모양새다. 권력의 최상위 기관인 대통령실과 공중파 방송인 유력언론의 정면충돌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대통령실은 MBC의 왜곡조작 보도가 한미동맹과 국익을 훼손한 국기문란이라고 맹비난했다. MBC 또한 대통령실이 진실에 눈감은 채 국면전환을 위해 언론장악과 길들이기에 나섰다고 반박했다. 진보언론과 보수정권의 갈등은 이번만이 아니다. 윤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MBC는 김건희 여사의 7시간 녹취록 보도로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바 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른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권력과 언론의 이상적인 관계는 실종됐다. 권력과 언론의 정면충돌이라는 이례적인 현상에 감춰진 이면을 집중 추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2.09.29.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2022.09.29. 뉴시스

대통령실과 MBC, 대통령 해외순방 비속어 파문후 전면전
MB정부 광우병 사태와 유사한 흐름양측 모두 사생결단
- 김건희·도이치모터스·사적순방 등 MBC vs 대통령실 악연 지속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제2의 광우병 파동에 비유할 정도다. MB정부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사태로 정권 초기 몰락의 위기에 내몰렸다. 시발점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위험성과 광우병 가능성을 지적한 MBC 피디(PD)수첩의 보도였다. 이후 MB 아웃(OUT)을 외치는 전국적인 촛불시위로 정권과 MBC는 회복불가의 관계로 치달았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 것은 물론 MBC의 장기파업 사태까지 벌어졌다. 어찌보면 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 전개양상은 그때와 꼭 닮아있다. 보수정권과 유력언론의 2차 대전인 셈이다. 대통령실은 MBC가 민주당 및 시민사회단체와 제2의 광우병 사태를 획책하면서 대통령 무력화에 나선 거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MBC도 정권이 위기탈출을 위해 언론을 희생양 삼았다며 거세게 저항 중이다.

비속어 파문 진실게임대통령실vsMBC 극한대치

“(미국) 국회에서 이XX가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922일 오전 107MBC 윤 대통령 비속어 파문 첫 자막 보도) vs “사실과 다른 보도로서 동맹을 훼손하는 것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그와 관련한 나머지 얘기들은 먼저 이 부분에 대한 진상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더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윤석열 대통령 26일 용산 대통령실 도어스테핑 발언)

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은 대통령실과 MBC와의 진실게임으로 비화하고 있다.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순방 중이던 윤 대통령은 현지시간 2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참석 이후 회의장을 나서면서 박진 외교부 장관 등에게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논란을 빚었다. 윤 대통령의 발언 영상은 MBC를 첫 보도를 시작으로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가 기사화했다. 사건 초기만 하더라도 비공개 사적담화가 의도치 않게 노출된 해프닝에 가까웠다. 특히 윤 대통령의 발언이 팩트라면 한미동맹의 근간을 뒤흔드는 외교참사라는 점에서 조기사과와 수습이 필수적이었다.

다만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의 반박 브리핑 이후 상황이 급반전했다. 김 수석은 현지시각 22미국 이야기가 나올 리가 없고 바이든이라는 말을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음성을 다시 들어봐달라고 읍소하면서 국회에서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MBC의 첫 자막보도가 문제로 확증편향을 심었다는 것이다. 김 수석이 특히 순방외교는 국익을 위해 상대국과 총칼 없는 전쟁을 치르는 곳이라면서 한 발 더 내딛기도 전에 짜깁기와 왜곡으로 발목을 꺾는다MBC 보도를 정조준했다.

윤 대통령도 강공을 선택했다. 윤 대통령은 26일 비속어 파문과 관련, 대국민 사과나 유감표명보다는 선()진상규명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역시 “MBC가 의도를 갖고 완전히 자막을 조작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역시 특정 언론사가 비공식 발언을 교묘하게 조작해 한미동맹을 훼손한 외교참사에 격노했다는 후문까지 흘러나왔다.

MBC부당한 언론탄압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MBC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조작했는지 명확한 근거나 설명 없이 'MBC가 자막을 조작했다'는 입장만 반복하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당시 뉴욕의 프레스센터에서 다수의 방송기자들이 각자 송출된 취재 영상을 재생하여 대통령의 발언이 어떻게 들리는지에 대해 각자 판단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특히 ‘MBC가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공식 보도 이전에 논란이 된 윤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먼저 전달했다는 보수진영 일각의 음모론에 대해서도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음모론이라면서 “MBC가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기 훨씬 전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관련 내용과 동영상이 급속히 유포되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7시간 녹취록·나토정상회의 사적순방 등 오랜 악연

서울 마포구 MBC 본사 앞에서 박대출 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과 박성중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 권성동 과방위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발언 보도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2022.09.28. 뉴시스
서울 마포구 MBC 본사 앞에서 박대출 MBC 편파·조작방송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과 박성중 국민의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 권성동 과방위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발언 보도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2022.09.28. 뉴시스

양측 갈등은 확대재상산되고 있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이른바 XX’ 표현 논란과 관련, “대통령도 지금 상당히 혼란을 일으키는 것 같다. 잡음을 없애면 또 그 말이 안 들린다바이든부분과 관련, “윤 대통령이 바이든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가짜뉴스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도 성명에서 비속어 논란의 핵심은 외교 무대에 선 대통령이 싸움판에서나 쓰임 직한 욕설과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해 국민 모두를 낯 뜨겁게 만들었다는 점이라면서 적반하장식의 프레임 바꿔치기의 부끄러움은 과연 누구의 몫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물론 대통령실 일부 참모들은 선() 유감표명 후() 진상규명 촉구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용산 대통령실의 강공 기류에 묻혔다. 이후 대통령실은 MBC에 공문을 보내 왜곡조작 보도에 대한 책임을 공개적으로 물으며 압박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라고 발음을 특정한 근거 대통령실 등에 확인 절차는 거쳤는지 해당 발언을 자막으로 표기하면서 국회라는 단어 앞에 괄호로 미국이라고 표기한 이유 미 국무부와 백악관에 입장을 요청한 이유 등을 공개 질의했다. 아울러 MBC 보도로 한미동맹이 훼손됐고 국익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MBC 역시 언론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일축했다. MBC는 특히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실에서 보도 경위를 해명하라는 식의 공문을 보낸 것은 언론 자유를 위협하는 압박으로 비칠 수 있다며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MBC뿐만 아니라 공중파 방송국, 종편, 일간지와 경제지를 비롯한 종합지 등 국내 대부분의 언론사가 윤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을 보도했는데 유독 MBC만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게다가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전국언론노조 등 6개 현업 언론단체도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노골적 유린이라고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 꼬여갔다. 대통령실 출입 영상기자단 역시 어떠한 왜곡과 짜깁기도 없었다고 반발했다.

대통령실과 MBC의 악연은 이번만이 아니다. 20대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 1월 중순 윤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의 7시간 통화 보도를 둘러싼 갈등이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서울의소리 소속 이명수 기자와 김건희 여사의 7시간 통화내용 중 일부를 보도했다. 당시 김건희 여사 측은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의 일부 인용 결정이 나왔다. MBC는 국민과 유권자의 알 권리를 위해 반드시 보도가 필요한 내용이라고 강조하며 방송을 강행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대통령실과 MBC의 불편한 관계는 지속됐다. MBC는 지난 6월 윤 대통령의 나토정상회의 참석 당시 사적수행·사적채용 논란을 단독 보도했다. 또 극우 유튜버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 보도도 대통령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폭락했고 김건희 여사는 공개활동을 자제하기도 했다. 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보수정권과 MBC의 악연은 깊고도 넓다. MBC의 광우병 보도는 보수우파의 대표적 트라우마다.

지난 20084MB정부 출범 직후 MBC 피디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보도 이후 촛불은 서울 광화문을 뒤덮었다. 이명박정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렸다. 뒤늦게 확인한 보도의 팩트는 일부 거짓과 과장이었다. 가짜뉴스의 여파로 이명박정부는 집권 초반 국정운영 동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역설적인 것은 미국산 쇠고기의 최대 수입국은 한국이 됐다. 이후에는 양측의 관계는 불편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정권의 방송장악 논란 속에서 MBC는 장기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역대급 정권vs언론 전면전2의 광우병파동 국정혼란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 광우병 발병에 따른 서울지역 대학생 입장발표'에서 참가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2.05.14 뉴시스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미 광우병 발병에 따른 서울지역 대학생 입장발표'에서 참가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2.05.14 뉴시스

문제는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이른바 3()로 상징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양측의 갈등이 더 커질 경우 후폭풍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수출실적 둔화는 물론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기침체 여파, 대출금리 급등에 따른 부동산 영끌족의 파산 위기 등 경제위기 극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정권과 언론의 정면충돌이라는 이례적인 상황에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통합과 시너지 효과는 어렵다. 뚜렷한 해법 없이 대통령실과 MBC는 연일 난타전이다. 게다가 국민의힘이 MBC 사장·보도국장 및, 취재기자를 윤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대검에 고발한 만큼 비속어 파문은 단기적 해결이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실의 인식은 간단하다. MBC가 단순한 해프닝을 조작해 외교참사로 규정한 이후 민주당이 정치적 선동에 나서면서 정권을 뒤흔들고 있다. 조작보도로 제2의 광우병 사태를 획책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특히 비속어 파문으로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성과가 파묻힌 점도 불편하다. 보통 대통령의 해외순방, 특히 미국을 다녀올 경우에는 지지율이 상승했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윤 대통령은 한국갤럽의 94주자 여론조사(오차범위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24%에 불과했다. 부정평가는 무려 65%로 집계됐다.정권에 노골적인 비판보도를 일삼아온 MBC의 조작보도만 없었다면 해외순방을 기점으로 지지율 상승과 더불어 정국반전을 모색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다.

MBC 역시 마찬가지다. 정권에 가장 비판적인 언론사를 본보기도 언론탄압에 나섰다는 것이다. 특히 공정보도가 언론의 생명인 만큼 워딩 조작이라는 꼬리표는 치명상이다. MBC가 대통령실의 강경모드에 앞으로 어떠한 언론도 권력기관을 비판하지 말라는 보도지침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은 무엇보다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사태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정권과 언론의 정면충돌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더 이상의 확전은 막아야 한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과 조선일보의 갈등이 국익에 무슨 도움이 됐느냐고 반문했다. 덧붙여 환율 급등과 증시 폭락으로 상징되는 경제위기 상황 속에서 제2의 광우병 사태와 유사한 혼란상은 국정운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양측이 언제까지 공방만을 주고받을 수 없다. 한동안 냉각기를 가진 뒤 물밑대화를 통한 사태해법을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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