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에서 부모가 한눈팔고 있는 동안 제 발로 걸어가서 사라졌다는데 무슨 유괴?”“원장님 말씀이 맞아요. 어린이 유괴의 경우 타깃을 정해 놓고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서 저지르는 경우가 많대요.”“그렇다면 더더욱 유괴가 아니겠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한 유괴범이라 해도 완이네 식구가 언제 여행가고, 여행가다가 그 시간에 그 휴게소에서 쉴지 어떻게 알겠어?”“그렇지요.”한송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유괴 예방을 위해 아이들한테 ‘낯선 사람 따라가지 말라’고 교육을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아이들은 유괴범이란 ‘험상궂게 생긴 남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대요. 그런데 외국에서는 ‘주변의 친한 사람도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가르친다고 해요.”

“완이는 그때 두 돌밖에 안 됐으니 그런 것 가르칠 수도 없는 어린애였잖아. 그나저나 김 선생은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와요.” 김아라가 쑥스럽게 웃자 한송이가 끼어들었다.

“김 샘이 인터넷 검색 잘 한다고 해서 별명이 ‘검색녀’예요. 저는 탐정 노릇 좋아한다고 해서 ‘수색녀’고요, 송 샘은 남자를 탐한다 해서 ‘탐색녀’예요.” 한송이의 말에 하미숙 원장은 큰소리로 웃고는 물었다. “혹시 나한테도 ‘색’자 별명 지어 놓은 것 아냐?”

원장의 질문에 한송이는 움찔했다. 원장이 작은 일에도 생색을 많이 낸다고 하여 ‘생색녀’란 별명을 붙여 놓았기 때문이었다. 
“아, 아니에요. 그냥 우리 샛별 어린이집에 별별 색녀들이 다 있다고 해서 가끔 ‘색별 어린이집’이라고 부르긴 하지만요.”
“재미는 있지만 ‘색’ 자가 들어가니 어째 어감이 영 안 좋네.”
하미숙 원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5. 
“얘가 리나로군요. 너도 분홍 공주로구나.”
꿈동산 어린이집 원장은 김아라의 품에 안겨 있는 리나를 받아들며 반겼다. 레이스가 달린 분홍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예쁜 분홍 머리띠까지 두른 리나는 아기 인형처럼 귀여운 모습이었다.
“이제라도 자리가 나서 천만 다행이에요.”

“그러게 말예요. 이 근처에는 야간 위탁까지 맡는 어린이집이 드물어서 우리 원은 항상 대기자가 많아요.” 원장은 신청서 서식을 내밀었다.  “홈페이지에도 신청해 주셨지만, 여기에 정식으로 적어 주세요.”김아라가 어린이집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원장의 품에서 내려선 리나는 어린이집 안을 돌아다녔다. 

“어머니 직업란도 적어 주세요.” 원장이 신청서의 빈 칸을 가리키자 김아라는 잠시 망설이다가 ‘회사원’이라고 적었다. “아버지 기재란도 비어 있네요.” 김아라는 볼펜을 다시 집어들어 적으려다가 물었다. 

“꼭 적어야 하나요?” “뭐 꼭 적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저희가 참고로 알고 있는 게 아이를 돌보는데 도움이 돼서요.” “아이 아빠가 해외 파견 근무 나가 있어요.”김아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신청서의 빈 란을 채웠다. 그때 젊은 보육교사가 리나를 안고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리나의 담당 교사였다.  

“우리 분홍 공주님께서 무척 활발하네요. 금세 적응하겠어요.”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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