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보육교사는 김아라에게 리나를 인계했다. 
“리나야, 오늘은 그만 가고 내일부터 여기 오자. 이건 여기다 놓고 가야 돼.”
김아라가 리나의 손에 들려 있는 자동차로 변신하는 로봇 장난감을 잡았다. 
“내 꺼, 내 꺼.” 

리나는 로봇 자동차를 품에 끌어안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완이를 잃어버린 지 6개월여. 윤소미는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찾아 헤맸다. 

늦은 나이에 시험관 아기로 얻은 아들 완이는 윤소미의 성공의 정점이었다. 뛰어난 미모에 화려한 학벌, 좋은 직장, 훌륭한 남편만으로도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이가 없는 한 미완성의 행복이었다. 그런 윤소미가 천신만고 끝에 임신에 성공하고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자 주변 모두가 부러워했다. 
완이가 실종되고 반 년이 넘도록 행방을 찾을 수 없자 남편 김형준은 윤소미를 달래기 시작했다. 

“완이는 어쩌면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그러니 이제 당신도...”
남편의 위로는 절망에 빠진 윤소미에게 비수로 바뀌어 날아왔다. 
“완이가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해? 그게 아빠로서 할 말이야?”
“완이가 사라진 지 오래 됐잖아. 누군가 유괴했다면 벌써 돈을 요구하거나 협박을 했겠지. 우리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합리적? 부모로서 아이를 놓고 어떻게 합리적이 될 수 있어?”
“당신 이러다가 큰일나겠어. 당신 건강을 생각해야지. 아기는 또 가지면 되잖아.”
“또 가지면 된다고? 완이가 당신한테 그런 존재밖에 안됐어? 없어지면 새로 사는 장난감 같은 존재야?”

남편 김형준이 위로할수록 윤소미의 반응은 더욱 격해졌다. 
김형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음에는 김형준도 윤소미 못지않게 아들 실종으로 가슴 아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픔보다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을 위해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도 정신을 차려야 아내가 절망에서 벗어나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의 그런 모습조차 윤소미는 못마땅해 했다. 

“당신은 완이가 없어졌는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어?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회사에 나가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 만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밥 먹고 그래?”

밤새 잠 한 숨 못자고 뒤척이다 일어난 윤소미는 식탁에서 시리얼과 우유로 아침을 때우고 있는 김형준의 등에 대고 악다구니를 해댔다. 
“뭐 해?”

한참을 소리 지르던 윤소미가 조용했다. 김형준은 이럴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윤소미가 우발적으로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기라도 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파트 베란다마다 방범용 철창 공사를 해서 몸이 빠져나가지 않게 해놓았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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