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데이터 플랫폼’과 3조6천1백억원의 부조화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에는 하이브 마인드(Hive Mind)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스카이넷 (Skynet)이 등장한다. ‘하이브 마인드는 다수의 개체를 지배하는 하나의 정신을 의미한다. 벌 군집을 모티브로 탄생한 개념이다. <사이버다인 시스템즈>가 군사 방위를 목적으로 개발한 스카이넷이 핵전쟁을 시작으로 터미네이터를 통해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 인류를 위한 기술이 도리어 인류를 멸망으로 몰아가는 재앙이 된다. 기술은 이렇게 대부분, 축복과 재앙이라는 이름의 저울 위에 앉아 있다.

지난 1121,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국회 소속기관과 한국은행, 통계청, 기상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한국재정정보원을 비롯한 정책·정부 기관이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빅데이터 국회 업무협약'을 맺었다. 국회사무처는 이 업무협약과 토론회를 바탕으로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 사업을 단계별로 추진할 계획이다. 어쩌면 이 협약의 이행을 통해 탄생하는 최종 결과물이, 국민 입장에서는 천국으로 가는 문이 될지 모른다. 물론 국회 종사자와 국회의원들에게는 지옥으로 가는 문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 바로 다음 날엔, ·규제·정책 데이터 플랫폼 코딧(CODIT)50억 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 A(Pre-Series A) 투자를 유치했다. 자체 보유한 5,000만 건 이상의 방대한 데이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기업 관련 법안, 주요 이슈 따위의 키워드를 자동으로 추출하며 필요한 정보만 모니터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현재 글로벌 대기업, 빅테크 기업 및 유니콘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 협회 등도 코딧을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러한 기술개발이 의미하는 최종적인 결론은 단순하고 선명하다. 국회와 우리 정치가 현재와 같은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조직으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단정할 순 없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급속도로 다가올 수 있다. 이때가 되면 거대한 구조물과, 300명의 국회의원, 그보다 더욱 비대한 보좌진, 사무처, 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 따위도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조건을 입력하기만 하면 그것이 입법이건, 정보건, 예산의 효율적 배정이건, 정책이건 간에 단 몇 초 만에 최적의 솔루션이 제공되는 형태일 것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국회와 지방의회 가릴 것 없이 거대한 기술변화의 격류 속으로 휩쓸려 떠내려갈 수 있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국가 운영 시스템이 구축되는 셈이다.

변화의 격류가 이렇게 코앞에 다가와 있음에도, 우리 국회가 꾸는 꿈은 무모하고 비관적이다. 2028년 세종시로의 국회 이전 시도가 그것이다. 국회는 무려 총사업비 361백억 원을 들여 기재위·예결위 등 12개 상임위를 세종으로 이전하고, 서울에는 본회의장, 일부 상임위만 존치한다는 것이다. 수도인 서울이 국가 행정·정치의 중추적 기능을 하는 소재지라고 판단한 2004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고려한 결정이다. 20234월 착수해 202811월에 준공한다는 목표다. 이 같은 이전에 토지매입비 6,670억 원, 공사비 26,700억 원, 설계비 1,840억 원 등 36,100억 원을 쓰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 국회가 이런 돈을 들여 세종의사당 지을 때인가? 그런 돈이 있다면 정작 어디에 써야 할까. 그 돈이면 최신예 F-35A 스텔스 전투기 20대 또는 그 이상을 살 수 있다. 북한의 도발 확대와 한반도 주변 정세를 감안하면 공군력 강화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우리 공군이 운용하는 F-35A는 현재 39(40대 들여왔으나 1大破). 2023년부터 2028년까지 약 39,400억 원을 투입해 20대를 더 들여오는 차세대 전투기(F-X) 2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도 59대에 불과하다. 일본은 F-35150대 가까이 도입하고 수직이착륙기인 F-35B까지 도입해 사실상 항모를 운영하겠다는 판국이다.

국회의 이런 무모함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짧게 봐도 무모(無謀)하고, 멀리 보면 혈세 낭비요, 비효율의 극치다. 우리 국회는 과연 다가올 미래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로마시대의 거대한 석조구조물들이 폐허의 돌덩이로 변하는 모습에서 우리 인간이 배워야 할 교훈은 한가지다. 기술은 발전하고, 인간은 그 꿈에 올라타야만 한다.

멀쩡한 여의도 국회를 그대로 두고 다시 새로운 의사당을 짓겠다는 무모함이 용납될 수 있는가. 눈을 들어 멀리 보라. 아주 가까이 다가올지도 모를 남북통일 시대의 수도(首都)는 다시 어디로 옮겨갈까. 가공할 속도의 기술혁신이 가져올 미래에 우리 국회가 진정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성찰하고 반성하지 못하면, 미래에는 철근과 콘크리트 무덤만 덩그러니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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