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은 아랍 세계에서 처음 열리는 대회이면서, 리오넬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이다. 외계인이라 불리고, GOAT(Greatest Of All Time,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추앙받는 리오넬 메시도 월드컵 우승은 못 해봤다. 축구 커리어의 끝을 향하고 있는 메시에게 월드컵 우승컵은 펠레와 마라도나를 넘어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꼭 차지해야 할 수집품이다.

메시가 월드컵 우승을 못한 것은 축구가 팀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메시나 호날두같은 위대한 선수도 팀이 받쳐주지 않으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기 어렵다. 축구는 경기장에 나선 11명의 선수와 벤치에서 교체를 기다리는 선수들까지 하나로 뭉치지 않으면 아무리 위대한 선수가 있는 팀도 승리를 얻기 어렵다.

축구는 감독놀음이란 말이 있다. 현대 축구에서는 선수들을 선발해 훈련시키고, 상대 팀을 분석하고, 전술을 짜는 감독의 역량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현대 축구는 조직력과 주력, 체력이 강조되고, 감독의 전술역량이 승부를 가른다.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끈 가장 큰 공로자가 네덜란드에서 모셔 온 히딩크 감독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의 벤투 감독은 부임한 이후 4년 동안 잦은 부침을 겪었다.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축구팬들은 벤투의 전술이 우리 축구 현실에 안 맞다고 비판하며, 이강인을 왜 기용하지 않느냐면 선수기용까지 시시콜콜 간섭했다. 축구팬들은 이구동성으로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팀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24일 밤, 한국 대표팀이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치열한 맞대결을 벌인 끝에 무승부를 거두자 온라인 축구커뮤니티에는 앞다퉈 사과의 글이 올라왔다. 대표팀이 우루과이를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은 놀라웠다. 우리나라 축구도 유럽의 강팀처럼 후방에서부터 공격을 만들어 가는 고급스러운 빌드업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벤투가 옳았다.

히딩크는 2002년 월드컵에서 무한 체력과 강력한 압박을 무기로 우리 대표팀을 4강으로 이끌며 국민적 자신감을 심어줬다. 당시 유행했던 우리는 강팀이다”, “~한민국이라는 구호는 각성한 자들의 외침이었다. 벤투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비전을 보여주고 있다. 벤투는 우리 대표팀을 현대적인 빌드업 축구로 월드컵 무대에서 경쟁하는 팀으로 만들었다.

카타르 월드컵 1차전에서 우루과이를 상대로 증명하기 전까지 벤투는 수 없이 비난과 욕을 먹었다. 성적도 시원치 않았던 적이 많았고, 선수 기용도 팬들의 기대와는 달랐다. 이강인이나 이승우와 같은 대중이 사랑하는 선수를 외면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에 어울리는 선수를 고집스럽게 대표팀으로 불러들였다.

축구팬들은 우루과이 전 이후에야 벤투의 비전을 납득한 것처럼 보인다. 이 과정에서 4년이란 시간 동안 벤투는 단 한 마디도 변명하지 않았으며, 담담히 모든 비난과 영광의 시간을 견뎠다. 벤투는 대표팀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비전이 있었고, 비전을 관철할 뚝심도 있었다. 경기의 감동이 사라지기 전의 설레발이지만, 벤투는 좋은 리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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