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회장-사업별 전문가 부회장 상호보완 구조...그룹 내 입지 튼튼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주요 그룹 총수의 세대교체가 이어지면서 전문경영인 부회장 체제가 확고히 되고 있다. 과거 창업에 직접 관여했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3~4세들은 사업별 전문가를 모시고 그들과 함께 그룹을 이끌어 나가려는 행보를 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전문경영인에게 '회장' 직함을 주는 등 미래 사업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 창업주 세대 함께 한 부회장과는 다른 역할로 사업 전반에서 활약 
- 후배 위해 길 터주는 부회장도...내부에선 분위기 쇄신용 해석도


4대 그룹 중 처음으로 인사를 단행한 LG 구광모 회장은 신학철, 권봉석, 권영수 부회장의 손을 다시 잡았다. LG화학은 다시 지휘봉을 잡은 신학철 부회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박차를 가한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뉴시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뉴시스]

지난해 LG전자 사장에서 승진한 권봉석 부회장은 LG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을 이끌고 있는 권영수 부회장은 취임 1년여 만에 환골탈태했다. GM 전기차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된 모듈을 전면 쇄신하고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총력을 다했다. 올 상반기 배터리 기술개발에 3784억 원을 투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 미래사업도 함께 고민

다만 2005년부터 LG생활건강을 이끌어온 차석용 부회장은 18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난다. 차 부회장은 취임 이후 매년 실적을 갱신해 '차석용 매직'이라는 수식어까지 달린 인물이다.

이번에는 후배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용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다. 애초 차 부회장의 임기만료는 2025년 3월이었다. 일각에서는 차 부회장의 용퇴 결정은 내부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삼성은 이재용 회장 승진 이후 단행하는 첫 인사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삼성은 오는 7일쯤 사장단 인사를 하고 13일께 임원 인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개 사업부문의 60대 대표이사를 모두 교체하면서 사업 부문을 세트(DX)와 반도체(DS) 두 부문으로 통합해 50대인 한종희 부회장(DX부문장)과 경계현 사장(DS부문장) ‘투톱 체제’를 구축한 상태라 큰 변화를 줄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점쳐진다.

대외 불확실성이 한층 더 커진 상황에서 사령탑 교체는 무리라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현호 부회장도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장 자리를 계속 지킬 것으로 예상한다. 정 부회장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로 해체된 미래전략실에서 경영진단팀장과 인사지원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한종희 삼성 부회장(DX부문장) [뉴시스]
한종희 삼성 부회장(DX부문장) [뉴시스]

SK그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문경영인 부회장 체제 강화'에 나섰다. SK그룹은 투자, 정보통신기술(ICT), 반도체, 신에너지 사업을 담당하는 지주회사 단위별로 전문경영인 부회장 체제를 튼실히 하고 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뉴시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뉴시스]

SK는 올해 초 단행한 정기 인사에서 장동현 SK㈜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발탁했다. 2020년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유정준 SK E&S 부회장이 승진한 데 이어 총 6명의 부회장단이 꾸려지면서 전문경영인 부회장 체제가 강화되는 흐름이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도 최태원 회장의 두터운 신망을 바탕으로 2017년부터 맡았던 자리를 지켰다.

구자은 LS 회장도 변화보단 안정을 찾았다. LS그룹은 지난달 22일 이사회를 열고 그동안  LS그룹의 안정적인 실적을 이끈 전문경영인 최고경영자(CEO) 명노현 ㈜LS 사장과 도석구 LS MnM 사장이 각각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처음으로 그룹 지휘봉을 잡은 구자은 회장의 취임 이후 첫 번째 임원인사다.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명노현, 도석구 사장은 ‘재무통’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명 사장은 LS전선에서, 도 사장은 지주사 ㈜LS에서 각각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한 바 있다. 공급망 불안과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위기 속에서도 안정적인 실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이라는 후문이다. 명 사장은 1987년 LS전선에, 도 사장은 1986년 현재 GS리테일인 LG유통에 입사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메리츠금융지주의 김용범 부회장도 있다. 그는 '메리츠의 믿을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내외부적으로도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특히 조정호 회장이 지난달 21일 '포괄적 주식교환'이란 경영전략을 발표한 이면에는 김 부회장의 실행력이 뒷받침됐다는 후문이다. 메리츠금융지주는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 자회사로 전환해 '단일 상장사'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포괄적 주식교환'은 회사 간의 주식교환계약을 통해 자회사 발행주식 총수를 지주회사로 전부 이전하고 자회사 주주들은 지주회사가 발행하는 신주를 배정받아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법이다.
 
최현만 미래에셋 증권 수석 부회장은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금융투자업계 최초로 회장에 오른 인물이다. 26년 전 미래에셋 창업 멤버로 증권, 운용, 생명, 캐피탈 등 계열 최고경영자를 역임하며 그룹 성장을 견인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사장은 지난해 10월 지주사인 HD 현대(옛 현대중공업 지주)와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인 한국 조선 해양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 사장은 권오갑 HD현대 회장과 함께 공동 대표를 맡으며 그룹의 방향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조만간 30년 전문경영인 체제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경영능력 검증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업계도 수십 년간 지속한 현대중공업의 전문경영인 시스템은 사실상 권오갑 회장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한다.  

- 총수 의존 문화 사라져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젊은 총수들은 아버지 세대와 달리 전문경영인 경영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이미 오래전부터 총수 의존 문화를 지우는 작업을 해왔다"며 "(전문경영인 부회장과 함께) 경영 전면에 나서 그룹의 미래먹거리를 진두지휘하는 책임경영과 함께 사회책임경영에서 앞장서기 위한 초석 마련으로 해석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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