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박상홍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박상홍 변호사]

형사 재판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법복을 입은 검사가 공소사실을 낭독하며 진행되는 공판기일의 첫 장면일 것이다. 이처럼 피고인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범죄가 성립하여 형벌권이 발생한다는 실체법상의 개념만으로는 부족하고 범죄별로 공소를 제기하기 위하여 소송법상 필요한 조건까지 갖추어져야 한다. 이를 ‘소추조건’이라 하는데, 우리 형사법에서는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가 이에 해당한다.

친고죄는 피해자 또는 고소권자가 고소를 해야 비로소 공소 제기가 가능한 범죄를 의미하는 반면, 반의사불벌죄는 고소가 없더라도 공소 제기는 가능하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소추조건이 없다고 판단하는 죄이다. 친고죄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수사기관이 임의로 수사할 경우 피해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이 침해되는 등의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고 그 외 피해자와 범인이 친족 등 특수한 관계에 있는 경우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처벌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피해자의 처벌 희망 의사를 고려하는 반의사불벌죄와 그 의미가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이 둘을 구별하여 우리의 형법전에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형법」 제·개정의 역사를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치열한 논리적 고민 끝에 도입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해방 이후 1953년 9월18일 「형법」을 최초로 제정할 당시, 1940년 3월 일본 개정형법가안에서 고안해 낸 반의사불벌죄를 그대로 수용하였는데, 막상 일본은 논의를 이어가다가 1961년 개정형법준비초안에서 기존과 같이 친고죄만 채택하고 반의사불벌죄는 도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형법은 오늘날까지 반의사불벌죄라는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입법례인 반의사불벌죄는 범죄자가 피해자와 합의 또는 화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다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또 다른 2차적 가해에 이르는 오·남용 사례가 빈번하다는 이유로 그 폐지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군인이 군사기지 또는 군사시설 등에서 군인을 상대로 폭행 또는 협박한 때에는 반의사불벌죄의 적용을 배제하도록 한 군형법상 특례규정이다. 엄격한 위계질서와 집단생활을 하는 군 조직의 특수성으로 인해 상급자가 합의를 종용해 올 경우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사정을 감안하여 반의사불벌죄의 적용을 배제한 것이다.

이 외에도 가정폭력, 의료시설 내에서의 의료진 등에 대한 폭행·협박, 임금 체불, 그리고 최근 관련 처벌법의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스토킹범죄에 이르기까지, 반의사불벌죄는 그 취지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처벌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오히려 소홀해지는 불씨가 되므로 폐지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문제는 국민들이 공분하는 극단적인 사건·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개별 법률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조금 손보는 땜질식 개정안을 검토하는 수준으로 항상 논의가 그친다는 점이다. 물론 같은 유형의 또 다른 피해자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그렇게라도 개정되는 것이 분명 더 나은 방향이기는 하다. 하지만 억울한 희생자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전체 형사법 질서에서 소추조건으로서의 반의사불벌죄를 일괄적으로 폐지하는 것에 대하여 이제는 진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할 시점이 된 것은 아닐까.

< 박상홍 변호사 ▲ 서울대학교 졸업 ▲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 변호사시험 합격 ▲ 공군 제19전투비행단 군검사/징계간사 ▲ 공군 제39정찰비행단 군검사(법무실장)/징계간사 ▲ 각 군 항고심사위원회 심사위원 ▲ 국군교도소 가석방심사위원회 심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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