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엘 법무법인 조민성 변호사]
[로엘 법무법인 조민성 변호사]

“AI 판사를 채용해 주세요”

불법촬영 혐의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국민청원이다.

사람들이 인공지능 판사를 원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아마 신속함과 공정함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인공지능 판사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한 법률 자료를 토대로 판결을 내린다. 인간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압도적인 양의 자료를 분석할 수 있다.

최근 개발된 인공지능 채팅봇(GPT-3.5)은 어떤 질문을 해도 그 자리에서 1분 이내에 장문의 답변을 내려준다. 단순히 인터넷에 존재하는 결괏값을 찾아주거나 정해진 대답만 반복하던 인공지능 비서(애플의 시리, 삼성의 빅스비 등)와 달리, OpenAI사에서 만든 채팅봇인 GPT-3.5는 같은 질문에도 다른 답변을 하고, 스스로 학습한 자료를 토대로 새로운 창작물도 만들어준다. 심지어 프로그램 코드도 제작해 주고, 대학생의 과제 논문을 작성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공정성은 어떠한가. 사람들은 인공지능 판사가 인간 판사와 달리 무의식적 편견과 이전의 경험에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아래와 같은 상황에서 어떤 판결을 내려야 공정한 판결일까?
▲ A와 B는 부부다. 어느 날 밤 둘은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 그 과정에서 A가 B에게 위험한 물건을 들고 위협하듯 노려보고 소리쳤다.
▲ 이후 출동한 경찰관은 A와 B의 이야기를 듣고 A를 체포했다.
이러한 사실만 놓고 보면, 인간 판사와 인공지능 판사 모두 A에게 특수협박 혐의를 인정할 것이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면 어떻게 될까?
▲ A는 위험한 물건을 들긴 했지만, 곧 B가 다칠까 봐 우려되어 위험한 물건을 치우고, 다시 말다툼만 하였다.
▲ 부부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A는 평소 부부 관계를 중재해 주던 C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 고령의 C는 시간이 늦어 직접 찾아갈 수 없었기에, 경찰에 전화하여 A와 B를 중재해 주길 요청했다. 과거에는 C의 생각처럼 경찰이 부부싸움을 화해시켜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 A와 B는 금세 화해했고,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있으며, 누구도 서로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인간 판사는 A에게 처벌할 필요성이 있을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단순히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것 외에 범죄를 저지른 행위자인 사람과 그 관계, 마음까지 함께 고려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공지능 판사였다면 어떨까. 분명히 A는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상태로 위협하듯 노려보며 소리쳤고,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키게 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해악을 고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 위법성이나 책임을 조각할 사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특수협박죄는 반의사불벌죄나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판사는 위와 같은 새로운 정보가 주어졌더라도, A에게 유죄를 선고할 것이다. 정상참작 사유로 감경을 해줄 수는 있겠다.

과연 A에게 유죄를 선고한 인공지능 판사가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 판사에겐 한 가지 더 맹점이 있다. 학습의 편향성이다. 인공지능 판사가 학습하는 대상은 결국 인간 판사가 내린 판결과 인간이 작성한 법률 문서다. 그래서 인간이 영향을 받은 무의식적 편견까지 그대로 학습하고, 인간과 같은 판결을 반복하게 된다. 인공지능 판사는 인간 판사가 기존 판례를 뒤집고 새로운 판결을 내리듯, 선례를 바꾸는 일도 할 수 없다.

판결은 수학 문제를 풀 듯 공식에 데이터를 대입하여 정해진 결과를 도출하는 작업이 아니다. 행위뿐만 아니라 행위자의 감정과 마음, 그 주변 환경까지 모두 고려하여 판단을 내리는 고차원적인 지능 활동을 거쳐야 한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고민하고 인간의 감정까지 이해하여 판단할 수 있지 않은 한, 인공지능은 인간 판사를 보조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그럼에도, 국민이 “AI 판사를 채용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이유까지 외면해서는 안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가기 위해 법원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과거 데이터만으로 판단을 내리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니까.

< 조민성 변호사 ▲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졸업 ▲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 변호사시험 합격 ▲ 인천지방검찰청 국가소송 및 행정소송 담당 공익법무관 ▲ 인천지방검찰청 세월호 국가소송 전담 ▲ 인천지방검찰청 국가배상심의회 인천지구심 간사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공익법무관 ▲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난민소송 담당 공익법무관 >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