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지위 변경(2021.7.2.)이 이루어지면서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한류 현상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지로 확산되면서 한국어·한국학 교육 및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는 달리 국가적·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고 한국학은 뿌리 없는 꽃꽂이 식물과도 같이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한국학은 현대과학의 방법론을 기용하지 못한 채 낡은전통에 머무르고 있으며, 한국산() 정신문화의 진면목은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학 콘텐츠의 빈곤과 불균형 또한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학이 직면한 딜레마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학이 직면한 최대의 딜레마는 우리 역사의 뿌리이자 한국 사상 및 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는 우리 상고사(上古史: 삼국 정립 이전 광의의 고대사)에 대한 제도권 합의의 부재로 인해 한국학 교육 자체가 뿌리 없는 꽃꽂이 교육, 생명력을 상실한 교육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역사가 외적의 강압과 내부의 사대주의자들과 정권 탈취 세력의 기만책으로 인하여,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조직적으로 위조되어 삼국 정립 이전의 유구한 역사가 상당 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학 관련 서적들도 연구의 시대적 범위를 대부분 삼국시대 이후에 집중함으로써 한국학 콘텐츠의 심대한 빈곤과 불균형을 초래했다.

둘째, 한국학이 직면한 또 하나의 딜레마는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유럽중심주의)의 망령, 그리고 자학적(自虐的)’ 역사관인 반도사관(식민사관)에 함몰되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역사철학적 및 정치철학적 토양이 척박해지고 극명한 이분법에 기초한 한반도의 이념적 지형이 고착화되면서 심지어는 우리 역사 자체가 정쟁(政爭)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학 연구의 바탕이 되어야 할 우리 역사가 권력의 시녀 노릇이나 한다면, 어떻게 한국학이 인류 사회의 원대한 미래적 비전을 담을 수 있겠는가. 한국학의 한계성은 우리 내부의 정치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수천 년의 영광스러운 우리 상고사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반도사관이 고착화되고 민족적 자존감이 심대하게 훼손되면서 우리 민족집단 자체가 스스로를 주변적 존재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사대주의가 발흥하게 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셋째, 한국학이 직면한 또 다른 딜레마는 목하 진행 중인 한·중 역사전쟁과 한·일 역사전쟁이 한국의 역사문화 침탈은 물론 정치적 노림수를 가진 고도의 정치적 기획물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 고대사 침탈은 2002년부터 중국 정부가 나서서 고구려 등을 중국 지방 정부로 편입하는 작업을 국책사업으로 공식 진행하면서 시작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2004.7)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세계문화유산등재가 결정되자, 환인·집안(集安) 등지의 유적에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안내문이 게시되었다. 바이두 백과사전(2016)에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를 중국사의 나라로 서술하는 작업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요하문명의 대표 문화로 꼽히는 홍산문화 유적이 발굴되면서 그 문화의 주인공이 전형적인 동이족으로 밝혀짐에 따라 홍산문화는 중국 황하문명의 원류인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음으로 한·일 역사전쟁은 일제가 한반도 침략을 노골화하던 시기인 1880년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에 있는 광개토대왕릉 비문의 몇 자를 파괴·변조하여 마치 왜()가 백제를 정벌하고 신라 등을 궤멸시킨 것처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가 하면, 일본의 야마토(大和)정권이 4세기 후반에 한반도에 진출해서 6세기 중엽까지 임나일본부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역설을 조작했다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조선사편수회가 설치되면서 환국·배달국·단군조선과 북부여에 이르기까지 무려 7천 년이 넘는 우리 상고사를 신화라는 이유로 잘라 없애버렸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는 결정적으로 뿌리가 뽑혀버렸다.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한국학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제가 날조한 역사나 읊조리며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문명의 파편이나 주워 담는 식의 종속적 한국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