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치 레레레’ 칠레의 광부들!

지난 13일 칠레 카피아포 산 호세 광산에서 구조된 두번째 구조자 마리오 세프베다(39)가 캡슐을 타고 지상에 올라와 환호하고 있다지난 14일(현지시간) 칠레 코피아포 산호세 광산에 매몰된 33명의 광부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구조된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주아(54· 왼쪽)가 건강한 모습으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의 축하를 받고 있다.

한마디로 각본 없는 인간 승리 드라마였다.

지난 13일 전 세계는 지하 625m 갱도에 갇혀 어둠 속에서 사투를 벌여온 칠레 광부들의 생환을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사고 현장인 칠레 북부 코피아코 산호세 광산에서 구조대원을 태운 캡슐이 서서히 지하로 내려갔다. 모두들 손에 땀을 쥔 채 지켜본 지 약 1시간 후인 0시 11분(한국 시간 13일 낮 12시 11분), 칠레 국기를 상징하는 백-적-청색의 구조용 캡슐이 마침내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열리기 직전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서서히 구조 캡슐 문이 열리고 첫 귀환자인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가 지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발자국은 미국의 우주인 암스트롱이 달에 내디딘 인류 첫 발자국과도 비견될 만한 감동의 상징이었다. 곳곳에서 박수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잇달아 터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바(Viva) 칠레”를 외쳐댔다. 칠레는 물론 전 세계가 기쁨에 휩싸인 순간이었다. 광부들을 구해낸 구조 캡슐은 그 이름처럼 페닉스(FENIX) 즉 ‘불사조’ 바로 그것이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길어 올린 칠레 광부 생환의 감동적인 현장을 다시 재현해 본다.

매몰 당시 부조장이었던 아발로스는 건강하고 이성적인 성격이라 첫 번째 구출자로 선정됐다고 한다. 그는 암흑 속에서 동료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지상으로 올려 보내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낸 인물이다.

당시 구조대 지휘관은 “첫 구조자는 구출되는 동안 발생할 지 모르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갖춰야한다”며 “뒤를 이어 구조되는 동료들에게 그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바로 아발로스가 그 적격자였던 것이다.

69일 만에 재회하는 가족들은 아발로스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달려가 품에 안겼다.

7살 난 그의 아들은 아빠의 모습을 보고 울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현장에 직접 나가 있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아발로스를 두 팔로 꼭 껴안으며 “칠레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며 감격을 표시했다. 주변에 있었던 구조팀은 칠레 공식 응원 구호인 ‘치치치 레레레 비바 칠레’를 변형한 ‘치치치 레레레 칠레의 광부들’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 모습은 전파를 타고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해져 숙연케 했다.


“칠레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불사조 호를 타고 두 번째로 구출된 사람은 활발한 성격의 마리오 세풀베다(39)였다. 그는 그토록 갈망하던 땅 위에 올라간 순간 환희에 가득찬 환호성을 질러댔다. 지상에 모습이 채 드러나기 이전부터 큰 목소리로 자신의 생환을 소리 높여 알렸고 굳게 쥔 주먹을 높이 든 채 곳곳을 뛰어다니며 기쁨을 표시했다. 메고 있던 가방에서 매몰된 광산에서 캐온 바위조각을 꺼내며 “지하 감옥에서 바위 조각을 기념품으로 가져왔다”고 말해 긴장했던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다. 그는 대통령을 비롯한 주위사람에게 바위 조각을 선물로 건네는 등 세리모니도 잊지 않았다. 그는 또 “신과 악마 사이에 있었는데 신이 나를 구해줬다”는 명대사를 전세계에 남겼다.

갱도에 매몰된 광부들 중 유일하게 볼리비아 국적자인 카를로스 마마니(23)는 가난 때문에 고국을 떠나 이곳 광산에 취업을 한 지 불과 5일 만에 변을 당했다. 그는 티셔츠 앞에 그려진 칠레 국기에 양쪽 집게손가락을 댄 후 “고마워요 칠레”라고 외치며 생환의 기쁨을 표시했다. 칠레 대통령은 마마니에게 집과 일자리를 약속했고 그는 다시는 광산에서 일하지 않겠다며 69일간의 악몽에 몸서리를 쳤다.

구조 과정에서 불륜 사실이 들통 나 또 다른 화제가 된 요니 바리오스(50)는 21번째로 지상에 나왔다. 바리오스는 광산에 갇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부인과 애인이 모두 광산에 달려와 불륜 사실이 들통났었다. 고립상태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면서도 구출되는 날 빚어질 혼란을 우려한 그는 두 사람이 친구가 되었으면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지상으로 보냈다. 그러나 결국 부인은 구조현장에 오지 않았고 결국 바리오스는 애인과 포옹하며 진한 키스를 나눴다.

22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구출 광부를 세는 숫자가 1에서 시작해 하나 둘 늘어나더니 마침내 33을 가리켰다. 마지막까지 남아있겠다고 자청해 세계를 숙연케 했던 ‘영원한 작업반장’ 루이스 우르수아가 무사히 지상을 밟으며 세기의 구조작전은 마침표를 찍었다. 광산 상공에 칠레 국기가 그려진 풍선이 일제히 떠올랐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환호하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긍정의 힘이 이들을 살려

매몰됐던 광부들은 그동안 강한 조직력과 끈끈한 연대감으로 갱도 속 대피공간을 희망의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여기에는 정신적 지주였던 루이스 우르수아의 역할이 컸다. 그는 위기 극복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자칫 무덤이 될 뻔했던 이 공간에서 광부들은 우르수아의 지휘와 통제를 따르며 침착히 구조를 기다렸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똘똘 뭉쳤다. 이틀에 한번 과자 반조각과 참치 통조림 두 숟가락, 우유 반 컵을 배급해 마셨다. 오락, 건강 체크, 기록 등 저마다 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해 하루하루를 침착히 버텼다. 혹시 모를 추가 붕괴의 위험과 발견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이들은 특유의 낙천성을 발휘해 유머를 잃지 않았다.

긍정의 힘은 큰 법. 지난 8월 22일 기적적으로 지상과 연락이 닿았다. 구조대는 가족의 편지와 식량, 책, 항 우울제 등을 공급했다. 구조를 위해 식사량도 성인기준 2200칼로리에 맞춰 제공됐다.

구조대의 조언에 맞춰 일상적 생활 유지를 위해 아침 7시에 샤워와 아침 식사를 하고 3개조로 나눠 갱도의 상태를 철저히 체크했다. 정오에는 전체 회의를 열고 기도를 하며 결속을 다졌다. 오후에는 저마다 여가시간을 보내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극한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 애썼다. 이들의 결속은 자칫 반목과 갈등으로 치닫기 쉬운 고립 생활을 여유와 유머로 보낼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손꼽아 기다리던 구조의 순간에도 자신이 마지막 순번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등 끈끈한 동료애를 보여줘 휴머니즘의 감동을 안겨줬다.


제2의 인생은 장밋빛

광산은 이번 사고로 문을 닫게 됐지만, 33인의 광부들은 기적의 생환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면서 희비의 쌍곡선을 그렸다.

외신들은 광부들이 영웅 대접은 물론 돈방석에 앉게 됐다고 잇달아 보도해 이들의 앞날에 세계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처럼 언론의 지대한 관심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보상도 상당하다. 광부 가족들은 지난 1일 사고 광산업체인 산에스테반 그룹을 상대로 1200만 달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에도 이와 비슷한 액수의 배상금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칠레의 광산사업가 레오나르도 파르카스가 광부들을 위해 66만 달러를 내놓아 주머니가 두둑해질 것은 분명해졌다.

더구나 벌써부터 광부들의 암흑 속 사투를 다룬 거액의 출판 및 영화·다큐멘터리 제작 의뢰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일례로 한 방송사는 단독 인터뷰를 대가로 2만 달러의 출연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12일 “광부들의 기적적 생환 이야기의 저작권료는 약 1만 달러, TV 드라마 등으로 제작하려면 5만~10만 달러는 지급해야 될 것”이라는 온라인 저작권 중개업자 스캇 맨빌의 예상을 전했다.

이들은 건강을 회복한 뒤 정부 지원으로 그리스로 휴양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초청도 기다리고 있다. 일자리 제안도 쇄도하고 있어 제2의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칠레 매몰 광부 구출일지

8월 5일: 산호세 광산 매몰사고 발생. 지하 625m
갱도 피난처에 광부 33인 매몰
12일: 라우렌세 골본 광업부장관,
“매몰 광부 생존 가능성 거의 없다”
22일: 생존 확인 위한 굴착 작업 중 “피신처에 33인
모두 생존해있다”는 쪽지 탐침봉에서 발견
23일: 굴착공 통해 첫 구호품 매몰된 광부들에 전달
26일: 매몰 광부들 지하생활 모습 첫 TV 방영
30일: 구조갱도 굴착작업 첫 시작(플랜A)
9월 5일: 더 빠른 굴착기 이용한 2차 굴착작업 시작(플랜B)
30일: 매몰 광부 가족, 광산회사 상대 1200만 달러 손배소송
10월 1일: 순조로운 굴착작업으로 10월 중순 구출 가능성 발표
4일: 피녜라 대통령, “10월 중순까지 광부들이
지상으로 올라올 수 있길 희망” 언급
9일: 2차 굴착작업, 매몰지점까지 연결된 지하갱도 완성
12일: 구조 캡슐 ‘불사조’시험 등 구조준비 완료
13일: 매몰 광부 전원 구출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한국의 매몰 사태

양찬선씨 광산 붕괴로 16일 만에 구조
삼풍백화점 붕괴 때도 17일 만에 생환

국내에서도 붕괴 사태로 매몰됐다 극적으로 생환한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1967년 충남 청양군 사양면 구양리에 있는 구봉광산에서 낙반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광부 양찬선(당시 36세)씨가 홀로 125m 깊이에 매몰돼 땅 속에 꼼짝없이 갇혔다. 다행히 전화선을 발견해 간신히 외부에 매몰 소식을 알렸다.

온 국민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구조는 지체돼 갔다. 깊이도 깊었던 데다 당시 구조장비도 마땅찮았기 때문이다. 지상과의 소통은 전화선이 유일했다.

양씨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도시락에 받아 마시며 버티는 등 극한의 상황을 견뎌냈다. 16일 만에 안전캡슐을 이용해 극적으로 구출된 양씨의 체중은 20kg 가까이 감소해 있었다. 하지만 의식도 또렷하고 전체적으로 건강한 편이었다.

1995년 6월 28일에는 서울 도심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사망 501명, 실종 6명, 부상 937명으로 국내 최대 참사로 기록됐다. 양쪽 벽만 남긴 채 참혹하게 무너진 현장에서 벌어진 대대적인 구조작업은 밤낮이 없었다.

하지만 기적은 있었다. 물과 음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생존자들이 잇따라 발견됐다. 최명석(당시 15세)씨는 10일 만에, 유지환(당시 17세·여)씨는 13일 만에 구조됐다.

가장 늦게 구조된 사람은 박승현(당시 19세·여)씨로 콘크리트 더미에 갇힌 지 무려 17일 만에 구조됐다. 양찬선씨의 369시간보다 무려 8시간 더 긴 377시간 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채 매몰돼 있어 국내 최장 기록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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