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흐지부지, 연애도 흐지부지, 직장 생활도 흐지부지, 부부생활마저 흐지부지로 일관하는 남자, 그래서 별명마저 ‘시들시들’이란다.

이런 경우 가장 속 터지는 건 아무래도 그의 부인일 것이다. 하긴 그처럼 무력한 삶을 살아내는 남편을 마냥 곱게만 보아줄 아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매사 ‘시들시들’로 일관하는 남편의 처신에 속을 끓이던 부인이 상담을 의뢰해 왔다.
“무슨 병이라도 있나 싶어서 병원에도 여러군데 가 봤죠. 근데 멀쩡하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힘들다. 죽겠다는 소리만 입에 달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조화속인지 모르겠어요!”

“사람마다 세상을 살아내는 방식이 다르니 남편을 다른 집 남편들과 비교해선 안 되지요”
“아이구! 애당초 비교하지도 않아요. 그렇지만 직장도 귀찮고 친구도 귀찮고 집 식구마저도 부담스럽다는 식이면 뭔가 하자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모든 게 시들시들하다는 남자의 사주를 훑어보니 아닌 게 아니라 신약(身弱)한 사주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신약이란 사주의 중심이 되는 일주(日柱)의 천간(天干) 곧 일간을 지원하는 세력과 일간을 극하는 세력에 밀려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본시 좋은 사주란 양쪽 세력이 균형을 이룬 상태를 말하며 이를 달리 ‘중화(中和)를 이뤘다’고 한다.

명리에서는 사주가 중화를 이루지 못하고 한쪽이 너무 강하거나 너무 약한 경우를 모두 흉(凶)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 사주는 거기서도 한 술 더 뜨는 고약한 상황이다. 일간이 무력(無力)한 것으로도 모자라 용신(用神)마저 기반(羈絆)이 되어 있는 형편이니 말이다. 용신이란 사주 내의 세력이 균형을 이루도록 조절하고 중재하는 존재다. 기반이란 그처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용신에 굴레가 씌워져 있다는 뜻이다. 용신이 붕붕 날아도 모자랄 판에 옴쭉달싹 못하게 굴레가 씌워져 있으니 그런 사주를 타고난 삶이 고단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속으로 한숨을 삭이느라 유구무언이 되자 궁금해진 아낙이 바싹 다가앉으며 묻는다.
“어때요? 우리 남편 사주팔자가 쓸 만해요?”
그렇게 묻는 속내는 ‘아무래도 남편 사주에 문제가 있는 거죠?’라는 뜻인데 섣불리 이실직고했다가는 자칫 ‘사네 못 사네’하는 사단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 입 열기가 무섭다.

“그럼요! 문제없는 사주가 어디 있나요? 한두 가지 문제는 으레 있기 마련이죠! 이 사주도 마찬가지예요!”
일단 그런 식으로 사안의 중요성을 희석시킨 다음 대운(大運)세운(歲運)같은 행운(行運)에 의한 일차적인 운세 지원여부를 타진해 본다. 그런데 아직 멀었다. 이번에는 궁합(宮合)이나 가상(家相), 장신구(裝身具) 등에 의한 풍수(風水)적인 지원책을 동원해 본다. 용신이 기반되지 않고 일간이 신약한 경우라면 풍수처방만으로도 뚜렷한 운세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신약하고 용신마저 ‘굴레가 씌워진’ 사주는 질병으로 치면 ‘불치병’이나 ‘난치병’ 차원이니 대책이 난감하다. 세월이 좋아지면서 난치 혹은 불치로 치부되었던 질병에 획기적인 치료약들이 속속 출현하는 세상이 되었건만 사주 쪽은 아직도 용신이 기반된 사주에 대한 근본 해결책 없이 고작 행운이나 풍수를 이용한 증상완화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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