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명종 때 사람인 홍계관은 이름난 점술가였다. 그래서 그의 집은 장안에 내로라하는 고관들의 출입이 잦았는데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이면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으로 유명했다.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그래서 언젠가 명이 다하면 자기도 죽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 날짜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는 것 뿐이다. 따라서 자기가 죽을 날짜를 알게 된다는 것은 삶에 대한 가치관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삶에 대하여 긍정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 여생을 보다 알차고 보람 있는 쪽으로 운영하여 미진함과 후회가 없는 삶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은 하루하루 줄어드는 수명이나 헤아리면서 피가 마르는 긴장과 불안 초조에 찌들어 죽을 날짜가 되기도 전에 지레 죽어가는 삶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더러는 홍계관의 점괘가 빗나가는 수도 있었다. 그가 예언한 날이 되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일껏 죽을 채비를 갖추고 대기하던 사람은 황당해지기 마련이다. 속절없이 우롱당한 것 같은 괘씸함과 남우세가 뒤엉켜 홍계관에게 따지고 들었는데 이때 홍계관의 답변은 이러했다.

‘대감의 팔자에 정해진 수명은 제 점괘가 맞습니다. 다만 대감께서 살아오면서 타인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거나 조상의 음덕(蔭德)이 각별하면 가외로 명이 더해지는 수가 있습지요.’

이 말은 선천적인 팔자도 중요하지만 후천적인 여건도 팔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며 후천적인 여건이 좋고 나쁨에 따라 팔자가 개선되거나 개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후천적인 여건이란 적선이나 조상의 음덕 외에도 가족관계나 사회적으로 맺어지는 인간관계, 생활환경 등이 모두 포함된다.

걸인 사주를 타고났지만 좋은 사주를 타고난 부인의 내조에 힘입어 재벌이 된 모 기업인의 경우나 친구 덕분에 죽을 목숨 건졌을 뿐만 아니라 일국의 재상이 될 수 있었던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가 좋은 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자기가 타고난 팔자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좋은 삶을 누리는 사람이 찾아오거나 썩 좋은 팔자를 타고났으면서도 현실에서는 흉사가 잦아 지실이 든 사람도 온다. 그럴 때면 제일 먼저 점검해야 할 부분이 풍수적인 여건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가상(家相)이며 그의 운세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환경적인 여건들이 어떤 식으로 사주의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타고난 팔자에 비추어 어떤 환경여건이 상생(相生) 또는 상극(相剋)을 이루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만이 보다 확실한 운명 개선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사주를 제시하자마자 일사천리로 답변이 콸콸 쏟아지기를 기대하는 성미 급한 사람도 있다. 이때는 거두절미하고 좋은 말로 등 떠밀어 돌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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