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2월 11일 <거창양민학살사건 발생>

6·25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11일 경상남도 거창군 일대에서 양민 대량학살사건이 발생했다.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된 후 빨치산 공세가 강화되자 후방의 빨치산과 대결하던 국군이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주민들이 공비와 내통하였다고 오판, 2월 10일 내탄(內呑) 부락 골짜기에서 양민 500여명을 무차별 학살했다.이 사건은 국회에서 거창군 출신 국회의원 신중목씨의 보고로 만천하에 알려졌다. 이후 국회 조사 등을 통해 진상이 공개됐다.

1997년 2월 12일 <황장엽 북한노동당 비서, 망명 신청>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가 지난 97년 2월 12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함경북도 주을에서 태어난 황장엽은 김일성종합대학을 거쳐 1949년 모스크바종합대학에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 입국하여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58년 노동당 핵심지위로 발탁되었다. 그후 1965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에 임명되었고 김일성유일사상체계 확립에 관여하였으며, 김정일을 후원했다. 이 때부터 그는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해 이른바 김일성주의로 발전시키는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또 김일성 우상화를 제3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여러나라에 주체사상 연구소를 설립하고 그 연구활동을 지원독려하는 대외활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최고인민회의 의장 재직기간중 20여차례에 걸쳐 30여개국을 순방해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1970년 당중앙위원, 1980년 당비서, 1984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1987년 사회과학자협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지난 97년 2월 12일 북경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 뒤, 필리핀을 거쳐 1997년 4월 서울에 입성했다. 황장엽은 망명후 1997년 12월부터 국정원이 운영하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 소재 통일정책연구소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60년 2월 15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 미국서 별세>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유석 조병옥씨가 60년 2월 15일 사망했다.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그는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유학중, 한인회·흥사단 등의 단체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했다.귀국후 연희전문 전임강사로 있으면서 YMCA 이사와 비밀독립단체 그리스도신우회 회원이 되고, 1927년 신간회 창립위원·재정총무를 역임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의 배후조종자로 검거되어 3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송진우·장덕수 등과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청의 경무부장에 취임, 치안유지와 공산당 색출에 진력했다. 1948년 대통령특사·유엔 한국대표 등을 역임하고, 1950년 6·25전쟁 때 내무장관으로 대구 사수의 진두지휘를 담당하였다. 그후 대통령 이승만과의 의견충돌로 사직하고,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나섰다. 1954년 제3대 민의원에 당선되고, 이듬해 민주당 최고위원이 되었으며, 1956년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되어 야당을 이끌었다. 1958년 제4대 민의원에 당선되고, 1960년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대통령선거에 입후보하였으나 선거를 1개월 앞두고 미국의 월터리드육군의료센터에서 가료 중 병사했다.

1945년 2월 16일 <시인 윤동주 세상 떠남>

<서시>, <별 헤는 밤> 등으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가 1945년 2월 16일 사망했다. 지난 1917년 12월 30일 만주의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 도시샤대학 영문과 재학 중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국하다 사상범으로 일본에 체포, 1944년 6월 2년형을 선고받고 45년 2월 16일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살아 생전에 그의 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의 사후인 1948년에 유고시 30편을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돼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특히 시집 출판이후에야 윤동주는 일약 일제강점기 말의 저항시인으로서 크게 각광을 받게 됐다.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서시(序詩)’ ‘별 헤는 밤’ ‘십자가’ 등이 그의 대표작들. 현재 연세대학교 캠퍼스 등에 그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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