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한번 와주세요. 아무래도 동티(動土)가 난 것 같은데….”
최근 집의 가상(家相)이 지니고 있는 길흉을 가늠해 달라는 의뢰가 자주 온다. 집안 식구가 이유 없이 자주 앓아눕거나 하는 등 일이 꼬이기만 하고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거나 아이들이 공부를 멀리하는 일이 생기면 덮어놓고 집터에 일차적인 혐의를 두는 예가 흔하다.
3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사를 한 뒤로 아내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몸이 쇠약해지면서 자리에 눕는 일이 잦아지고 사사건건 짜증을 내기 시작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 증세가 심해져 도무지 견딜 재간이 없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사를 하고부터 그런 일이 생겼다구요?”
“예, 재작년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그 이듬해부터 아프기 시작한 것 같네요!”
“병원에는 가보셨나요?”
“그럼요! 큰 병원을 여러 군데 가봤지요! 그런데 여러 가지 진단을 해봐도 아무런 병이 없다네요. 그런데도 본인은 계속 힘들어하니 답답할 수밖에요.”
한 시간 남짓 걸려 찾아간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인 그 집은 마당도 있고 그 옆으로 잔디가 깔린 정원에는 비싼 나무도 여러 그루 서 있었다. 거실로 들어서자 남쪽 베란다에 분재(盆栽)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밑둥치는 엄청나게 굵은 대신 키가 두어 뼘에 불과할 정도로 성장을 억제당한 소나무. 인위적으로 휘어놓은 가지마다 철사를 감고 있는 나무들이 보기 안쓰러워 눈길을 돌리는 참인데 그런 속을 모르는 가장은 자랑에 불이 붙었다.
“분재 좋아하십니까? 저도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시작했는데 정말 재미있어요!”
‘저 소나무는 자그마치 30년도 더 되는 고목이고, 이쪽 동백나무는 어떻고 저기 회양목은 어떻고’…. 입에 침이 마른다. 그 자랑을 귓등으로 넘기며 부인의 사주를 물었다. 가상을 살피기 전에 사주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아뿔싸! 부인의 사주를 보니 목(木)이 기신(忌神)이었다. 기신이란 운세에 걸림돌이 되는 존재다. 게다가 대운(大運)마저 기신인 목(木)에 해당하고 설상가상으로 남편마저 분재에 취미를 붙여 뒤틀리고 성장을 억제당한 나무들을 거실에 잔뜩 들여놓아 나무들의 원심(怨心)이 거실을 채웠으니 부인으로서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셈이다. 반면에 목이 희신(喜神)에 해당하는 사주를 타고난 가장이야 분재를 하거나 정원에 나무를 다듬는 것이 운세를 지원하는 격이므로 신명이 날 수밖에 없다. 거두절미하고 단호하게 처방을 내렸다.
“부인께서 서둘러 다른 곳으로 비접(避接)을 가셔야 되겠네요!”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 집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죠?”
“길게 설명을 해 드릴 수는 없고! 일단 그렇게 하세요! 그러면 좋아질 겁니다.”
그래서 부인은 서둘러 공기 좋은 곳으로 비접(避接)을 떠났다. 상극(相剋)인 목(木)을 멀리하고 대운이 비록 흉하지만 세운(歲運)이 다행히도 길한 쪽이니 멀잖아 건강상태가 호전될 것으로 보였다.
요즘에 문득 그때 일이 궁금하여 연락을 해보았다. 예상대로 부인은 비접을 간지 얼마 안 되어 건강이 회복되었는데 그리고도 집으로 돌아오기가 싫어져 그대로 시골에 눌러앉아 본의 아니게 두 집 살림이 되어 버렸단다. 이 경우는 가상(家相)보다 거실에 도열한 분재들이 실질적인 흉(凶)으로 작용하는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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