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자와 그 가족은 물론, 웬만큼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지긋지긋 넌더리를 낼 만큼 무지막지하고 야비한 국가적 관행이었던 ‘연좌제’, 이것이 지난 1980년 헌법으로 금지되자 그 괴물은 진짜 완전히 없어질 줄 알았다. 다시는 이 땅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연좌제’가 지금도 기세 등등, 그 위세가 여전하니 문제다.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한 과거의 ‘원조 연좌제’는 사라졌지만 훨씬 더 뻔뻔하고 간교하게 진화된 ‘변종 연좌제’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전문가가 아닌 보통시민의 눈으로 보았을 때 불특정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적용받는 ‘변종연좌제’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융기관의 ‘신용연좌제’와 요즘 갑자기 나타난 ‘종부세연좌제’다. 그 중 특히 험상궂은 표정으로 이러저러 신경 쓰이게 하는 ‘종부세연좌제’는 지금까지 나타난 수많은 ‘변종’ 가운데서 가장 독하고 악랄한 것이 아닐까 한다.

20년 전 허허벌판이던 강남에 싼 값으로 분양하는 서민 아파트를 사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이사를 하지 않고 그야말로 평온무사하게 살고 있는데 투기꾼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으니 에누리 없는 연좌제다. ‘어느 머저리 같은 투기꾼이 한 집에서 20년 씩 눌러앉아 사느냐’는 어느 시민의 외침
이 유난히 짠하게 들리는 이유다.

‘반 강제적으로 전통의 명문 고등학교를 강남으로 이전해 놓고 강남지역으로 옮겨 살라는 정부정책에 충실히 따랐더니 이제는 죄인 취급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집값이 오른 만큼 차익을 세금으로 토해 내던지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가라니 세상에 그런 야비한 연좌제가 또 어디 있는가.

정부가 청약가점제를 시행하면서 만 60세 이상 부모를 한 집에서 모시더라도 부모가 2주택 소유자이면 그 자녀에게 가점을 주기는커녕 ‘감점제’를 도입한다는 오늘 아침 뉴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부모가 부자라는 이유로 청약권에 제약을 받아도 괜찮다는 발상도 놀랍다. 더욱이 부모에 대한 ‘효’보다 자녀에 대한 ‘주택증여’를 권한다는 오해가 더 염려스럽다.

어느 여성이 처녀시절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어렵사리 산 아파트를 결혼 후에도 계속 가지고 있었더니 남편 집을 합쳐 1가구 2주택이 되는 바람에 종부세 과세 대상이 된다면 그 역시 ‘변종 연좌제’에 다름 아니다. 남편이 아파트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과세 대상 여부가 결정되고 세금 액수가 달라지니 어처구니 없다. ‘종부세’란 ‘종합부동산세’의 한자약어인 ‘綜不稅’가 아니라‘從夫稅’라는 이야기가 더욱 씁쓰레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부별산제’가 민법으로 보장돼 있고 남녀 동권을 그 어느 나라보다 외치는 우리나라에서 ‘부부별산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남녀 동등원칙의 근본을 뒤흔드는 ‘從夫稅’ 에 대한 여성부와 여성단체의 침묵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오리지널 바이러스보다 변종 바이러스가 더 무서울 수 있듯이 ‘원조 연좌제’보다 ‘변종 연좌제’가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일 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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