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우리 나라 빈곤층이 전체 인구의 15%인 716만 명이나 된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빈곤층 규모가 늘어난 것은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 등이 맞물려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듯 국민의 경제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렇다할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의 한편에는 전국민복지의 근간이라고 볼 수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마저 강하게 일고 있다. 심지어는 국민연금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8%에 육박하는 청년실업이 대변하는 어려운 경제현실이 미래의 생활보장을 내세우는 연금마저 기만적으로 느끼게 하는 국면에 접어든 것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도 성장과 분배를 적당히 조화시켜 잘해보자는 정치적 수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고난도의 정치공학이 절실한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선진 복지국가들은 오랜 정당정치의 뿌리가 있어 국민의 욕구와 정서를 자양분삼아 다양한 복지문제들을 정치 아젠다로 설정하며 선거를 통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으며 해결해왔다. 사민주의적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국가들이 집권을 위하여 시장과 국가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하며 국민정당화해온 과정이 그러했다. 이미 계급정당의 노선을 많이 벗어나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영국의 노동당 정치가 그렇고 적녹연정이후 좌파적 정체성을 흐릿하게 유지하고 있는 독일이 그러하며 공화적 연대방식이 남아 있지만 취업 장려금을 통하여 개인을 사회적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프랑스가 그렇다. 이들 국가들은 이제 노동자와 중산국민을 동시에 설득하며 국가재정과 국민의 삶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국민의 부담을 더 올리는 선택을 하기도 하는 단계에 올라와 있다. 광복이후 남북 대치상황 속에서 정당의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이 폭을 넓히기 힘들었던 우리의 정치는 보수적 분위기 속에서 정당 간 복지정책의 차별성을 정당의 역사성과 결부시키지 못하고 지역맹주의 외연적 교체만을 거듭해왔으며 집권용 또는 집권 후의 정당주조만을 반복해 왔다. 자연히 복지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불가능했고 집권시나리오도 정치체제나 지역성을 대변하는 것들뿐이었다. 이에 매몰되면 집권기간이나 집권경쟁기간 내내 국민의 삶을 섬세하게 챙기는 정치를 하지 못하고 권력의 향배를 좇아 좌충우돌하는 정치적 백시현상(white-out)만이 지속될 뿐이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 이어 문민집권 3기를 맞는 참여정부가 이제 임기를 2년여 앞두고 있다. 그러나 아직 참여정부는 정책을 이끌어 나가는 데 미숙한 점을 보이고 있으며, 제1야당도 사안별 대안제시가 구체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새롭게 진입하여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했던 노동자 정당의 역할도 뚜렷하지 못해 여전히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이러한 관성이 차기 대권 주자들의 등장시기까지 지속된다면 우리의 정치문화에 변화가 정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체 국민의 15%가 빈곤층으로 전락하여 허리가 휘는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데 정치권은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 없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체 빈곤층 가운데 기초생활보호제도의 혜택을 받는 가구는 30∼40%에 불과할 정도로 지금의 사회안전망은 사각지대가 지나칠 정도로 광범위하다. 이제는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빈곤이란 벼랑 끝에 내몰린 국민들을 하루 빨리 안전지대로 구출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국민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정치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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