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정당들은 역사가 길다. 영국은 토리-휘그당의 전통을 살려 보수당과 노동당이라는 양당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독일 역시 연정의 경험은 하고 있지만 기존 정당의 모습들이 유지되어 왔다. 미국도 공화-민주의 전통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다. 일단 정당의 형태를 갖추고 나면 혁명에 가까운 큰 정변이 없는 한 그 틀을 깨지 않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이라고 받아들인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 정당 내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정당내의 경쟁관계를 거쳐 성장하는 한편 국민들의 평가도 동시에 받게 된다. 국민들은 어느 정도 성장한 정치인들을 안정적인 기조 속에서 평가하고 예측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기대와 관련시키며 지지농도를 조절한다. 단위 정책마다 드러나는 정치적 방향성과 내용을 보며 어느 정치인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한다. 필자가 90년도 초에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들어왔던 정치인들의 이름은 아직도 국민들에게 회자되며 평가되고 있다. 노동자의 차기주자라는 고든 브라운도 당시에는 야당의 한 엘리트의원이었다.반면 한국의 정당은 권력자가 새롭게 들어설 때마다 이름을 달리하는 수난을 겪었다. 집권을 하지 못하고 불임정당 신세로 한탄하다가 명멸한 정당도 많다. 공화당, 자유당, 민주당, 민정당, 민자당, 국민당, 국민통합21,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사민당 등 생명이 짧거나 언제 그 정당 명칭이 바뀔지 알 수 없는 정당들이 정리되지 않을 만큼 많다. 한국정치를 연구하는 한 외국교수가 정당의 계보를 익히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토로를 했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해가 간다. 새롭게 간판을 달고 늘 새 출발하는 정당들이 그다지도 많았는데 한국의 정치는 왜 아직도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민들은 우리 정치판을 음식은 안 바꾸고 간판만 바꾸는 식당주인으로 이미 결론짓고 식상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정당들은 국민들의 냉소적 시선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국민의 환심을 사 보려고 저마다 국민 속으로 파고드는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탈 이데올로기 노선을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열린우리당도 처음에는 이데올로기색채를 강하게 풍기며 국가경영세력의 완전교체를 이뤄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바꿨다는 표현도 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당 혁신팀을 구성하여 보수적 색채를 지우고 소외계층도 아우르는 진보성을 포함한 비전을 발표한 적이 있다. 서구 선진국들의 일명 ‘국민정당화’하는 추세를 학습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사실 서구의 정당들은 이데올로기의 치마폭을 떠나 국민의 품에 안긴지 꽤 오래됐다. 다수의 국민들을 정치적 동맹세력으로 묶어 집권을 하고 정치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한 오랜 연구 끝에 그 같은 정치공학이 도출된 것이다.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실용적인 정책노선이 경색된 정강을 밀어내는 치열한 논쟁을 거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판을 깨고 당에서 뛰쳐나오거나 당의 간판을 갈아붙이지 않았다. 대신 고달픈 과정을 인내하며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강한 비전을 심기 위해 노력했다. 요즈음 연정얘기로 나라가 뒤숭숭하다.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국정운영을 잘할 때 이러한 논의가 나왔으면(사실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그 진정성에 대하여 국민들은 따스한 미소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보선 참패, 행담도 의혹, 대학입시를 둘러싼 교육행정의 갈등 양산, 신당출현에 대한 위기의식 등이 겹친 정국에서 이 같은 제안이 나온 것은 당의 간판을 바꿔다는 우리의 정치행태의 연속된 모습으로 밖에 안 느껴진다. 열린우리당이 혹시 집권 전후 고조되었던 월드컵의 열기와 문자 메시지 투표전략이라는 이벤트성 정치의 관습에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든다. 이제 대통령의 임기는 2년 반 조금 못 되게 남았다. 이제는 하나의 정책이라도 제대로 챙겨 차근차근 국민의 호응을 얻어내는 본래적 의미의 정치로 돌아갈 때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래도 그 길이 바로 국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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