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지경이 되고 마는 건가? 군사정권과 그 연장선에 있던 정부는 예외로 하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걸어왔던 정치적 불행을 노무현정권도 비슷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지난 두 대통령이 정권 말에 아들과 친인척의 발호(?)에 의하여 국민과 멀어졌으며 가신의 역할 속에서 국민들은 권력의 허무를 경험하며 냉소주의를 키워왔다. 임기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노 정권에는 이 시기가 더 빨리 다가온 것 같다. 그간 국민들이 키워온 정치에 대한 염증으로 인해 정권의 한계를 빨리 정리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여당 내에서는 개혁이냐 실용이냐를 두고 해묵은 논쟁을 벌이고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차기를 염두에 둔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것을 이미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행담도 사건도 어딘지 권력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월권이라는 논의를 넘어, 노 정권의 중요한 자문그룹 중의 한 사람인 정치학자 문정인 교수가 개발사업을 보증하는 등 어딘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부동산 정책도 정부가 강조하던 반대방향으로 욱일승천하는 모습이다. 노 정권이 집값만큼은 꼭 잡고야 말겠다고 수차례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을 역시 국민들은 잊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행정도시법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가 있었다. 이 문제도 단순히 정치적 액션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나라에 미칠 파장이 크다. 국민들은 또 숨죽이고 헌재의 결정을 보고 있어야 한다. 교육은 또 어떤가. 유능한 학생을 한보따리 씩 외화를 들려 외국으로 내몰고 있는 교육현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대학의 선발자율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듯하다. 오기가 서려있는 소위 ‘교육3불정책’은 차라리 교육부가 없는 편이 더 낫겠다는 탄식을 자아내고 있기도 하다.어느 정치학자가 이 정도면 사실상 정권이 뇌사상태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든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단임제 대통령의 임기 후반에는 늘 사람들이 다음에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우루루 몰려가곤 한다. 이제 여권에서도 차기 주자군들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을 수 없을 테고, 그러다 보면 대통령의 존재는 뒤로 밀려나는 형국이 된다. 항간에 김근태 장관과 정동영장관이 곧 국회로 복귀할 것이라는 소문이 이를 현실화 시키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한 쪽에서는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하여 개헌을 하여 4년 중임대통령제를 도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개헌논의로 온 나라가 들끓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4년씩 두 번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처음 임기 동안은 다음번의 본게임을 위하여 준비만 하다가 허송세월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있다. 다음에 다시 당선되기 위해 각종 정치적인 이벤트에 매몰되어 첫 4년을 보내다 보면 나라가 제대로 굴러 갈 것인가 하는 걱정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권력구조를 크게 흔들어서 해결될 부분도 있지만 ‘정권내부에 어떤 사람들이 어떠한 시스템을 갖추고 어떠한 지향성을 갖고 나가는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노 정권 초기에 코드인사 논란이 있었다. 그 후 몇몇 기성관료들이 경제 분야를 이끌게 되었다. 그런데 청와대를 둘러싸고 있는 코드형 학자 및 386정치 엘리트들은 각종 위원회에 포진되어 정리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대통령 주변에 하염없이 뿌려 놓고 있다. 대통령산하 위원회간 갈등과 반목도 보통을 넘는다는 평이다. 이러니 무슨 일이 되겠는가? 이럴 때는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더 잘하는 일일 수가 있다. 모든 위원회, 모든 부처, 모든 공공기관에서 획일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혁신이 과연 국민들과 소통하는 녹아드는 행정(governance)이라 할 수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이제 권력핵심으로 통하는 문에 입력된 ‘코드형 출입제어장치’를 과감하게 없애고 다양한 인재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부처별로 장관들에게 힘을 주어 위원회의 그늘에서 벗어나 소신 있게 국정을 챙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참여는 끼리끼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아예 다른 사람과 한 테이블에 앉아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인 것이다. 진정한 참여는 동업과 다른 것이다. 획기적인 탕평책이 임기 말 국정의 맥을 잡아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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