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5월부터 한여름까지 여의도 정가는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농번기로 접어든 농심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지역정치행사도 많이 줄인다. 그리고 주로 해외 나들이를 하면서 견문을 넓히곤 한다. 어쩌면 여의도 선량들에겐 5월이 짧은 충전의 시작인 것이다. 그런데 올 여름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우선 지난 4·30 재보선에서 참패한 여당의 물 밑 발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다. 러시아 유전개발사건으로 선거후 여진피해를 당하고 있는 여권은 또다시 권력형 비리의 몸통시비에 시달리고 있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때맞춰 터진 서울시의 청계천프로젝트 문제에 대하여 당내에 대책반을 꾸려 대응하는 등 차기 대권구도를 염두에 둔 듯한 스텝을 밟고 있다. 그리고 행정수도 관련 탄핵 이후 ‘말뚝을 공천해도 당선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던 충남 공주·연기 지역에서 자민련을 떠나 홀로 서고 있는 심대평 충남지사가 지원했다는 정진석 의원에게 대패한 충격은 적지 않은 것 같다. 열린우리당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충청권을 향하여 “지역정당은 말이 안된다”, ”신당창당은 범죄행위다”라고 연일 맹공하는 것을 보면 상처의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민주당에 대한 합당구애도 여의치 않은 것 같다. 민주당으로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를 통하여 당의 기틀을 다시 세울 자신감이 붙은 상황 속에서 당내응집성이 원심력을 상회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여권의 위기의식과 이로 인한 정치권의 긴장감이 5월을 편치 않게 하고 있다.이런 와중에 정치권 외곽에서는 두 가지 논쟁이 일고 있다. 하나는 ‘뉴라이트’라는 새로운 정치이데올로기 논쟁이다. 아직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고 수구적 보수와 편향적 진보를 동시에 비판한다는 정도의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 정책대안도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고 서구에서는 대처와 레이건 이후 이미 사용하지 않는 해묵은 개념이라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자기 분열과 연결될 경우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응할 ‘뉴레프트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이념논쟁이 또 한번 한국 정국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 또 하나의 논쟁은 바로 개헌논의다. 처음에는 올 초에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더니 이제는 정치학회의의 한 섹션이 되어 논의되고 있다. 주로 대통령의 권한과 당파성에 대하여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학계에서 정식으로 개헌문제가 논의된 것은 어쩌면 그것을 기정사실화시키고 있다는 측면이 있다. 개헌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아니라 방향성과 내용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차기 대선을 전후하여 정치권이 다시 받을 경우 개헌의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중요한 것은 여의도의 5월이 예년과 달리 바쁘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바빠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것을 국민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정치권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5월에는 올해같이 분주하지 않고 조용하게 성찰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경제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가 경제를 리드할 수 있는 것인가, 당론이라는 연대감이 왜 자꾸 이완되는 것인가, 정당 자체의 분권화는 어떠한 방법으로 성취될 수 있을까, 중앙당은 꼭 서울에 있어야 하는가, 국가의 기본적 책무성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경제와 복지를 분리하여 논의할 수 있는 것인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화두들이 기다리고 있다. 많이 생각하고 듣고 또 보기 위해서 선량들이여 5월에는 여의도를 비우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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