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이 무너지기 한 달 전 동서독 국경 현장에 가 봤지만 붕괴의 조짐은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독은 무너졌다. 동독이 무너지기 2주전에 독일의 빌리 브란트는 서울에 와 있었다. 그는 당시 동서독의 통일보다는 한반도의 통일이 쉬울 수도 있다고 말하고, 독일의 통일은 앞으로 5년, 15년 후에나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관련 강대국의 이해가 엇갈려 어렵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후 2주일 만에 동독정권은 붕괴되었다. 동방정책의 창안자인 브란트 자신도 동독의 붕괴를 예견하지 못했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도 눈앞에 다가왔다. 3~4년 내 북한정권이 붕괴되고 통일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 이라고 말하는 여당의원이 있고, 노무현대통령도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지난 12월에 말한 바 있지만, 그것은 그들의 희망사항 일뿐이다. 세계는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김정일 이후의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나라마다 대응전략구상에 혈안이 되어 있다. 오로지 노무현정부와 여당사람들 사이에서는 북한붕괴론을 금기시하고 있지만, 북한정권의 종말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지난 13일 열린우리당이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행한 한 전문가의 주제발표는 이와 같은 현실 인식을 잘 말해주고 있다. 부시1기 행정부에서 대북담당특사를 지낸 찰스 프리처드는 강경파도 아닌 온건한 사람이다. 그는 “북한 연착륙은 바람직할 수 있으나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순식간에 경착륙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서 “대부분 사람들은 북한이 붕괴되면 두 개의 한국이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하나 북한이 중국에 흡수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히다카 요시키의 저서에 따르면 미국 전 CIA 국장 제임스 울시의 말은 충격적이다. “미국은 김정일을 쫓아내서 새로운 정치판도가 전개된다면 그것으로 좋다. 그 다음일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 등 아시아 나라들이 생각할 문제이다.” 2003년 12월 30일에 출판된 리처드 펄의 ‘악의 종식(End to the Evil)’을 보면 “알 카에다 혹은 다른 테러리스트 집단에 팔릴 수 있는 북한이 만든 한 발의 핵탄두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는 것보다 미국에는 더 위험하다”면서 10년 묵은 한반도의 위기를 탈출하는 방법으로 “김정일을 축출하고 중국의 말을 더 잘 듣는 다른 북한 공산주의자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북한정권의 붕괴가 북한 핵의 해결이기 때문에 중국이 원하는 북한의 티베트화도 미국은 수용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사실 미국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테러리즘에 의한 미본토의 원자탄 공격이다. 워싱턴의 한 국제 전략가는 이미 중국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에 대비해 후계자를 물색해 놓았고, 유사시 중국군을 투입할 준비를 마쳤다고 증언한 바 있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필연적이고 멀지 않았다면 마지막 남은 선택은 북한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대한 준비뿐이다. 북한에 들어서는 새로운 정권의 핵심세력들이 김정일 정권을 도와준 한국정부와 국민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줄지도 의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선택은 어떤 경우에도 북한주민의 고통을 연장하는데 김정일을 도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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