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산에 오르다보면 어느덧 숨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나중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게 발걸음이 저절로 나를 옮겨놓는다. 두 다리가 제 알아서 돌부리를 피하고 엉겅퀴를 가르며 마냥 가고만 있을 뿐이다.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 등반가는 손가락과 바위와 바위틈에 난 풀포기 그리고 비바람과 하나 되어 조화롭게 한 뼘씩 오르는 과정을 통해서만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러한 순간에는 자기가 누구이고 무엇을 희구하고 있는지 모두 다 잊고 그저 몰입만 할 뿐이다. ‘멀고 험한 길을 가다보면 어느덧 아름다운 경치도 안보이고 심지어 걷고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고 말한 한 등반가의 말을 이해했다는 증거로 서설을 열어 보았다. 모두 다 잊고 그저 그 무엇에 열중하는 상태를 심리학자들은 자의식이 소거된 상태라고 하는 것 같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몸을 자연스럽게 내맡기고 사념 없이 진행되는 과정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가끔은 겪게 된다. 겪고 나서야 아는 것인데 결과보다도 그 과정이 커다란 즐거움이었을 때가 바로 그러한 순간일 것으로 상상한다. 몰입하는 일의 종류와 상황은 다르더라도 즐거움의 핵은 바로 자의식이 소거된 상태에 있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통해서 이미 알려져 있다. 사회봉사를 하는 것도 그 후에 받게 되는 찬사를 의식하다보면 과정의 즐거움이 적을 것이다. 소외계층을 위한 기부행위도 그 자체에서 즐겁고 행복한 의미를 찾을 수만 있다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정치도 그렇다. 요즈음은 과거보다 정치인들이 정책개발과 법안제개정을 위하여 더욱 노력하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느껴진다. 현재의 법을 식은 밥 정도로 생각한다면 새로운 법은 현미밥이나 오곡밥이 될 것을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법들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제안한 법안의 수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하는 모습은 그렇게 즐거워보이지는 않는다. 의원들에 대한 시민단체나 언론의 평가를 너무 염두에 두고 일을 추구하다보니 이제는 알맹이 없는 법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자의식이 여전히 강하게 살아 숨쉬는 동안 그들이 밟고 있는 스텝에 무리가 따른다. 남보다 더 빨리 오르려는 자의식에 지배되어 무리하게 풀포기를 잡았다가 미끄러지는 등반가의 스텝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자의식에 지배되기는 인위적이고 기획된 각종 정략들을 연거푸 쏟아내는 정부여당의 정치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야당대표에게 총리를 줄 테니 연정하자, 지구당별 정당명부식이 아니라면 권역별로라도 정당명부식을 도입해보자 등등 당리라는 자의식에 꽉 찬 제안들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부동산정책, 기업투자유치전략들도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것도 같다. 이 또한 자의식이 작용한 정치의 무리한 스텝으로 봐야 한다. 자의식을 버리고 과정과 진실에 매진한다고 자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몰입의 시간이 지난 후에 더 큰 자아로 성숙된다는 것이 정론이다. 경험이 내적으로 보상받는 것이 미래의 가상적 보상에 저당 잡히는 대신 현재에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기획적인 보여주는 정치는 이제 국민들의 마음과 하나 될 수 없다. 하나 되지 않으면 감동을 줄 수 없다. 오히려 이 여름에 땀을 손으로 훔치며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진솔하게 고민하고 대안을 내는 우직하지만 자연스러운 정치인과 정치행위를 국민들은 바랄 것이다. 법안발의와 정치의 틀도 중요하지만 ‘정치공허증’에 걸린 국민들을 생기 있게 만드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정치인들은 당장 평가를 잘 받아야 재선되는 현실을 무시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 말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네트워크시대에 진정성을 인정받는 정치인은 단 이틀이면 스타가 될 수 있다. 이제 본래적인 의미의 정치를 복원해도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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