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盲信)은 맹종(盲從)을 낳고, 그 반복과정을 통해 광신(狂信)으로 진화한다.

그리고 광신은 광기(狂氣)와 광분(狂奔)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국내외에서 수많은 여신도를 성폭행한 혐의로 중국관헌에 체포된 사람을 교주로 떠받드는 사이비 종교단체와 교묘한 사기 마케팅으로 수많은 피해자를 낸 혐의로 구속돼 있는 사람의 기업도 맹신의 그늘에서 자라나 광신의 덫에 걸린 칙칙한 열매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의 문제인 동시에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이 수반되니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문제는 정치적, 또는 사상적 맹신과 광신의 경우다.

그것은 법적 심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거나 심지어 깔보기도 하는 정치영역인 데다가 국민들의 일방적 희생이 어김없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인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 강제적 필수문제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가중된다고 봐야 옳다.

세계의 근·현대사가 바로 그 실증적 사례이거니와 실제로 근·현대사는 나치즘과 파시즘 그리고 군국주의와 공산주의 등 정치적, 사상적 맹(광)신의 구체적 전개과정이자 그에 대한 응징과 청산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국민들의 근심과 걱정이 장난이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렴치한 진흙탕 싸움 때문이다. 먼저 여론조사 1,2위인 ‘빅2’ 캠프간의 피 터지는 대두리 싸움판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

반드시 자기자신이어야 하고 상대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맹신과 그를 덮어놓고 따르는 지지자들의 ‘과잉 맹종’ 탓이다.

가령 공천만 받으면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맹신이 그 싸움의 배경이라면 그 믿음은 이미 맹신의 단계를 떠나 광신의 단계에 들어 선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의 유례없는 대선 훈수도 불안요인이다. ‘사생결단’을 키워드로 하는 훈수라는데 왜 사생결단해야 하는지 그 깊은 속내를 알 길 없는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지도자들에 의한 ‘불안 시리즈’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의 여야불문 다수의 잠재 후보군에 대한 인물과 정책에 관한 품평 시리즈도 국민들을 편케 해주는 것과 한참 거리가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던가. 자신만이 옳고 남은 그르다는 맹신에서 비롯된 게 아니기 만을 바랄 뿐이다.

국민은 불안하기도 하려니와 불쌍하기도 하다. 맹신의 그늘에서 광신의 덫에 걸려 있는 정치인들을 지도자로 떠받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자존심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기초 체력은 놀랍고 대단하다.

정치지도자들의‘불안 시리즈’에 갖가지 시위로 서울 시내가 몸살이지만 주식시장은 계속 오름세요,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곧 오리라는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국민들의 몫마저 마치 자신들이 잘 한 덕이라고 우기는 정치권의 후안무치를 너그럽게 용서해주는 우리 국민들이 아니던가.

그러므로 지도자들은 더 이상 국민을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얕잡아 봐서도 안 된다. 국민을 자신의 이념과 노선에 따르도록 설득대상으로 삼는 건 더 더구나
안 된다.

하필이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군사정권이 1500년의 내력에 빛나는 세계 최대의 석불상 2개를 파괴하면서 ‘이슬람법과 이슬람 지상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한 우상파괴’라는 맹신적 교리와 광신적 명분을 앞세웠다는 7년 전의 기막힌 역사가 마치 갓 구워낸 따끈따끈한 동영상처럼 눈앞에펼쳐지는 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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