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남북정상회담이 북한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연기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을 때 양식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수해 때문이라고 하지만 어떤 전문가들은 10월초로 회담 일정을 옮김으로써 대통령 선거에 본격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도 파악하는 사람도 있다. “10월이면 여야 대권주자들이 거의 윤곽이 드러나므로 대선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우선은 언제부터인가 북한이 남한 선거에 개입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로 받아들여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민족끼리’를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북한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 늘 내정 간섭이라고 두둔하는 사람들은 북측의 남한 정치 개입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행여 정상회담의 추진을 위해 실무 접촉 과정에서 의제 선정이나 남한의 지원 등에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한 작전이 일종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워낙 그런 작전에는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북한의 접촉은 항상 물밑 교섭과 이면 거래가 관행화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요인이 이번 정상회담 연기에 기여하였는지는 두고 볼 일이다.

통일부 관계자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보자. 이관세 통일부 차관은 “북한이 정상회담 개최 전 수해 복구를 해보려고 했으나 물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으로선 정상회담 연기 이유가 말 그대로 수해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번에 북한이 경험한 수해가 ‘100년 만의 대홍수’라고 치자. 그런데 문제는 1995년 이후 북한에서는 수해가 거의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피해액은 매년 다르지만 추세는 뚜렷하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젠가 김정일 위원장의 현장 시찰 사진이 국내의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 김 위원장 뒷면에 등장하는 산은 거의 민둥산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결국 북한의 산은 ‘공유재의 비극’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로부터 예외가 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던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의식주 공급이 원활하고 당의 통제가 강한 시절에는 산의 목재를 남획하는 일들이 드문 일이지만 식량 사정이 악화되고 당의 장악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공장이나 산 등의 공유재 성격의 지역에 대한 개인의 불법 절도나 남획과 같은 일들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보면 북한의 수해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인재는 더욱 더 늘어나게 될 것임을 예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이런 일들이 터질 때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어떻게 도와야 할 점을 고민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체제 하에서는 어떤 노력도 중장기적인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도주의적 지원과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북한 체제의 개선을 위해 우리가 가진 자원과 정책이란 지렛대를 적절히 사용하는 일이 현명한 선택이다. 북한 문제를 볼 때마다 선의로 출발한 정책들이 때로는 전혀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낳게 됨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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