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007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가 회담 이후 53.7%(KBS+미디어리서치), 또는 43.4%(SBS+한국리서치)로 급상승했다는 여론조사 결과와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84.3% 에 이른다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조사결과(2007.10.5)가 그 근거다.

천만다행이다. 남북관계의 발전이라는 측면 외에도 임기가 몇 달 남지 않은 대통령과 정부의 레임덕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도 여간 다행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정상회담의 모든 프로세스와 메커니즘이 모두 옳고 바람직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자존심에 생채기를 낸 일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10월 3일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펼쳐진 `아리랑 공연’ 참관이 그 대표적 예다. 그날 철두철미 북한체제의 신격화와 우상화를 웅변하는 초대형 매스게임 ‘아리랑’ 의 퍼포먼스 현장에서 우리 대통령의 모습은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았다는 게 뉴스 화면으로 몇 장면 시청했던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자발적 관중이 아닌 기획동원에 의한 수만 북한 ‘인민’들의 인위적 박수갈채와 환호에 파묻혀 있었던 대통령이었으므로 크게 보이기가 쉽지 않았던 점을 인정하더라도 씁쓰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국민들의 적지 않은 반대를 무릅쓰고 참관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와 명분이 있을 테지만 대통령만큼은 그런 부담에서 자유스러웠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큰 이유다. 4천8백만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 우리나라의 위신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태산 같은 국가원수가 아닌가

대통령이 박수갈채로 환호한 대목은 제2장 ‘선군 아리랑’의 ‘활짝 웃어라’ 편이 끝나갈 무렵 출연아동들이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 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 앞쪽으로 몰려 왔을 때였다. 그리고 공연이 끝날 즈음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손을 흔들었는데, 때마침 고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는 노래가 나왔고, ‘21세기 태양은 누리를 밝힌다. 아, 김일성 장군’이라는 카드섹션이 펼쳐졌다. 그리고 카드섹션은 대통령이 박수를 치는 도중 `무궁 번영하라 김일성 조선이여’로 다시 바뀌었다.
(연합뉴스, 2007년 10월 4일)

연주회에서의 박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연주자에 대한 사랑과 존경, 그리고 그 연주내용에 대한 예술적 공감의 적극적 표현이다.(이장직 ‘70일간의 음악여행’) 그런데 ‘아리랑’에게 대통령이 보낸 박수는 이 같은 전통적 개념에 의한 박수가 아니었다. ‘손님으로서의 당연한 예의’ 때문이었다는 게 대변인의 전언을 통해 확인된 대통령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박수는 손님으로서 당연한 예의??라는 대통령 말씀도 물론 맞다. 하지만 그날의 연주자는 이를테면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아니었다. 김연아의 피겨경기도, 박태환의 수영경기도 아니었다. 북한의 인민예술가이자 북한예술의 상징적 존재인 지휘자 김병화와 조선 국립 교향악단과 합창단이 연주하는 윤이상의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 콘서트도 아니었다. 그저 거대한 북한체제 선전물일 뿐이었다. ‘손님으로서의 당연한 예의’라고 그날의 박수를 설명하기에는 뭔가 좀 군색하게 보였던 이유다.

그러면 어떻게 했어야 하나? 아리랑 참관이 가령 북측요청에 의한 것이라면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해야 옳았다는 게 내 개인적 생각이다. 입장 난처한 장면이 충분히 예상됐기 때문인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원칙을 지키면서 성과를 내는 게 진짜 지혜롭고 능력 있는 리더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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