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변화를 전하는 소식 가운데 하나가 눈길을 끈다. 북한 당국이 장마당(시장)의 급격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 20~40대 여성들이 시장에 참여하는 금지 조치를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북한 시장에는 고양이 뿔을 빼고 다 있다“는 말이 들 정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장마당은 이미 아줌마가 점령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한 관리는 ”장사에 몰두하는 아줌마들이 체제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 한다“고 말한다. 일부 여성들 가운데는 결혼 전까지는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피하기 위해서 가능한 일찍 결혼하고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자는 풍조가 젊은 여성들에게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가진 욕망 가운데 성욕과 식욕 그리고 권력욕도 세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강력한 힘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다. 어떤 체제, 어떤 억압 하에서도 이 같은 본능을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 중국의 공산 체제가 개혁개방 노선을 선택한 다음에 중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익을 향한 광풍은 인간의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이익을 추구하는 본능의 강렬함을 보여주고 남음이 있다. 아마도 인간성의 근원을 냉철하기 꿰뚫었던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은 중세의 끝자락에서 태어났던 피렌체 출신으로 <군주론>을 집필하였던 마키아벨리일 것이다. 그는 인간성을 있는 그대로 보았던 점에서 중세의 다른 지식인들과 뚜렷한 차이점을 가졌던 인물일 뿐만 아니라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식인 가운데 한 하나이다.

“기독교는 1,000년 동안 유럽인의 정신을 지배해 왔다. 그런데도 우리 유럽인의 인간성이 향상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원래 종교에 의해서조차 바뀌지 않을 만큼 ‘악’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서가 아닐까? 그런 인간세계를 바뀌 나가려면 먼저 이 같은 인간성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인간성의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라! 이런 교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였기 때문에 지난 20세기의 100년은 인간성을 개조
하기 위한 얼토당토하지 않은 체제 실험들이 행해지고 말았다. 그것은 때로는 공산주의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러면 그런 구상들은 이제 말끔하게 정리되었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들의 의식에는 여전히 인간성의 개조를 통해 더 나은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남아 있다. 평등에 대한 환상 말이다. 정치권력이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 더 많은 개입을 해야 하고 이를 통해서 이상적인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은 많은 정책을 낳게 된다. 지난 5년의 우리 사회에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15권짜리 <로마이야기>를 완간한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총 집대성하는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이야기식으로 정리하면서 흥미로운 질문을 한 가지 던진다. 그것은 마키아벨리나 프로테스탄티즘 운동을 주도하였던 마르틴 루터를 언급하면서 “그들의 시대로부터 이미 5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과연 인간성이 얼마나 개선되었을까?”라고 묻는다. 인간을 진보시키기 위한 다양한 이즘이나 운동 그리고 혁명드링 뒤를 이었지만 실상 인간성의 개선이 이루어졌을까? 시오노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런 사상을 주창한 사람들의 동기 자체는 숭고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반세기 이상 계속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분쟁, 혹은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내전의 비참한 상황 등은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의 적확함에는 역시 마키아벨리의 생각에 손을 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그들의 본능에 걸맞도록 사회가 돌아가도록 허용하면 된다. 잘 살 수 있는 해답은 그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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