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에 의하면 조직의 경영원리와 리더십을 설명할 때 좀 진부한 느낌이 들더라도 오케스트라와 음악감독 또는 지휘자에 비유해서 설명하는 게 가장 좋다. 국가 또는 정부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조직의 통치, 또는 경영원리가 오케스트라의 그것을 쏙 빼 닮았기 때문이다.

며칠 후로 다가온 12월 19일을 제17대 대통령 선거일로 보기 보다는 앞으로 5년간 우리 ‘대한민국 오케스트라’를 이끌 새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선택하는 날로 삼고 누구를 선택할까 고민하는 게 더 편한 이유다. 그런데 축일이 돼야 할 그날을 생각하는 국민들의 어깨가 일천근이요 마음이 일만근처럼 무거운 이유는 대관절 무엇일까?

올해 내내 계속된 그야말로 유치찬란한 폭로공방을 축으로 한 ‘온리 네거티브’선거전 때문일 수도 있지만 혹시 우리나라를 바짝 뒤 쫓거나 이미 앞지른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와 지금 맹렬한 기세로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는 ‘비스타VISTA 국가들(베트남, 인도네시아, 남아프리카, 터키, 아르헨티나)의 존재감이 이번 선택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심장하고
무겁게 하고 있는 게 아닐는지.

돌이켜 보면 숫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역대 지휘자들이 제 나름의 상황논리에 따른 리더십을 보여 준 것도 사실이다. 개중에는 ‘가부장적 권위형’ (이승만) 이나 ‘민주적 표류형’(장면)으로, 또는 ‘교도적 기업가형’ (박정희)으로 꼽히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저돌적 해결사(전두환), ‘소극적 상황적응형’(노태우),공격적 승부사’(김영삼), 그리고 ‘계산된 설교형’(김대중)으로 꼽히는 분도 있다.(김호진, ‘대통령과 리더십, 청림출판 2006 ) 하지만 그 분들 가운데 ‘참 좋은 지휘자’ 가 과연 몇 분이나 될지 의문인 것도 사실이고 보면 이번 선택만큼은 그야말로 ‘참 좋은 지휘자’ 로 돼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제 내가 생각하는 참 좋은 지휘자의 조건을 수박 컽 핥기 식으로나마 더듬어 보기로 한다.

먼저 기본충실의 철학과 자신의 책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꼽을 수 있다. 지휘자의 기본책무는 작품의 해석과 템포의 빠르기,
리듬, 박자, 셈여림의 조화에 의한 음악적 완성, 그리고 각 연주자 별 연주 참여 타이밍의 지시 등을 통하여 완벽한 팀워크와 멋진 하모니를 만드는 일인데, 국정운영의 완급조절로 리드미컬하고 다이내믹한 정책을 펴나가야 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다음, 오리지널 악보의 존중과 충실한 해석 및 그것을 음악으로 풀어 낼 수 있는 지휘능력. 특히 작곡자의 의도에 충실한 음악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다. 오리지널 악보에 대한 편의주의적, 자기중심적 해석은 절대 금물이다. 세계적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자신은 연주할 작품의 작곡가를 언제나 최고로 생각하고 그의 작곡의도와 작품을 잘 해석해서 연주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겸손한 고백이 (KBS1TV단박 인터뷰 2007.8.1)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지휘자만 그런 게 아니다. ‘헌법’과 ‘법률’을 오리지널 악보로 삼아야 할 대통령의 모습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 밖에 ‘참 좋은 지휘자’는 단원들에게 웅대한 비전 제시와 함께 성공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고 자부심과 긍지를 드높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공국가의 3대 조건으로 리더십, 정권의 안정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을 내세우며 ‘갈등의 에너지’를 ‘화합의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리콴유(李光耀)의 충고(2006. 5. 19) 를 떠올리면서 ‘참 좋은 지휘자’가 뽑히는 멋진 기회가 될 것이라는 되바라진 기대와 소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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