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 나는 중동-북아프리카의 민주화 혁명과 내전을 지켜보며 민족주의의 허구성을 새삼 확인한다.

민족주의는 서양 봉건체제가 해체되고 민족 단위의 근대국가가 형성되면서 등장했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민족주의는 식민지로 전락한 약소민족이 제국주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한 저항의 이데올로기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뿌리를 함께한 동일 민족내의 내전은 서로 상대편을 동족이면서도 파멸시켜야 할 주적(主敵)으로 내몬다.

20세기 러시아의 공산혁명, 스페인의 공화파(共和派)대 왕당파(王黨派) 내전, 중국의 국민당·공산당 내전, 북한의 6·25 기습남침 등 도 서로 동족 수백만 명을 죽였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도 공산화 과정에서 수백만 동족의 멱을 땄다. 캄보디아에서는 전체 인구 750만 명 중 5분의 1인 150만 명이 공산당원들에 의해 무참히 학살당했다. 거기에 혈연적 민족 의식은 없었고 오직 살기등등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만 있었다.

아프리카의 르완다, 소말리아, 이디오피아 등에서는 수십만 명이 동족에 의해 잔혹하게 살상당했다. 금년 초부터 쓰나미 처럼 밀려든 중동-북아프리카의 민주화 열풍속에 리비아와 시리아에서도 수천 명이 동족의 손에 의해 무참히 죽어갔다.

특히 한민족의 경우 동족상잔(相殘)은 극에 달했다. 북한은 6·25 기습남침을 자행하여 평화롭게 잠든 수백만 명의 동족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일본 식민통치에서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일본에 의해 희생된 수 보다 수십 배 더 많았고 살생 수법도 더 잔혹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북한은 6·25 기습남침 이후에도 KAL 858기 공중 폭파, 버마의 아웅산 묘소 테러, 천안함 격침, 연평도 무차별 포격 등을 자행하며 수많은 동족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앗아갔다. 지금도 북한은 핵무기까지 개발해 놓고 적화를 위해선 핵폭탄을 투하해 동족을 절멸시킬 것도 서슴지 않을 태세다. 북한은 동일 민족이면서도 5000만 명을 말살하려는 끔찍한 주적이다.

러시아 공산혁명으로부터 북한 남침과 시리아에 이르는 학살은 외부 침입자나 타민족의 소행이 아니었다. 모두 동족 내지 단일 국가 구성원에 의한 짓이었다. 도리어 타민족인 외국인들이 뛰어들어 구해줬다. 잔인무도한 민족 내전과 학살은 집권세력의 권력과 이데올로기 보존이 동족 보다 우선한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민족내부 갈등의 경우 서로 배신감과 증오심으로 인해 상대편에 대한 적개심을 더욱 격화시켜 잔혹성을 더 키운다.

21세기 국제화는 민족적 혈연의식을 더 한층 희석시킨다. 대한민국은 단일 민족을 넘어 피부색깔이 다른 다문화사회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북한 관계에서 유달리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남북 대치상태에서 민족을 말하는 사람은 민족의 허상을 간파하지 못했거나, 종북좌익 분자로서 자신의 붉은 정체를 낡은 민족주의로 위장하려는 부류에 속한다. 한편 북한이 민족을 들먹이는 저의는 뻔하다. 북한은 6·25 기습남침 때 민족을 탱크로 깔아 죽였다. 그러고서도 뻔뻔스럽게 그 깔아 버린 민족을 다시 끄집어내 반미 구호로 이용하며 남한의 대북지원 및 용공사상 침투를 위해 내세운다.

지금 남북한 간에는 자유민주와 공산체제간의 생존경쟁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절대적 사생결단 대결뿐이다. 거기에 ‘우리 민족 끼리’란 구호는 남한을 홀리기 위한 기만과 위장일 따름이다. 다만 민족은 남한 국민의 혈연적 동질성과 유대감을 끈끈히 하고 장차 통일국가 건설의 이데올로기로 기여할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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