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의 잔혹한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피범벅 시체를 보며 많은 한국인들은 북한 김정일 독재자의 최후를 떠올렸다. 김정일도 언젠가는 분노 속에 궐기한 북한 주민들의 손에 카다피 꼴이 되지 않겠나 하는 예감이었다. 김정일도 카다피의 잔인무도한 통치 방식을 그대로 닮았다는 데서 그렇다.

카다피는 1942년 6월 7일 리비아의 시르테에서 낙타와 양을 치는 문맹의 목동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7세 대위 시절이던 1969년 9월 1일 국왕 이드리스 1세가 신병 치료차 터키를 방문한 틈을 타 청년 장교들과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그 후 지난달 20일 살해되기까지 무려 42년간 집권했다.

그의 장기집권은 잔인무도한 탄압으로 연명됐다.

지난달 22일 미국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축구 또는 테니스 경기장에서 공개적으로 인민재판을 열고 정치범들을 고문하며 심문했다. 피의자들은 공포심에 질려 오줌을 싸며 살려달라고 애걸했지만, 그 자리에서 처형했다. 그 장면은 모두 TV로 중계됐다.

카다피는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서자 체포해 트리폴리 시의 중앙 광장에서 공개 교수형에 처했다.

시체들이 수주 동안 썩도록 그 자리에 방치해 두며 주변 도로를 막아 자동차 행렬이 시체 전시 광장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 끔찍한 현장을 국민들이 보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한 것이다.

카다피의 공개 처형 등 무자비한 공포정치는 꼭 김정일의 통치방식과 같다.

김정일도 광장에 수많은 주민들을 운집케 하고는 현장에서 심문하고 공개 처형하곤 한다. 그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처형된 시체를 정치범들이 매장케 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카다피는 영웅적인 호칭을 좋아한다. ‘형제 지도자’, ‘아프리카의 왕중 왕’, ‘혁명 지도자’, ‘민중시대 안내자’, ‘정치 철학자’ 등이 그것들이다. 그는 정치 철학을 담은 ‘그린 북(초록 책)’을 발행했다. 이 ‘그린 북’은 ‘제3 우주의 이론’이 담긴 책이라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개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계 문명국가들은 그를 ‘중동의 미친 개’, ‘리비아의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김정일도 카다피처럼 영웅적인 호칭을 좋아한다. ‘위대한 지도자’, ‘세기의 영도자’ 등이다. 김정일도 카다피와 같이 정치사상을 논하는 글을 썼다.
그는 1982년 ‘주체사상에 대하여’를 비롯 여러 개의 자칭 ‘노작(勞作)’들을 발표했다.

그는 자신이 ‘군사전략의 천재’, ‘과학의 천재’, ‘영화제작의 천재’로 불려지도록 한다. 하지만 바깥 세계는 김정일을 ‘두 살 짜리 히틀러’, ‘거짓말쟁이’, ‘마피아 두목’, ‘10대 갱단 두목’ 등이라고 조롱한다.

결국 ‘아프리카의 왕중 왕’이라 자처하던 카다피는 민중봉기에 쫓겨 도망치던 중 쥐새끼처럼 하수구 관에 숨었다가 잡혔다. 그는 피투성이 된 채 끌려나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성난 반란군은 그의 머리채를 잡아끌었는가 하면, 비틀거리는 그를 두들겨 팼다. 그리고는 누군가가 그의 머리에 권총을 쏴 사살했다.

‘아프리카의 왕중 왕’은 그렇게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 카다피의 독재통치 수법을 꼭 닮은 김정일도 언젠가는 북한 주민들의 성난 봉기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본다.

‘위대한 지도자’도 ‘왕중 왕’처럼 피투성이가 된 채 하수구 관에 생쥐처럼 숨었다가 끌려나와 처절하게 최후를 맞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역사적으로 잔혹한 독재자는 모두 참혹하게 생을 마쳤다는 데서 더욱 그렇다.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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