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인터뷰룸. 시리아와의 2007 아시안컵 B조 예선 5차전에서 졸전 끝에 1대1로 비긴 한국 축구대표팀 핌 베어벡(50·네덜란드) 감독이 굳은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에게 던져진 질문 중의 하나. “90분 내내 교체 카드를 한 장도 쓰지 않았는데 이유가 뭡니까?” 베어벡 감독의 답변은 이랬다. “선수들의 슈팅이나 패스의 정확도가 떨어졌지만 시간이 흐르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다. 벤치에 이천수가 있었다면 그를 교체멤버로 기용할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사정이 그렇지 못했다.”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이천수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재치있는 입담과 환상의 프리킥을 자랑하는 이천수. 최근 그가 발목부상의 ‘악몽’을 털고, 소속팀의 후기리그 우승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3기 베어벡호에도 이름을 올렸던 이천수(25·울산 현대)는 소집 하루 전인 4일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됐다. 오른 발목 부상이 완쾌되지 않았던 이천수는 울산 현대와 FC 서울의 K-리그 경기 관전 차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한 베어벡 감독을 직접 찾아가 몸 상태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베어벡 감독은 이천수의 뜻대로 그를 대표팀 소집 명단에서 빼줬다.

베어벡 감독의 ‘허전함’
대표팀은 이천수가 없는 상태에서 가나와의 평가전과 시리아와의 아시안컵 예선을 잇달아 치렀다. 도하 아시안게임에 나갈 멤버들이 주축이 된 가나전에선 1대3으로 완패했다. 이천수는 와일드카드로 아시안게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선수.
시리아전 역시 이천수는 없었고 베어벡 감독은 최성국(울산)-조재진(시미즈 S펄스)-설기현(레딩 FC)을 선발 스리톱으로 가동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20개의 슈팅을 날린 한국은 2개의 슈팅을 기록한 시리아와 한 골씩을 주고받아 무승부에 그쳤던 것. 때문에 베어벡 감독으로선 이천수라는 ‘존재의 무거움’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의 공백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소속팀 울산 김정남 감독 역시 이천수의 부상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김 감독은 전북 현대와의 200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을 앞두고 이천수에게 ‘SOS’를 보냈다. 이천수는 18일 홈 구장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2차전으로 한 달 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이천수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볐고 후반 24분엔 골까지 터뜨렸다. 그러나 울산은 그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4골을 허용하며 1대4로 대패, 1차전 원정경기 3대2 승리를 지키지 못하고 1, 2차전 합계 4대6으로 뒤져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티켓을 전북에 내주고 말았다.
그라운드를 걸어 나오는 이천수의 얼굴엔 울산 선수 누구보다도 진한 아쉬움이 묻어 있었다.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자신의 존재를 아시아 무대는 물론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팀엔 오는 12월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울산이 전북을 넘어 결승에 진출했다면 바로 세계클럽선수권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었던 것. 이번 시즌을 마치고 유럽무대 재도전을 계획하고 있는 이천수로서는 전 세계 축구팬들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다시한번 선보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좌절은 더 큰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AFC 탈락에 진한 ‘아쉬움’
이천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3년 7월 한국인 최초로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했었다. 하지만 현지 적응에 실패하면서 지난 해 결국 국내무대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막판과 플레이오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팀의 K-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박주영(FC 서울)이라는 걸출한 신인 선수를 제치고 최우수선수(MVP)의 영광까지 안았다.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김지유(본명 김민경)와 뜨거운 사랑에 빠지면서 마음의 안정도 찾아갔다. K-리그에서의 활약을 앞세워 이천수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눈도장을 받는 데 성공했고, 2006 독일 월드컵 대표팀 엔트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재치 있는 입담과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까지 갖춘 이천수는 대표팀 멤버 중에서도 가장 뜨겁게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주가는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 토고전에서 그림 같은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뽑아내면서 다시 한 번 치솟았다. 한국은 이천수의 이 골을 발판 삼아 안정환이 역전 골을 터뜨리면서 월드컵 본선 도전사 52년 만에 감격적인 원정 첫 승의 기쁨을 맛봤다.
이천수의 프리킥 골은 FIFA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FIFA는 독일 월드컵 경기 내용을 토대로 보고서를 내면서 이천수를 세계적인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꼽았다. 거침없는 상승세 덕에 이천수는 어렵지 않게 유럽 재진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기회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쉽게 오지 않았다. 한국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천수로서는 자신을 더 이상 보여줄 기회를 잃어버렸다. 유럽축구의 여름 이적시장 마감을 앞두고 잉글랜드 몇몇 클럽이 영입 제의를 해왔지만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세워 자존심만 건드렸다.
결국 이천수는 “올 시즌까지는 울산에 남아 팀의 K-리그 2연패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자신의 거취를 결정했다. 독일 월드컵에서 돌아온 이천수의 상승세는 K-리그에서도 한동안 이어졌다. 올 시즌 컵대회를 포함해 7골을 기록 중인 이천수는 독일 월드컵 이후에만 4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고질적인 오른 발목 부상이 끝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지난 달 16일 경남 FC와의 원정경기를 마지막으로 이천수는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같은 달 20일 열린 알 샤밥(사우디아라비아)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원정경기, 27일 열린 전북과의 같은 대회 4강 1차전에서도 이천수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몸이 아픈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마음의 부상’까지 겹쳤다. 1년 넘게 사랑을 키워온 연인 김지유와의 결별은 거칠 것 없이 활달했던 그를 잠시나마 조용하게 만들었다. 물론 이천수가 김지유와의 이별로 마음이 아팠는지는 당사자 말고는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이 일 이후로 이천수가 언론과 직접 접촉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3기 베어벡호에 승선했더라면 적잖은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을 수 있었지만 이천수는 대표팀 소집 하루 전 날 베어벡 감독에게 양해를 구했고, 그럴 기회는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렸다.
지난 18일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도 전북의 대승으로 끝이 나 이천수는 언론의 관심 밖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통한 세계클럽선수권 출전의 기회를 놓친 이천수에게 이제 남은 목표는 팀의 K-리그 2년 연속 우승 뿐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이뤄내는 것 역시 현재로서는 만만치 않다. 전기리그에서 3승6무4패로 14개팀 중 9위에 그쳤던 울산은 9라운드를 소화한 후기리그에선 3승5무1패로 6위에 머물러 있다.
후기리그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란 사실상 힘든 상황이 됐다. 길은 전·후기 통합순위를 끌어올리는 것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역시 결코 쉽지만은 않다. 울산은 전·후기 통합순위에서 6승11무5패로 6위에 그치고 있다. 전기 1위를 차지한 성남 일화와 후기 1위가 유력한 수원 삼성을 빼고도 포항 스틸러스(10승7무5패) FC 서울(7승10무5패) 인천 유나이티드(6승11무5패) 중 최소한 2팀을 제쳐야 한다.

탤런트와의 사랑 끝내 ‘불발’
울산으로선 AFC 챔피언스리그와 K-리그로 힘을 분산하다 보니 이런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한 마리 토끼는 놓쳤다. 이젠 남은 한 마리 토끼라도 반드시 잡아야 한다. 남은 기회는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4경기 뿐이다.
울산으로선 지난 시즌에 그랬던 것처럼 막판 이천수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 한 달 만의 복귀전에서 골 맛을 본 이천수가 울산을 플레이오프로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고교 야구 ‘산실’ 동대문야구장 ‘역사속으로…’

국제 ‘패션산업의 메카’로 변신

수십년간 고교생들이 ‘투혼’을 불살랐던 동대문운동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서울시가 지난 18일 동대문운동장 부지를 디자인 콤플렉스와 다목적 공원으로 전환키로 결정한 것이다.
동대문운동장은 지난 1926년 동대문 옆 성터에 경성운동장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국내 최초의 근대 체육시설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의 축구장만 건립됐고 이후 테니스장, 수영장, 야구장이 잇따라 문을 열었으나 지금은 축구장과 야구장만 남아있다. 해방과 더불어 명칭이 서울운동장으로 바뀌었고 1984년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립되면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변경됐다.
동대문운동장은 잠실운동장에 ‘국내 대표 축구·야구장을 내주기 전까지 각종 국가 대항전 축구·야구 대회가 열리는 등 우리나라 근대 체육의 산실이었다. 특히,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고교 야구대회는 장안의 화제였다.
현재 동대문운동장 주변은 의류 산업과 관련된 재래식, 현대식 도·소매 시장이 집적돼 있다. 서울시는 이 일대에 국내 패션업체의 40%, 패션 디자이너의 80%가 밀집해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미 2002년 관광특구로 지정돼 외국인 바이어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서울시는 이를 발전시켜 ‘패션산업의 메카’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한편, 동대문운동장 내 풍물시장의 노점상 문제와 관련, 오세훈 서울시장은 “그들에게 여러 가지 옵션을 주고 각자 입장에 맞는 선택을 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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